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방송사들의 출구조사가 또 빗나가 구설수에 올랐다.
KBS MBC SBS가 4월15일 오후 6시 17대 총선 투표마감 직후 발표한 투표소 출구조사 예측이 실제 개표 결과와 크게 차이가 나 방송3사는 1996년 15대 총선, 2000년 16대 총선에 이어 또다시 망신을 당했다. 방송사들의 이번 총선 출구조사 보도가 최고 20석이 틀린 것으로 나타나자(상자기사 참조) 방송사의 개표 예상 보도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 거세다.
방송사들은 2000년 총선 때도 민주당을 제1당으로 예측했다 거꾸로 한나라당이 승리를 거둬 큰 망신을 당한 바 있다. 방송사들은 명예회복을 위해 수개월에 걸쳐 출구조사를 준비하면서 정확성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6대 총선과 비교해 두 배 가까운 인력을 투입하는 등 치밀하게 출구조사 준비를 해온 것.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조사를 맡긴 MBC는 사상 최대인 105곳의 출구조사 결과를 토대로 선거 결과를 예측했다. 코리아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출구조사 외에도 전화조사 추적조사 등을 통해 정확성을 높였고 KBS의 경우처럼 감리단을 운영하지는 않았지만 조사 요원들에 대한 교육도 어느때보다 철저하게 실시했다”고 밝혔다.
KBS와 SBS는 오류를 줄이기 위해 아예 손을 잡았다. 공동으로 TN소프레스 미디어리서치 2개 여론조사기관과 계약을 맺고 출구조사를 벌인 것. 두 방송국의 출구조사 결과가 조금 달랐던 이유는 똑같은 데이터를 놓고 SBS가 조금 더 조심스럽게 발표했기 때문이다.
KBS와 SBS는 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투표소에 3600명의 현장 조사요원 외에 감리요원까지 파견했다. 또 투표 당일 경합지역을 중심으로 114개 선거구에서 출구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는 지난 총선보다 40군데 정도 늘어난 것이다.
16대 총선에서 홍역을 치른 이후 KBS는 출구조사 시스템 개선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응답자에게 책임을 떠넘길 게 아니라 조사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 감리 인력 투입, 조사요원에 대한 반복적 교육, 2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 등이 시스템 개선 노력의 산물이다.
16대보다 두 배 가까운 인력 투입 치밀한 준비
KBS는 조사방법 개선 이후 벌어진 재·보궐 선거 등의 출구조사에서 당선자를 정확하게 맞혀와 이번 총선에선 정확성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졌다. KBS 선거방송에 자문교수로 참여한 조성겸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아이디얼타입(이상형)은 아니더라도 조사방법은 흠잡을 데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방송3사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는데도 결과가 실망스럽게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에서 출구조사가 정확치 못했던 이유로 크게 3가지를 꼽았다.
첫째, 방송사와 여론조사기관의 해명대로 총선 판세가 혼미해 선거 막판까지 접전지역이 많았기 때문이다. 선거 당일까지 오차범위 내에 드는 초경합지역이 무려 40여곳에 달해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 미디어리서치의 한 관계자는 “일부 경합지역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면서 “선거가 혼미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체적으로는 성공적인 예측이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둘째, 한국적 특수성으로 인한 출구조사의 구조적 한계가 예측 결과를 빗나가게 했다는 지적이다. 방송사들이 공개한 출구조사 결과의 각 당별 의석수의 최소와 최대의 폭이 상당히 컸음에도 최종결과가 발표 범위 내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은 혼미했던 총선 판세를 고려하더라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KBS와 SBS의 경우 현장에서 출구조사 거부율이 15 ~20%대에 이르렀다. 다른 선거보다 5~10%포인트 높아진 것. KBS측은 “거부자의 상당수가 한나라당 지지였던 것 같다. 130여곳을 다시 분석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한나라당 후보의 실제 지지율이 출구조사 예측치보다 높게 나왔다. 이런 차이가 비경합지역에선 문제가 안 됐지만 경합지역에선 역전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SBS 관계자도 “한나라당 표는 3% 가량 숨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출구조사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표심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응답 거부자에 대한 지지 정당 추정은 예측조사의 중요한 기술 중 하나다. 추정과 보정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잡아내지 못한 것은 능력, 또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오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지적한 바도 바로 여론조사기관들의 역량(capacity)이 전체 지역구를 치밀하게 예측하기엔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건국대 황용석 교수(신문방송학)는 “여론조사기관이 조사결과를 토대로 판세를 예측할 때 숨은 표심이나 조사 거부자의 성향을 예측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출구조사에 나선 회사들은 퀄리티를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실력이 아니라 역량의 문제다. 그 회사들이 보유한 사회조사전문가 수를 세어보면 오류의 원인이 나온다. 243개 지역구를 커버하기엔 역부족이다”고 설명했다.
선거 개표 방송에 참여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들 역시 243개 지역구를 모두 정확히 예측하기엔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고 토로한다. 코리아리서치센터의 한 관계자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엔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변수가 많아 조사 결과에 추정과 보정을 정확하게 덧붙이기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물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으며 결과도 그 정도면 괜찮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여론조사기관 대표는 “크다는 여론조사기관이 평소 100~200명의 인력으로 꾸려진다. 선거 때 3000~4000명을 운용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현재의 역량으로는 총선 결과를 정확히 맞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자계표기의 도입으로 개표가 빨라져 속보 효과도 30분~1시간 정도에 그친다. 돈을 쏟아 부으며 정확지도 않은 총선 출구조사를 계속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