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에서 ‘노동 거부’까지 ‘사회적 일탈’이라는 주제를 다룬 다양한 영화와 소설(아래).
-사람들이 말했다. 왜, 아르바이트만 하지요? 직장을 찾을 때가 아닌가요? 다들 의아해한다. 그러나 나의 꿈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한다면 이제야 나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겠지. 정확히 나의 꿈은 백수다.(김채린, 소설 ‘나에 대하여’ 중)
그리하여 ‘사회가 날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회를 거부’(영화 ‘위대한 유산’)하는 사람들이 있다. 삶의 기쁨이 아니라 삶의 억압이 된 자본주의 노동에 대한 개인적 저항이며 조용한 일탈로서 ‘자발적 백수’이기를 선택한 이들은 종종 야박하게도 ‘사회적 무임승차자’이며 ‘기생 독신자’들로 불린다.
임창정이 백수로 등장하는 ‘위대한 유산’이나 휴 그랜트가 환상적인 건달로 등장하는 ‘어바웃 어 보이’ 등 영화에서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백수들의 삶은 코믹한 에피소드로 희화화된다. 대형 마트의 시식코너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거스름돈을 남겨 먹으려고 동생의 담배심부름까지 떠맡는다는 식이다.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웃음 만드는 ‘자발적 백수’
소설에서도 자발적 백수들의 삶은 가장 비극적인 경우에도 웃음을 짓게 한다. 이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규칙과 행동 원칙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팬클럽 회원들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받기 힘든 공은 받지 않아’ 프로야구사에 보기 드문 패배의 기록을 남긴 삼미슈퍼스타즈야말로 진짜 야구를 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현실 속에도 무한경쟁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일탈하여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2003년 상반기에 45만3000명으로 추산된 자발적 실업자군의 경계선 안팎에 존재하며 “취업 눈높이를 낮추라”는 ‘각종 크루트’ 전문가들의 호소에 무심하다. 이들의 목표는 애초 필요 이상으로 일해 필요 이상의 돈인 연봉 1억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발적 백수’는 아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미치기’를 꿈꾸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 않다면 무리에서 벗어난 백수와 백조를 소재로 하여 잇따라 영화와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의 인생이 이처럼 뜨거운 공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고영직씨는 이런 작품들이 “자기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지 못한 자의 비애와 즐거움을 형상화함으로써 공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인터넷에 공개된 ‘백수파리’ 강민규씨의 작업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인터넷 (컴퓨터)과 열정을 바칠 만한 취미(축구복)는 백수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대학 졸업하고 면접을 열 번 정도 봤는데 일에 뜻이 없는 절 면접관들이 합격시킬 리가 없었죠. 공짜 시사회 쫓아다니고, 인터넷에서 영화 다운받아 친구들 주고 영화제 찾아다니는 자발적 백수 생활을 했어요. 한 달에 20만원 정도면 살 수 있더군요. 얼마 전 부모님 눈치가 보여 동사무소에 취직했어요. 하고 싶은 일이 없으니 자유시간만 많다면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었죠.”
그는 매일 퇴근하면 동네 도서관에 가 일본어를 공부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서다.
대학에서 영상디자인을 전공하고 자칭 ‘백수 파리’가 된 강민규씨(28)는 ‘100s party’란 웹사이트(www.100sparty.com)를 운영하며 ‘성공’할 때까지 백수로 살 작정이다. 그에게 성공이란 ‘하고 싶은 일로 돈 벌기’를 의미한다.
“만약 취직한 회사에서 ‘오늘부터 포르노사이트 운영한다’고 하면 어쩌지요? 차라리 가끔 돈 벌어 사이트를 운영하는 게 절 위해 낫다고 생각해요. 동생은 유통회사에 다녀 월급을 많이 받는데, 제가 늘 이야기해요. 꿈을 잃어버리는 게 정말 무서운 일이라고.”
그의 ‘일탈’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100s party’를 찾는다. 그의 사이트에는 ‘청년 4명 중 1명은 논다’ 같은 경제기사 클립에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세상을 나한테 맞추어보자’는 혁명적(?)인 생각으로 백수 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의 인터뷰까지 올라 있다.
일탈은 사적인 차원에서 개인적 해프닝이기도 하고 코미디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급진적 사상을 가진 학자들에게는 사회적 변혁의 힘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탈주의 철학가’로 알려진 이진경씨가 교수가 되는 대신 설립한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는 대학의 연구 시스템을 거부한 실험적인 학문연구 집단으로 학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세상을 나한테 맞추자”
또한 ‘노동해방문학’을 한 덕분에 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한 조정환씨도 ‘노동 거부’와 자율주의 노동(아우토노미아 운동)을 연구하는 공간을 만들어 주목을 받고 있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는 ‘노동 거부: 시대착오적 망상? 대안의 돌파구?’란 제하의 글을 통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노동을 할 권리’를 위해 ‘노동거부권, 즉 일하지 않을 권리, 게으를 권리, 여유롭게 살 권리는 결코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요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대부분 현 사회를 비판한다는 입장에선 유효하지만 현재의 경제, 사회적 구조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점에선 비현실적인 방식이라고 말한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도 “가시적 결과에 대해선 회의적이나 우리 사회에서 이 같은 현상들이 많아지는 건 바람직하다”면서 “백수들이 빌붙어 살 수 있어야 그 사회가 여유 있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진다”고 말한다. 사회가 가난하고 각박해질수록 미래에 대한 비전 대신 일탈에 대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영화와 소설에서 주인공들의 세계에 대한 ‘무감각’ ‘무감동’ ‘불감증’(‘para 21, 2003년 가을호)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남들과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낭만적이며 보헤미안적인 겉멋이라고 비난을 받아도, 또한 다다이즘의 오류를 반복하는 일이며 이탈리아에서 수십년 전에 완전히 파산한 사회주의적 전술이라 해도 그것은 다시 꿈꿔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일탈의 꿈이 궤도를 부수지는 못해도 속도를 늦출 수는 있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박민규,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