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연설 다음 날인 3월12일 시라크 대통령이 엘리제궁으로 들어가면서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코앞에서 마주한 시라크 대통령의 인상은 오랫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큰 키에 잘생겼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인상을 지닌 리더였다. ‘우리도 이런 인물 좋은 대통령을 한번 모셔봤으면’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지금. 시라크 대통령의 인상에선 크게 달라진 점을 발견할 수 없다. 세월이 흘러 74세가 된 지금도 여전히 고상한 풍모다. 하지만 요즘 TV 화면에 비치는 그의 모습에선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진다. 3월11일 TV를 통해 ‘고별연설’을 할 때는 더욱 그랬다.
고별연설을 한 뒤 정치권과 언론의 반응을 보면서 그 ‘쓸쓸함’의 정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모두 “프랑스를 사랑한 대통령”이라고 인정하는 동시에 “프랑스를 퇴보시킨 대통령”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엘리제궁의 차기 주인을 노리는 대권주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들은 시라크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고 그와 거리를 두려 했다. 여권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는 “나는 어느 누구의 후계자도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사회당 후보 세골렌 루아얄은 “이제부터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야 한다”며 시라크 시대와의 단절을 강조했다.
국민 사이에서도 시라크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말년에 크게 떨어졌다. 그가 외면받는 이유에 대해 비평가들은 “프랑스가 속으로 곪아터지고 있는데 국제 문제에만 신경 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시라크 대통령이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사실은 모두 큰 치적으로 인정한다. ‘미국에 맞서 늙은 유럽을 이끈 지도자’라는 찬사도 받았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그런 평가를 받는 동안 프랑스는 추락하고 있었다.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실업률은 유럽 최고 수준을 이어갔다. 이렇다 할 개혁도 없었다. 그가 대통령이 된 뒤 프랑스 경제가 나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라크 대통령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정치인이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유명한 마술사의 이름을 따 ‘후디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는다는 의미에서였다. 그러나 임기 말년 그는 지지율을 회복하는 어떤 마술도 보여주지 못했다.
좀더 일찍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공과를 살펴봤더라면 어땠을까. 이루지 못한 일, 지키지 못한 약속을 뒤늦게라도 챙겼으면 좀더 좋은 모양새로 ‘고별인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떠날 날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 번쯤 뒤를 돌아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