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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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와 조PD가 만났을 때

‘친구여’ 노래 가창력과 랩 기막힌 조화 … 음반 불티·방송 같이 출연 인기몰이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04-22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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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순이와 조PD가 만났을 때

    정치, 사회, 예술 등 조PD의 독설과 비판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친구여’가 들어 있는 5집 앨범은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간 음반이지만 그의 재기발랄함을 느낄 수 있다.

    조PD와 인순이. 1976년에 태어난 래퍼와 1959년에 태어난 ‘성인 가요’ 가수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딱 그 중간 지점에 태어나 지금 30~40대가 된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소리바다와 냅스터를 뒤져가며 조PD를 이해하기엔 열정이 부족하고,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를 듣기 위해 무슨 무슨 문화회관 공연이나 밤무대를 찾아다니기도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골적으로 비판적인 조PD의 랩과 한이 담긴 인순이의 소울에는 중간에 낀 세대가 ‘대중가요’로 편하게 듣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 그래서 30~40대에게 그들은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은 가수들처럼 보였다.

    그 조PD와 인순이가 같이 노래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조PD의 다섯 번째

    앨범 ‘Great Expectation’에 들어 있는 ‘친구여’에서 조PD는 랩을 하고, 인순이는 노래를 불렀다. 음반이 나온 지 한 달 만에 5만장이 팔리고, 방송 횟수에선 1위를 차지했다. TV에서 얼굴을 보기 어려웠던 두 사람이 같이 가요순위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 백댄서들도 있고, 모든 방청객들이 환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낸다.

    두 시간 만에 음반 녹음 호흡 ‘척척’



    ‘친구여’에는 조PD의 다른 노랫말들을 채우고 있는 핏대 세운 독설과 욕설이 없고, 인순이는 훨씬 가볍고 밝아졌다.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도 없을 것 같다.

    ‘친구여 세월이 많이 변했구려/ 같이 늙어간단 말이 내게는 그저/ 먼 미래의 얘기일 뿐이었는데/ 얼굴에 솜털의 흔적도 없구려/ 어느새 남자의 미래는/ 책임감과 무거운 중압감/ (중략)/ 너무 재수없는 직장상사 얘기/ 별수 없는 아저씨 되는 게 무슨 대수/ 이담에 소주 한잔 할 때까지 답장은 필수/ (중략)/ 우리들의 얘기로만 긴긴 밤이 지나도록/ 세월이 지나도 변치 말자고 약속했잖아/ 영원토록 변치 않는 그런 믿음 간직할래/ 세월이 지나서 다 변해도 변치 않는 것 하나/ (중략)/ 이젠 바쁘더라도 우리의 추억을 기억해줘/ 친구여’

    “인순이 선배님이 절 알고 계시더군요. 안 좋게요.(웃음) 그래서 우선 가사를 보여드렸죠. 욕설이 없다는 것 확인시키고, 멜로디 들려드렸어요. 그 다음부턴 진행이 아주 빨랐죠. 음반 녹음이 두 시간 만에 끝났으니까요.”

    두 사람이 만난 건 우리나라 리듬&블루스의 디바로 인순이 선배님을 늘 꼽고 있던 조PD의 적극적인 기획 때문이다. 조PD는 5집을 준비하며 아예 인순이를 염두에 두고 ‘친구여’를 만들었다. 유치원 때 TV에서 본 ‘희자매’의 인순이를 기억하던 조PD는 미국 유학 시절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공연을 보며 인순이가 세계적 수준의 역량을 가진 가수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조PD의 이 같은 믿음이 전해져서였을 것이다. 인순이는 그 즈음 몇 명의 힙합 래퍼들의 구애를 받았으나, 조PD를 선택했다. 리듬&블루스 가수로서의 재능을 트로트 가요를 통해 보여주었어야만 했던 인순이는 이번 작업이 “무엇이 그동안 나를 가로막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인순이가 ‘좋지 않은’ 가수라고 생각했듯, 조PD는 우리 대중문화 주류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불량’한 가수다. 1998년 나우누리에 첫 번째 작품 ‘Break Free’ 파일을 올려놓아 일주일 만에 2만 번의 다운로드를 기록함으로써 그러잖아도 인터넷에 적대적이었던 음반제작자들을 화나게 했고, 엄청난 홍보비를 쓰며 도배활동(음반을 내고 몰아치기 방송출연을 하는 것)을 한 뒤 잠적을 반복하는 관례를 따르지 않아 방송과 엔터테인먼트사들의 눈 밖에 났다. 아니, 무엇보다 그 노랫말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니네는 진짜 웃겨/ 가만히 듣고 하다 보면 진짜 웃겨/ 너는 내가 본 새끼들 중에 제일 웃겨/ 왜 니가 뭣 땜에 된다 안 된다 참견이 많은지 몰라/ (중략)/ 돈벌려면 벌어 근데 딴 거 해서 벌어/ 너네 노래 갖고 까불면 그땐 진짜 죽어/ 만약 내가 쓸데없이 랩에 욕만 쓴다면/ 그건 쓸데없이 옷을 벗는 외설영화 한 장면이나 다름없지만/ 필요할 때 쓰는 표현이라면/ 것 땜에 판이 안 나가도/ 시도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

