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기간중 비방 흑색선전 유인물 감시에 나선 서울 동대문구 선거관리위원회 감시원들.
[장면2]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당원인 K씨와 J씨는 지난 2월 당내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들이 총선기간 내내 당사에 출근해 궂은일을 도맡자, 주위에서는 “너무 티 내면서 재선거 공천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제17대 총선의 승패가 가려졌지만 잠자리가 뒤숭숭한 당선자들이 적지 않다. 유권자들의 심판에 이은 검찰과 법원의 사법적 검증 절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현재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60여명의 당선자에 대해 엄정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다 총선으로 연기됐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및 ‘명예훼손’ 등에 대한 검찰 수사와 법원 심리가 조만간 속행될 예정이다. 이에 연루된 10여명의 당선자들이 ‘금고(禁錮)형’ 이상을 받게 될 경우 자동으로 당선이 취소되기 때문에 재판결과에 따라 재·보궐선거가 이뤄질 지역구가 속출할 전망이다.
선관위 5777건 적발 …10월에 ‘미니 총선’?
이미 정치권에서는 올 10월이나 내년 4월쯤 이른바 ‘미니총선’이 예견되기 시작했으며, 선거법 위반 혐의자들의 절반 이상이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이라는 점을 들어 “여당 의석수가 과반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유지담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그러나 이번 총선의 선거법 위반 건수는 수치상으로 역대 최고 수준. 총선기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적발한 건수가 모두 5777건으로 16대 총선 때 3017건의 두 배에 가깝다. 인터넷 불법운동은 25건에서 268건으로 10배 넘게 증가했고, 금품·음식물 제공도 594건에서 948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또 대검 공안부는 선거 직후 선거법 위반사범 총 2084명을 입건, 이중 247명을 구속하고 508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16대 총선 때와 비교해 구속은 4배, 기소는 10배 가량 늘어난 수치.
선관위 관계자는 “열린우리당의 경우 상향식 공천제 여파로 사실상 선거운동 기간이 늘어 결과적으로 불법 선거운동 수요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선거운동에 방해가 될 정도로 강화된 선거법의 폐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대법원은 4월 초, 선거범죄 전담재판장 회의를 열고 금품살포, 허위사실 유포, 비방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 신속한 재판과 함께 가급적 당선무효형(박스 참조) 선고를 당부했다. 과거 의례적 선거법 위반에 적용되던 벌금 80만원 형이 사라질 셈이다.
송광수 검찰총장도 “선거법 위반사범에 대해서는 다른 사건에 우선해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과거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지만 앞으로는 1년 미만으로 단축될 전망이다.
한화갑 의원(위). 이인제 의원.
우리당의 경우 대부분 경미한 수준이라는 변명에도 적어도 5석 이상의 당선무효가 예상된다. 복기왕 당선자(충남 아산)는 지역구민들을 상대로 청와대와 국회 선심관광을 시켜준 혐의를 받고 있고, 강성종 당선자(경기 의정부을)는 콘서트 수익금 1000만원을 장애인협회 등 4개 단체에 불법 기부한 혐의를, 이 밖에 이용희 당선자(충북 보은·옥천·영동)와 변재일 당선자(충북 청원)는 식사 및 금품제공의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상락 당선자(경기 성남 중원)는 허위 학력표기로 비난과 동시에 동정의 대상이 된 경우다. 고 제정구 의원과 함께 빈민운동을 해온 이당선자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임에도 총선 예비등록 서류에 고졸로 표기했다.
한나라당은 텃밭인 영남권에서 선거법 위반자가 많다. 장윤석 당선자(경북 영주)는 선거대책본부장이 읍·면·동 책임자들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각각 30만원이 든 돈봉투를 돌리다가 경찰에 구속된 경우. 김정부 당선자(경남 마산을)는 부인의 자금살포 혐의와 미등록 선거원이 활동한 혐의로 위기에 몰렸으며, 권오을 의원(경북 안동)은 기초의회 의원에게 금품을 전달한 혐의로 선관위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경우에는 총선으로 연기됐던 불법 정치자금 관련수사로 불안에 떨고 있다.
우선 검찰은 자민련 이인제 의원부터 소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의원은 대선 직전 한나라당으로부터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을 받았지만 정치탄압을 내세워 끝내 검찰의 소환에 불응했다.
SK에서 경선자금 4억원 등 총 10억5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당 한화갑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도 다시 청구될 예정이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민주당 김홍일 의원은 나라종금에서 1억5000만원을 받은 건으로 법원의 판단을 초조하게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게다가 민주당 앞에는 ㈜부영의 1200억원대 비자금이란 덫까지 놓여 있다.
우리당이라고 상황을 낙관하기 힘들다. 신계륜 의원(서울 성북을)은 대부업체 ‘굿머니’로부터 3억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신의원은 “그 가운데 2억원을 돌려줬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최초 3억원이 정치자금 한도를 초과했기 때문에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인 이광재 당선자(강원 태백·정선·영월·평창)는 지난해 썬앤문 그룹으로부터 받았다는 1억500만원의 악몽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한나라당은 대표적 저격수인 이규택 의원(경기 이천·여주)과 정형근 의원(부산 북·강서갑)의 재판결과가 관심이다. 이들 두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근거 없이 비난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특히 정의원은 ‘DJ 빨치산 수법 발언’ 등 4건의 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검찰로부터 징역2년을 구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