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일 제천시청에서 열린 ‘전국 최초 행정조직 팀제 시행에 따른 선포식 및 결의대회’.
“과거 부(部)-과(課) 라인조직에서 어느 증권회사 인사부장의 주업무 중 하나는 신입직원 채용 시즌에 각 부서장의 직원 충원 요청을 막는 것이었다. 직원 수가 곧 부서장의 힘과 권위를 나타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제가 정착된 뒤로는 팀장들에게 신입직원을 받아가라고 해도 거절당하기 일쑤다. 팀 단위로 성과를 평가하고 책임지는 구조에서는 팀장이 직원 충원에 따른 비용 증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전무)
풍경 2 I 팀제의 수정
1995년 팀제를 도입한 SK텔레콤은 지난해 10월 국내 통신업계 최초로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던 직위체계를 연공서열을 파괴한 성과 중심의 수평적 인사제도로 개편했다. 아울러 본부장, 실장, 팀장 등 직책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팀원의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했다. 1998년 팀제를 도입했던 KT 역시 그로부터 한 달 뒤 팀장 밑의 직급을 매니저로 단일화했다.두 회사는 팀제 도입 이후에도 기존 직급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풍경 3 I 실패한 팀제
“팀제 도입 이후 2년여 기간을 보내면서 저는 팀제가 갖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이완, 냉소적 분위기, 간부급 사원들의 사기저하, 무사 안일주의와 도덕적 해이, 팀간 비협조, 팀장의 업무과중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2006년 11월27일, 재임명된 정연주 KBS 사장의 취임사 중에서)
각기 다른 이 세 가지 풍경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바로 팀(Team)제다.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팀제를 채택한 조직의 성격이 팀제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받아둔 명함들을 지금 한번 뒤져 보라. 홍보팀 쭛쭛쭛, 기획관리팀 쭛쭛쭛, 연기매니저 3팀 쭛쭛쭛…. 아마도 팀과 무관한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1985년 삼성물산을 효시로 국내에 도입된 팀제는 쓰나미처럼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일, 기능 중심의 행정혁신을 부르짖는 공무원 조직도 예외는 아니다. 2005년 3월24일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가 당시 코트라(KOTRA) 사장 출신 오영교 장관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어 중앙행정기관으로는 처음으로 팀제를 전면 도입한 지 만 2년. 이후 공무원 조직의 이곳저곳을 파고든 팀제는 과연 제구실을 해내고 있을까.
행정자치부가 2005년 12월 지방자치단체들에 보낸 ‘지방자치단체 팀제 운영 지침’.
행자부는 팀제 도입으로 부서장-국장-과장-계장-직원을 잇는 5단계 계층구조를 본부장-팀장-팀원의 3단계로 줄였다. 팀제 도입 당시 5본부 8관 1단 1아카데미 48팀으로 조직이 개편된 행자부는 현재 1실 5본부 14관 2단 3센터 65팀으로 재손질된 상태. 팀제 도입 이후 필요에 의해 새롭게 생겨난 업무 때문이라지만, 조직이 되레 커졌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행자부 등 22개 중앙부처 도입
관료 조직의 전형인 행자부의 팀제 도입은 안정성을 중시하는 공직사회의 특성상 일대 사건이었다. 팀장과 팀원의 직급이 역전되는 서열 파괴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행자부는 2006년부터 ‘파트장(Part Leader·PL)’을 두고 있다. 이는 행자부에 이어 팀제를 시행한 일부 중앙부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존 4·5급 직원 상당수를 파트장으로 임명해 팀장과 팀원 사이에 배치한 것. 파트장의 임무는 부여된 개인목표를 수행하는 동시에 해당 파트 팀원들의 업무를 총괄적으로 조정, 관리하는 것이다.
관리인력 축소와 실무인력 확충, 조직의 군살빼기,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특장(特長)으로 하는 팀제에 중간관리 인력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당초 행자부는 팀제 도입 취지를 감안, 새로운 결재 계층이 형성되지 않도록 파트장을 운영하지 않는 것을 팀제 운영의 기본 원칙 중 하나로 삼은 바 있다.
