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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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적 근대화 주창 조선 사상가의목소리

  • 입력2003-10-23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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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생적 근대화 주창 조선 사상가의목소리
    올해는 조선의 대표적 사상가 혜강 최한기가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당시 1000여권의 책을 내놓아 가장 많은 책을 지은 학자(최남선 ‘조선상식문답’)였던 혜강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너무 적다. 자생적인 근대화의 길을 모색했던 석학을 우리는 너무 ‘무시’해왔던 게 아닐까.

    ‘선인들의 공부법’ ‘한국의 생태사상’ ‘나의 아버지 박지원’ 등의 책을 펴낸 서울대 국문학과 박희병 교수는 ‘운화와 근대’(돌베개 펴냄)에서 최한기 사상을 크게 서양을 보는 눈, 세계주의, 자연과 인위, 평화주의, 학문의 통일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눠 검토한다. 그리고 그의 사상이 갖는 근대적 면모와 그 결함과 한계까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최한기에 대해서는 1960년대 고 박종홍 교수가 조명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해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그들과는 다른 자신의 목소리로, “남의 혀가 아닌 내 혀로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짤막짤막한 표제들을 잇는 방식으로 혜강의 사상을 풀어내 어렵지 않게 읽힌다. 그렇다면 박교수는 왜 이 시점에서 최한기를 불러내는가.

    ‘최한기의 사상에는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여러 문제들, 이를테면 서양을 보는 눈의 문제, 주체성의 문제, 특수성과 보편성의 문제, 세계화 내지 세계주의의 문제, 리얼리즘과 아이디얼리즘의 문제 등등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이들 의제들은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혜강은 주자학적 전통에서 보면 가장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사상가다. 당대 조선 지식인 가운데 서양의 학문과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를 자신의 사상의 밑거름으로 삼았고, 모든 현상과 존재의 근거, 세계와 우주의 궁극적 실체를 ‘기(氣)’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기의 자기운동을 ‘운화(運化)’라고 했다. 요즘 말로 하면 운행 변화쯤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 운화는 최한기가 자신의 사유를 펼쳐가는 데 가장 중심에 둔 개념이다. 이 운화는 하늘에서부터 지구, 국가, 사회, 가문, 문학, 예술, 심지어 기계에까지 관철된다.



    저자는 최한기가 이 운화라는 개념을 거점으로 삼아 근대를 해석했으며, 그 해석의 결과는 당대 동아시아의 그 어떤 사상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성과 보편성으로 빛난다고 말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서양을 ‘오랑캐’쯤으로 여기고 있던 것과 달리 그의 기학 사유체계 속에서는 서양은 ‘양이’가 아니라 ‘서양’으로 자리잡는다. 당시 서양이 유럽 이외 각국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이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래서 서양에 대한 두려움을 걷고 사해동포, 세계 평화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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