    인순이와 조PD가 만났을 때

    인순이(왼쪽)는 리듬앤블루스 가수로서 조PD 같은 젊은 래퍼들의 구애를 많이 받는다.

    조PD의 공격은 방송사, 부패한 정치인, 정경유착 재벌 같은 권력 집단에서 자신을 흉내내는 사이비 힙합 가수들과 문란한 사생활로 유명한 가수 ○○○(‘변태여우’)까지 좌우 아래 위 없이 넓기만 하다. 그래서 다른 가수들이 조PD를 공격하는 노랫말로 반격을 하기도 했다.

    “랩이 라임(운)과 메시지로 이뤄져 있다면, 둘 중 더 중요한 건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제 메시지는 정치에서부터 사람들의 탐욕까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에요. 그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욕설이나 속어를 다른 단어로 대치하기 어렵고, 그러기 위해 고민할 필요도 느끼지 않아요.”

    두 사람 음악 활동 큰 계기 될 듯

    조PD의 재능은 우리말과 영어가 섞인 새로운 언어 체계 속에서 자유롭게 운을 만들어내고, 메시지는 그래서 더 강력해진다는 것이다. ‘실버들은 천만사’처럼 인순이의 노랫말이 추상적으로 세계를 표현하는 데 비해 조PD의 랩은 우리말과 영어, 무협소설과 욕설, 인터넷 언어(‘외계어’)를 망라해 너무나 구체적으로 세상을 까발린다.

    ‘친구여’에서도 조PD와 인순이는 역할을 나누었고, 두 사람은 10대와 50대에게 동시에 팔리는 가수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조PD가 조중훈(그의 본명)이 아니고 PD인 데서도 알 수 있듯, 그는 허공에 욕지거리를 해대는 반항아가 아니다. 새로운 음악에 목말라 있던 소비자들을 벤치마킹한 똑똑한 기획자다. 1만원이 훨씬 넘는 CD를 사는 것보다 인터넷으로 음악을 공유하는 형식을 선호하는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가장 적당한 콘텐츠가 무엇인지 조PD는 남보다 먼저 간파했다. 그래서 그는 앨범제목과 같은 ‘Great Expectation’에서 ‘저 둘 셋셋 모인 그룹의 은퇴 인세보다 나의 한 장이 더 많은 이유’라고 허망한 인기를 좇아 음악을 버린 가수들을 조소한다.

    그는 실제로 ‘스타덤’이란 힙합레이블을 만들었고 현재 대주주인 사업가다. 버클리 음대 후배인 ‘싸이’가 ‘상업성’이 안 보인다며 방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톱디자이너 어머니와 사업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미국 유학을 떠난 조PD가 주류 대중문화를 공격하는 래퍼가 되고, 가난과 차별을 딛고 어렵게 상업적 주류문화에 진입한 인순이가 20년의 나이차를 두고 함께 노래하는 모습은 아이로니컬하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도 “가수의 시대적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조PD와 자선공연에서 노래하는 것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인순이가 ‘친구여’를 함께 부르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실 조PD와 인순이의 만남을 힙합이 매우 대중적인 장르가 된 가요계의 판도 변화와 분리해 설명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친구여’는 두 사람의 긴 음악 활동에서 단 한 번의 교차점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 지점부터 두 사람의 음악은 꽤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니 게으른 가요팬들에게도 조PD의 여섯 번째 앨범과 인순이의 열여섯 번째 음반을 기다리는 즐거움은 작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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