이에 대해 행자부 부내혁신전략팀 관계자는 “행자부의 팀제가 파트장을 운용하는 기업형 팀제를 모태로 한 만큼 팀 운영의 융통성을 기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팀장의 통솔범위가 지나치게 넓거나 이질적 기능이 복합된 팀의 경우 예외적으로 파트장을 두고 있다”고 해명했다.
공무원 조직은 아니지만 공공기관인 KBS가 2004년 파트장을 두지 않은 대(大)팀제를 시행했다가 사실상 실패한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은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팀 운영의 편리를 들어 ‘옥상옥(屋上屋)’이나 다름없는 중간관리자를 두고 싶어하는 팀장들에 의한 파트장 선발의 병폐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교수(행정학)의 말이다.
“계급을 없애 수평적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이 팀제인데, 예전과 유사한 자리를 신설한다면 진정한 팀제라고 말하기 힘들다. 팀제가 그렇게 좋은 시스템이라고 떠들면서도, 정작 최근 들어서는 왜 그 확산 속도가 느려지고 지금까지 팀제를 도입하지 않은 공무원 조직이 적지 않은지를 한 번쯤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공직사회의 팀제 관련 업무 또한 일원화되지 못한 실정이다. 행자부 팀제 관리는 행자부 부내혁신전략팀이, 지자체 팀제 관리는 행자부 지방조직발전팀이 따로따로 맡고 있다. 이러다 보니 팀제 도입 행정기관들에 대한 통계조차 제대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행자부 팀제는 과연 성공적인가. 박천오 명지대 교수(행정학) 등이 2006년 ‘한국행정논집’에 실은 논문 ‘팀제 도입 효과에 관한 탐색적 연구’에 따르면, 팀제를 도입한 12개 중앙부처 공무원 294명을 대상으로 팀제가 조직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인식조사를 벌인 결과, 팀제의 실효성이 불분명할 뿐 아니라 일부 측면에서는 역기능적 현상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지자체들
박 교수는 “팀제가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지금 같은 확산 추세가 과연 바람직한지에 의문이 든다”면서 “이미 팀제를 도입했거나 향후 팀제를 운용하려는 부처들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체류 중인 강성남 한국방송대 교수(행정학)는 ‘주간동아’와의 e메일 교환을 통해 “팀제가 유리한 조직은 신설되었거나 관리보다 현업성이 강한 조직, 보직을 부여할 수 있는 자리가 여유롭지 못하거나 단순 반복 업무가 아닌 창의적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라면서 “계급제를 근간으로 해온 정부 조직, 그중에서도 강한 관료주의적 성향을 지녔고 관리중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행자부는 팀제 시행에 적합한 조직 여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지자체들의 팀제 운영은 좀더 형식적이다. 올해 1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팀제를 전면 도입한 충북 제천시의 경우를 보자. 제천시는 과를 모두 없애고 과와 담당(계장)을 섞어 2국 2실 15과 88담당이던 기존 조직을 2본부 35팀 17파트로 바꿨다. 이에 따라 사무관과 6급 주사들이 서열 없이 팀장을 맡았다. 팀장은 기존 5·6급 직원들이 반반 정도다. 팀장과 팀원의 중간 단계로 6급이 대다수인 파트장을 둔 것도 행자부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팀제에서 직원들을 어떤 평가지표로 어떻게 계량화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미리 마련하지 않은 데 있다. 팀제는 각 직원별 인사평가보다 팀 단위 실적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보상을 우선시하는 것이 상식. 행자부의 경우, 제천시와 달리 팀제 성공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성과관리 시스템을 갖춘 상태에서 팀제를 시행했다.
