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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복마전’ 상품권 시장

발행은 내 맘대로 책임은 네 탓이오

관리시스템 전무, 시장 규모도 파악 안 돼 … 지급보증 안 지켜 영업장 폐쇄 땐 상품권 휴지조각

발행은 내 맘대로 책임은 네 탓이오

발행은 내 맘대로 책임은 네 탓이오

쇄된 상품권을 살피고 있는 조폐공사 직원.

상품권 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현행 법 체계에서는 상품권 발행업자가 상품권을 얼마나 찍고 유통시켰는지에 대해 정부에 보고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2003년 한국조폐공사가 추산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상품권 시장 규모는 백화점과 유통업체 3조1500억원, 제화사 1조9000억원, 정유사 6970억원, 기타 9127억원 등 모두 6조7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장당 인지세 400원만 내면 누구나 상품권 유통 가능

수조원대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지만, 상품권 시장에 대한 관리 시스템은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 1999년 규제 완화 차원에서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현재 상품권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정한 표준약관에 의해서만 규제되고 있다. 말 그대로 ‘표준약관’에 불과할 뿐 강제적인 규제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상품권 시스템 자체가 상품권 발행업자들의 ‘내 맘대로’ 유통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상품권은 누구나 찍어낼 수 있다. 장당 400원의 인지세만 관할 세무서에 납부하면 상품권을 인쇄해 시중에 마음껏 유통시킬 수 있다. 지난해에는 모두 4358억원의 상품권 인지세가 걷혔다. 그러나 1만원 이하의 상품권에 대해서는 인지세가 면제되기 때문에, 5000원권이나 1만원권 상품권은 관할 세무서에 신고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유통시키면 그만이다. 도서상품권과 문화상품권, 그리고 게임장에서 유통되는 셀 수 없이 많은 각종 게임 경품 관련 상품권이 대개 5000원권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저가 상품권의 경우 얼마나 많은 양이 시중에 유통되는지 간접 추산할 근거조차 없는 셈이다.

상품권을 발행한 백화점이 부도가 나 영업장이 폐쇄된다면 상품권은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상품권에 대한 지급보증은 강제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에 불과한 까닭에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상품권들은 예외 없이 지급보증을 하지 않고 있다. 표준약관은 지급보증이 되어 있지 않을 경우 그 사실을 상품권에 명기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장 등의 상품권은 상당수가 이를 어기고 있다.



인지세가 제대로 걷히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상품권을 허가량만큼 찍어내는 게 아니라, 발행업자 스스로가 신고한 만큼만 인지세를 납부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느 관리감독 기관도 실제 발행량을 확인하지 않으므로 발행량 축소 신고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련번호가 같은 상품권을 다량으로 찍어내 인지세를 적게 내는 발행업체들도 있다”는 소문이 상품권 시장 주변에 떠도는 것도 이런 제도적 미비점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위·변조 문제도 상품권 시장의 골칫거리다. 2003년 12월에는 H정유 주유상품권 7만2000장(26억7000만원)이, 같은 해 5월에는 L백화점의 10만원권 상품권 7만장(70억원)이 위조된 사실이 적발됐다. 그러나 각 상품권 발행업체의 신뢰도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이유로 관련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있어 위·변조 현황은 베일에 싸인 상태다.

이처럼 ‘묻지마’ 발행을 조장하는 상품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대안의 하나가 외환위기 극복 차원에서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99년 폐지된 상품권법의 부활. 상품권법은 상품권을 발행하고자 할 때 상품권 종류, 권면금액, 발행 예정금액을 기입한 신청서류를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했으며, 상품권 발행업자는 매 분기마다 상환되지 않은 상품권 총액의 50%를 발행보증금으로 공탁하도록 했다. 또 발행업자로 하여금 매 분기마다 발행한 금액, 상환된 금액 등을 시·도지사에게 제출할 것을 의무화했다. 상품권법 하에서는 상품권 발행과 유통 흐름이 모두 관계 당국의 레이더에 포착됐던 것. 이 법이 폐지되기 직전인 98년의 상품권 시장 규모는 1조5000억원으로 파악됐다.

관리 부재가 ‘묻지마’ 발행 조장 … 전면 대수술 불가피

상품권 인쇄부터 관리 감독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백화점, 대형 유통업체, 제화사 등은 영국의 De Ra Rue, 독일의 G&D, 프랑스의 Arjo Wiggins에서 원지를 수입하여 국내 인쇄업체에서 인쇄하고 있다. 이런 수입 상품권의 비중은 전체 시장의 90%이며, 한국조폐공사가 나머지 10%의 상품권을 인쇄하고 있다. 이런 수입 상품권의 생산단가는 장당 90원 정도로 한국조폐공사의 생산단가보다 10∼20% 비싼 수준. 그럼에도 업체들은 조폐공사에 맡기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최근 인쇄 계약 갱신기간이 된 한 제화사에 경쟁업체보다 싼 가격의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견적조차 받아주질 않았다”면서 “조폐공사에서 상품권을 인쇄할 경우 발행 규모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정부 의원(재정경제위원회 소속)은 “정확한 세금 징수와 상품권 시장 건전화를 위해서는 상품권 발행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조폐공사에 상품권 인쇄를 일임하거나, 수입 상품권에 대해 수입·출고·반품·폐기 수량을 명시한 인쇄종료 보고서를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유통되는’ 상품권에 대한 수술도 시급하다. 유가증권인 상품권을 일반 물품과 구별해 신용 거래하라는 취지의 여신전문금융어법 시행규칙 제2조가 실제 시장에서 ‘살아 있는 법규’로 활약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에스콰이어 사태’로 이 법규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상품권 발행업체들과 신용카드사들 사이에서는 이전과 달리 상품권 가맹 체결을 협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상품권 가맹을 맺었다 하더라도 업체가 자의적으로 상품권을 일반 물품으로 결제하는 행위를 막는 것은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상품권을 일반 물품으로 구입하게 되면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품’으로 둔갑한 상품권을 비자금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유혹을 고객이나 상품권 발행업자 모두 떨쳐버리기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일반 물품 단말기와 상품권 단말기를 함께 설치해놓고 일반 물품 단말기로 상품권 판매를 결제한다면, 카드사는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고객이 진짜 구입한 대상이 무엇인지 카드사는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죠. 나 자신이 신용카드사 직원이지만 차라리 상품권은 현금으로만 거래하도록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습니다. 상품권을 일반 물품으로 둔갑시켜 신용 판매하는 행위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지 않는 이상, 신용카드 구매를 전면 금지하는 게 불법과 탈세를 조장하는 상품권 시장 근절 대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신용카드사 상품권 가맹 업무 담당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주간동아 2005.04.12 480호 (p26~28)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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