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맨틱 할리데이'의 한 장면.
서울대의 한 교수는 “논술문제에 ‘정의’에 대해서만 나오면 수험생들의 답안에는 영국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 ‘무지의 베일’이 등장한다. 천편일률적이다”라고 비판했다. 이 말은 수험생의 답안이 채점교수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즉 창의성 없는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창의성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다음 글이 던지는 메시지를 파악해보자.
첫인상은 왜 쉽게 바뀌지 않을까? 정보처리 과정에서 초기 정보가 후기 정보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며, 이를 ‘초두 효과(Primacy Effect)’라고 한다. 심리학자 애시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초두 효과가 매우 보편적인 현상임을 밝혀냈다. 그는 두 집단 사람들에게 어떤 인물에 대한 성격을 여섯 가지 특성으로 설명해주었다. 두 집단 모두 같은 내용을 들었지만 그 순서는 다음과 같이 완전히 달랐다.
집단 1 똑똑하다 → 근면하다 → 즉흥적이다 → 비판적이다 → 고집이 세다 → 시기심이 많다. 집단 2 시기심이 많다 → 고집이 세다 → 비판적이다 → 즉흥적이다 → 근면하다 → 똑똑하다
그 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조금 전 들었던 사람에 대한 인상을 평가하게 했다. 성격 특성 중 어떤 내용을 먼저 들었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인상을 형성했다. 긍정적인 내용을 먼저 들었던 첫 번째 집단 사람들은 부정적 내용을 먼저 들었던 두 번째 집단 사람들보다 소개받은 인물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첫인상이 좋은 여자가 애교를 떨면 귀엽게 느껴진다. 하지만 첫인상이 나쁜 여자가 애교를 떨면 푼수처럼 느껴진다. … 왜 그럴까? 처음에 들어온 정보가 나중에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해석 지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번 형성된 첫인상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이민규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중
그동안 1200자 이상을 써야 하는 논술 수험생들에게는 서론의 출발 공식이 있었다. ‘오늘날 ~’ ‘현대에는’ 등으로 서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한때는 ‘우화, 동물, 문학, 영화’ 등으로 풀어가는 답안도 유행했다.
몇 년 전 서울대가 논술 모의문제의 예시답안을 발표했는데, ‘우화’로 시작한 학생의 답안이 최고 점수를 받았다. 이후 ‘우화’로 답안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부쩍 많아졌고, 이제는 ‘우화’로 시작하는 답안은 상식이 됐다. 논술답안의 상식적인 출발은 좋지 않은 첫인상을 줄 뿐이다.
그렇다면 통합논술에 해당하는 답안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먼저 1200자 이상의 답안은 ‘엉뚱한’ 내용으로 시작해도 좋다. 수험생 자신만의 엉뚱한 생각을 창의적으로 논제와 연결해 제시하는 것이다. 엉뚱한 내용이란 ‘국제 외교’의 신문 기사일 수도 있고 수험생 자신만의 독특한 ‘체험’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론의 독특함이 논제와 관련되어 흥미를 유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논제와 관련되지 않으면 ‘진짜 엉뚱한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통합논술은 대부분 1200자 이내의 답안 분량을 요구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통합논술의 답안은 논제가 요구하는 핵심 내용을 담은 본론으로 제시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짧은 답안이라도 채점 교수의 눈길을 잡는 수험생이 유리하므로, 자신만의 관점이 포함된 창의적인 내용으로 답안을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창의적인 애완견 가게 주인은 ‘독특한 애완견’ 한두 마리를 꼭 갖고 있다. 애완견을 사러 오는 손님에게 그 개를 제일 먼저 보여준다. 손님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킨 뒤 여느 애완견 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다른 개도 보여주는 것이다. 창의적인 전략을 가진 주인임이 틀림없다.
논술답안은 첫 문장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즉, 본론식의 핵심적인 내용만 적어야 하는 논술답안이라도 그 속에 자신만의 독특함이 있어야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창의적인 한두 문장은 채점 교수들의 시선을 확실히 붙들어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