이와 관련, 제천시 인적자원팀의 한 직원은 “팀제를 시행함과 동시에 성과관리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일단 팀이 갖춰진 뒤 목표를 정하고 평가지표를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올해 안에 성과관리 시스템을 마련해 내년부터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아직 팀제를 도입하지 않은 경기도 정책기획심의관실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형태로든 공무원 조직이 변해야 하는 것은 지상과제다. 하지만 행자부 등 단일 분야 업무를 관장하는 중앙부처의 팀제를 일선 지자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우리 도의 지난해 조직진단 용역 결과, 성과관리 시스템 구축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팀제 시행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경기도는 2월 조직개편 때 본청 직속기관인 각 사업소 담당(6급)의 직위를 없애고 몇 개 팀으로 묶어 실무인력을 늘리긴 했지만, 본격적인 팀제 도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2월28일 팀제를 전면 도입한 상주시의 경우 기존 2국 18과를 2본부 17팀으로 개편했다. 하지만 17개 팀장 자리 가운데 15개를 과장이던 5급 직원들이 차지했고, 6급이 팀장을 맡은 경우는 단 2명에 그쳤다. 더욱이 6급 팀장 밑에 5급 팀원을 한 명도 두지 않았다. 팀제가 전문성과 능력 위주의 인사, 연공서열 파괴를 특징으로 하고 있음에도 왜 이런 제한을 둔 것일까. 상주시 총무팀 측은 “행자부의 지침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행자부가 2005년 12월 각 지자체에 팀제 도입을 권고하며 보낸 ‘지방자치단체 팀제 운영 지침’을 보면, ‘하나의 팀에 팀장보다 상위 직급인 팀원을 배치하는 것은 지양’하라고 명기되어 있다. 이 지침은 ‘(2007년부터 시행되는) 총액인건비제(인건비 총액을 정하고 그 한도 내에서 직급별 인원 규모, 기구 설치, 인건비 배분을 융통성 있게 조정하는 제도)의 도입으로 지자체가 지역 실정에 맞게 조직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직자율권이 확대되는 것을 계기로, 기존의 경직된 관료제적 계층구조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 고객 지향, 성과관리를 통한 책임성 확보 등을 특징으로 하는 팀제를 도입함으로써 지방조직 혁신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팀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행자부의 팀제 도입 권고가 아니라 시 자체의 의사 결정에 의해 전국 최초로 자율적 팀제를 도입했다고 자랑하는 상주시가 팀장-팀원 관계 설정에선 굳이 행자부 지침을 따른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또한 상주시는 제천시와 마찬가지로 성과관리 시스템을 아직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신동엽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팀제나 6시그마 등 각광받는 경영혁신 기법들의 공통된 문제점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유행인 ‘패드(fad)’ 성격이 짙다는 것”이라며 “팀제 도입의 필요조건은 따져보지도 않은 채 무작정 팀제를 혁신조직 모델로 인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유행 추종일 뿐이다”라고 평가했다.
물론 팀제 옹호론도 존재한다. 2006년 행자부 조직혁신자문위원을 지낸 임창희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다른 기업보다 5년, 10년 일찍 팀제를 도입한 일부 눈 밝은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은 외환위기 등 온갖 위기상황을 잘 이겨냈다. 이에 반해 공무원 조직은 지금에 와서도 팀제를 덜 밀어붙인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럼 결국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의 이윤창출 극대화와 공조직의 효율성 극대화는 결국 일을 잘하자는 취지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공조직의 효율성 극대화 밀어붙이기
변해야 사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새로운 제도의 급격한 도입이 반드시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팀제의 성공 여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행정학자가 들려준 다음과 같은 말은 무분별한 팀제 도입 열풍을 곱씹어보게 한다.
“직장에서 매월 일정 회비를 거둬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이른바 ‘밥팀’도 서로 마음과 식성이 맞아야 잘 되는 법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메뉴를 합의해서 결정하고 모두가 주인이라는 생각에서 맛집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팀장 혼자서 밥팀을 이끌면 얼마 지나지 않아 흩어지고 만다. 부실한 팀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새로 들어오는 요즘 사람들은 팀을 싫어한다. 그들은 팀보다 더 작은 조직(그 형태가 어떻든)을 선호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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