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는 대화를 들어보니 이들은 골프여행을 온 의사들이었다. 이들은 6명의 여자를 찍은 뒤 백인 포주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해변에 설치된 호텔 바에서 고급양주를 시켜놓고 술을 더 마신 이들은 오전 3시께 여자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매니저는 “방을 2개 얻어 쓰고 있는데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변태적 콘텐츠 제공 사이트 난립… ‘변태’ 범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아내 잘 돌보고, 성실하고…. 주변사람들 칭찬이 자자합니다. 원래 변태들이 그래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 형사(송강호 분)는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체포한 후 서장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주변사람들 칭찬이 자자한 변태’. 이 이질적인 두 평판의 조합은 우리 사회에서 ‘변태’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은 성을 떠난 공간에서는 ‘변태’가 아닌 지극히 ‘정상적’이고 때로는 ‘모범적’이기까지 한 사람들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부부 맞교환 성교 ‘스와핑’도 참가자 대부분이 고학력자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 때문에 더 화제를 모았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은 “그 멀쩡해 보이던 놈들이 사실은 ‘변태’였다니…”라는 경악과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일인데 뭐가 문제냐”는 그에 대한 반박으로 팽팽히 맞선다.
스와핑을 주제로 만든 국내 첫 영화 ‘클럽 버터플라이’의 장면들.
변태의 사전적 의미는 이상 성욕자. 흔히 사람들은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특정한 물건이나 상황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페티시즘(fetishism), 채찍·촛농 등으로 상징되는 SM(Sado-Masochism·가학 피학 성애 증후군), 동물과의 성적 접촉을 통해 흥분을 느끼는 ‘동물애호증(zoophilia)’ 등을 ‘변태’라고 부른다. ‘분변애호증(corophi-lia)’이나 목을 졸리는 것을 즐기는 ‘저산소애호증(hypoxyphilia), ‘시체애호증(necrophilia)’처럼 좀더 널리 ‘변태’라고 인정받는 성적 취향도 있다.
어린아이와의 성애를 꿈꾸는 ‘롤리타 콤플렉스’는 성인 남성들 사이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영화 ‘롤리타’의 한 장면. 파격적인 SM 묘사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영화 ‘거짓말’, ‘페티시즘’에 몰두하는 이들은 엉덩이, 발, 귀 등 신체의 한 부위를 통해 흥분을 느낀다(왼쪽 부터 시계방향).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선 우리가 ‘변태’라고 여기는 행위들이 지금도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네티즌들은 미팅 사이트를 통해 SM을 즐길 짝을 찾는 ‘노예팅’에 나서고 집단섹스를 할 대상을 찾아 마우스를 누른다. ‘포르노 망명’을 떠난 해외 한국어 사이트들은 국내 네티즌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SM 페티시즘 집단섹스 롤리타 등의 콘텐츠를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관음증 탓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변태적 콘텐츠를 제공하는 한국어 사이트가 수천개나 난립하고 있는 것을 보면 색다른 성적 환상을 꿈꾸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변태적 성행위의 범주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995년 출판된 ‘변태: 미국인들의 숨겨진 성생활’이라는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30년 전만 해도 오럴섹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변태적인 행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요즘 이성애자들끼리 항문섹스를 하는 일이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걸 끔찍하게 여긴다. 하지만 앞으로 30년 후에는….”
이와 관련해 문화평론가 김지룡씨는 “지구상에 인구가 50억명이라면 성적 취향도 50억개”라며 “변태와 정상행동을 구별하는 기준은 철저히 ‘성인 사이에 평화로운 합의가 있었느냐 여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클럽에 ‘아더’라는 필명으로 성 관련 칼럼을 쓰고 있는 조명준씨도 “성인 사이의 합의에 따른 성관계는 죄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는 이를 통제할 수 없다”면서 “어떤 행위를 ‘변태’라고 규정하고 배제하기보다는 부부 사이의 건강하고 즐거운 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변태’가 언젠가는 지극히 ‘정상적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지극히 변태적이라고 평가하는 SM도 성적 취향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성 관련 인터넷 사이트 팍시러브의 이연희 대표는 “대부분의 경우 SM은 가학자와 피학자 사이에 철저히 시나리오를 짠 후 진행되는 역할게임”이라며 “그래서 SM의 전제는 폭력이 아니라 양 당사자 사이의 신뢰”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이들은 서로 채찍이 좋으냐, 아니면 재갈을 물리는 편이 나으냐와 같은 부분까지 합의한 후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해 관계를 갖습니다. 채찍, 밧줄, 쇠사슬, 초 등 ‘게임 도구’들도 대부분 사람의 몸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전문업체에서 따로 제작한 것을 쓰고요. 포르노 영화에서 묘사하는 SM은 실제상황과는 크게 다릅니다.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과 양자의 동의 하에 성적 게임을 즐기는 SM 애호가들 가운데 누가 더 변태적일까요?”
그렇다면 롤리타 콤플렉스에 빠져 원조교제에 나서거나 해외로 원정까지 가 집단섹스를 즐기는 행동까지도 성적 취향이라고 변호할 수 있을까. 연세대 사회학과 김현미 교수는 “성행위는 기본적으로 철저히 사적인 것이므로 국가는 자유로운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에 대해서는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다양한 성적 취향을 인정하는 것이 원조교제나 강간과 같은 성폭력까지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