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뉴시스]
피해자들 전셋돈으로 강원도 부동산 개발 투자
피해자 박 씨는 2019년 9월 전세보증금 7200만 원을 주고 인천 미추홀구 아파트에 입주했고, 2년 후 보증금을 9000만 원으로 올렸다. 박 씨와 전세 계약한 이는 이른바 ‘바지 임대인’으로, 아파트 실소유주는 건축왕 남 씨였다. 이 아파트는 2017년 준공 직후 채권최고액 1억5730만 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임차인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었다. 지난해 3월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면서 임차인 박 씨는 전세금을 모두 날리게 됐다. 올해 들어 건축왕 남 씨 측으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임차인이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것은 이번이 세 번째로, 피해자 모두 20~30대 청년이었다.피해 임차인들은 수도권 일대에 주택 2700여 채를 보유한 남 씨를 인천 미추홀구 일대 ‘깡통 전세’ 사태의 핵심 인물로 보고 있다. 남 씨는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 등의 명의로 사들인 토지에 자신이 운영하는 건설업체를 통해 아파트, 저층 빌라를 지었다. 준공된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고, 동시에 전세 임차인을 모집해 보증금도 받았다. 이렇게 확보한 돈으로 다시 공동주택을 짓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남 씨는 강원도 동해경제자유구역 망상 제1지구 개발사업에도 투자했는데, 이중 일부는 세입자들로부터 받은 보증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사업 진행이 더뎌지고 금리까지 오르자 남 씨 측은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했고, 지난해 그가 실소유한 미추홀구 일대 주택들이 경매에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남 씨는 지난해 1~7월 자신이 미추홀구 일대에 보유한 주택 세입자 161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125억 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인천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으며 5월 3일 2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남 씨의 딸도 ‘바지 임대인’ 역할을 하는 등 전세사기에 공범으로 가담한 혐의로 4월 18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남 씨 측은 검찰 공소장의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사기 혐의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한웅 변호사는 “법리상 사기로 볼 수 없다”면서 “피해 구제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남 씨와 그의 회사 명의로 된 자산이 약 8000억 원이고, 여기서 부채 약 6000억 원을 빼도 2000억 원이 있다”면서 미분양 매물 분양 수익금, 신축 아파트 분양 수익금 등을 통해 피해를 구제하겠다는 주장이다. 다만 피해자들은 최근 부동산 경기가 악화된 가운데 분양 수익을 통한 피해 구제책의 현실성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자들 “깡통전세 특별법 제정하라”
한편 남 씨로부터 피해를 입은 임차인들이 구성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등 65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발족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4월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전세보증금 규제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전세대출·보증보험 관리 감독 강화 등 정부와 국회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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