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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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록 60만자에 깃든 권오홍 씨의 진정성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7-04-03 18: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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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가 지난 호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권오홍 씨의 비망록을 처음 접한 건 1월 중순이다.

    충격적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을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사실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그 안에 등장하는 ‘실세’들의 아마추어적인 행태는 몹시 거북했다.

    비망록은 A4 용지로 500장이 넘는다. 한 차례 정독하는 데만 꼬박 스무 시간이 걸렸다. 미친 듯이 읽었다. 재미있었다. 화도 났다. 기사에는 소개하지 않았으나, 비망록에 언급된 국정원의 행태는 실망스러웠다.

    사람들은 권씨가 왜 비망록을 공개했는지 묻지 않았다. 정상회담 얘기가 있었다 없었다, 비선으로 추진했다 안 했다에만 관심을 보였다.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자 그는 무척 안타까워했다. 비망록을 임의대로 잘라 소개한 기자의 잘못이다.

    권씨는 1989년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북한에 건 사람이다. 비망록을 공개함으로써 그는 많은 걸 잃었다. 앞으로 북한 쪽 일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의 비망록의 진위(眞僞)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 어처구니없는 건 비망록에 등장한 인물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속으로 실컷 웃어줬다.

    그의 비망록 전체를 공개하면 지금의 논란은 모두 갈무리된다. 어떤 사람은 망신을 하거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많다고 했다.

    그가 얻고자 하는 건 딱 한 가지다. ‘정치’가 아닌 ‘경제’로 한반도가 가진 경계를 해체(解體)하는 것이다.

    “내가 의도한 것과 반대 방향으로 상황이 흘렀다. 나는 정상회담은 남북의 상생, 즉 경제 문제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여겼다.”

    기자는 그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그의 잣대로만 세상을 보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의 진정성만큼은 의심하지 않는다. 60만 자가 넘는 글의 행간에 스며든 그의 고민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비망록 전문을 꼭꼭 숨겨두기로 했다. 언젠가 반드시 공개할 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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