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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북유럽에 부는 신냉전의 찬바람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 핀란드 등 북유럽 5개국 미국 안보 우산 속으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북유럽에 부는 신냉전의 찬바람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는 시벨리우스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의 이름은 핀란드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1865~1957)의 성에서 따왔다. 시벨리우스의 대표 작품으로 교향시 ‘핀란디아’가 있다. 1900년 초연된 ‘핀란디아’는 제정러시아 지배 당시 핀란드인의 저항정신과 애국심을 일깨우고자 만들어졌다. 이후 ‘핀란디아’는 제정러시아 당국에 의해 금지곡이 됐지만 핀란드인의 민족혼을 고취했다. 시벨리우스 공원에는 시벨리우스 흉상과 24t의 스테인리스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기념비가 있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가 전 세계로 울려 퍼지는 듯한 모습이다.



‘핀란디아’와 핀란드화

유럽 북쪽 변방에 위치한 핀란드는 인구 540만 명 정도인 소국이다. 동쪽으론 러시아, 서쪽으론 스웨덴, 북쪽으론 노르웨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쪽으론 발트 해를 사이에 두고 에스토니아와 마주 보고 있다. 핀란드는 스웨덴과 소련이라는 2대 강국에 끼어 역사적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스웨덴은 1155년 핀란드를 정복해 자국에 병합한 뒤 오랜 기간 지배했다. 이후 1809년 제정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패하자 스웨덴은 핀란드 영토를 제정러시아에 넘겼다. 제정러시아는 핀란드를 자치령인 대공국(大公國)으로 만들어 간접 지배했다. 러시아 차르(황제)는 핀란드 대공을 겸했다.

제정러시아가 1917년 ‘2월 혁명’으로 붕괴하면서 핀란드는 독립했다.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옛 소련과 두 차례 전쟁을 벌였지만 패배해 영토의 12%를 소련에 넘겨야만 했다.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교·안보적으로 중립국을 표방했지만,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핀란드는 48년 소련과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는 소련이 침공받을 경우 핀란드가 소련을 지원한다는 안보협력 조항이 들어가 있다. 사실상 소련의 영향력을 인정한 셈이다. 소련과 1300km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때문에 만들어진 국제정치학 용어가 ‘핀란드화(Finlandization)’다. 핀란드화란 강대국과 인접한 약소국이 강대국 눈치를 보면서 자국 국익을 양보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핀란드는 냉전 시절 소련의 외교·안보정책에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았고, 소련이 붕괴한 1989년 이후에도 후신인 러시아와의 우호관계 유지를 외교·안보정책 최우선 순위로 상정해왔다. 핀란드가 지금까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외교 부문에서도 러시아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 유럽연합에 1995년에야 가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핀란드는 역사적으로 내재된 안보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강대국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핀란드 정부와 국민은 핀란드화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핀란디아’의 선율이 가슴속에 있는 핀란드 국민은 더는 수모를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핀란드 정부가 200년 만에 러시아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미국의 안보 우산 속으로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올가을 미국과 방위협정 체결을 추진 중이다. 유시 니인니스퇴 핀란드 국방부 장관은 “미국 대통령선거(대선) 이전인 11월 방위협정을 체결하길 희망한다”면서 “미국 대선 후보 가운데 누가 승리하더라도 우리와 계속 협력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방위협정은 양국의 합동 군사훈련 실시와 정보 공유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핀란드가 외교·안보정책을 바꾼 이유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는 등 패권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 전폭기들이 최근 핀란드 영공을 자주 침범하는 등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핀란드는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우려한다. 핀란드가 친미노선으로 외교·안보정책을 변경한 것은 전략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은 핀란드와 방위협정을 체결하면 바로 코앞에서 러시아를 직접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 공군은 8월 24일 핀란드 남부지역 상공에서 가상의 적을 퇴치하는 연합 공중전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핀란드가 자국 영토 내에서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힘에 근거하지 않는 유럽의 질서

핀란드의 이웃 국가인 스웨덴은 이미 6월 미국과 방위협정을 체결했다. 나토 회원국이 아닌 스웨덴은 5월 유사시 자국 영토 내에서 나토군 훈련을 허용하는 내용의 주둔국 지원협정도 맺었다. 스웨덴이 미국 등 나토와의 군사 협력에 적극 나선 것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증대하면서 발트 해 지역의 안보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러시아 전폭기들이 최근 스웨덴 영공을 자주 침범하고 있고, 러시아 잠수함들이 수도 스톡홀름 인근 해역에서 활동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스웨덴은 과거 몇 차례 전쟁을 벌이는 등 러시아와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나토 회원국인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도 미국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북유럽 국가 가운데 미국과 군사협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국가다. 미국은 러시아와 핀란드의 접경지역인 노르웨이 핀마르크 주에 2020년까지 레이더 기지를 설치할 예정이다. 노르웨이 북부지역인 핀마르크는 러시아 무르만스크 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노르웨이에 설치될 레이더는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의 일부로, 러시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추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 북부 함대의 활동도 감시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미국으로부터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 48대도 구매할 계획이다.

덴마크 역시 미국으로부터 F-35 27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덴마크는 그동안 나토가 실시하는 군사 훈련에 빠짐없이 병력을 파견해왔으며, 노르웨이와 함께 미국과의 합동 군사훈련도 실시해왔다. 아이슬란드는 소규모 해안경비대만 있고 군대가 없는 유일한 나토 회원국이다. 미국은 냉전 시절 전략 요충지인 아이슬란드에서 운용하다 2006년 폐쇄한 공군기지를 재건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이 기지를 이용해 러시아의 전략 핵잠수함을 감시하는 항공기를 운용할 방침이다.

미국은 북유럽 5개국과의 안보 협력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미 5월 백악관으로 북유럽 5개국 정상을 한꺼번에 불러 회담을 갖고 “힘에 근거하지 않는 유럽의 질서”를 강조하면서 군사적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북유럽 5개국도 자체적으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군사 협력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반면 러시아는 북유럽 국가가 미국의 안보 우산 속으로 편입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이 북유럽 국가를 침공할 것이라는 정보는 나토를 확대하려는 미국 측 음모이자 술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북유럽에도 신(新)냉전의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다.






주간동아 2016.09.07 1054호 (p48~49)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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