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0

2011.03.28

‘멤놀(멤버놀이)’에 빠진 청소년

연예인 사칭 온라인서 신종 역할극…허위사실 유포에 중독 부작용 심각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journalog.net/kooo

    입력2011-03-28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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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멤놀(멤버놀이)’에 빠진 청소년
    “탑 빼고 누가 내 글 맘대로 읽으래? ‘멤놀’ 할 때 매너 좀 지키지?”

    3월 11일 새벽,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한 카페 게시판에서 설전이 벌어졌다. 남성그룹 빅뱅의 권지용과 탑이 주고받던 ‘러브레터’를 다른 멤버가 훔쳐본 것. 여성그룹 소녀시대의 제시카와 원더걸스의 소희, 남성그룹 2PM의 장우영이 댓글로 이들의 싸움을 진정시켰다. ‘인기그룹 빅뱅의 권지용이 그룹 멤버인 탑과 사귄다?’ 연예지에서 알면 대서특필할 특종이다.

    하지만 이들 연예인은 진짜가 아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모두 ‘멤놀 카페’ 중 하나인 ‘Romanic’에서 벌어진 것이다. ‘멤놀’. 어른들에게는 생경하지만 10대 사이에서는 예사로 쓰이는 단어다. 멤놀은 ‘멤버놀이’의 줄임말로,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가장해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에서 글을 쓰거나 대화를 주고받는 상황극을 뜻한다. 연예인의 가면을 쓰고 하는 일종의 가면놀이.

    멤놀의 효시는 만화나 게임 등의 캐릭터를 모방하는 놀이인 코스프레다. 연예인처럼 염색하고 옷을 입던 코스프레가 멤놀로 발전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최근에는 신종 멤놀이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주목받는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트위터, 미투데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유행하면서 온라인에 새로운 영역이 구축된 것. 자연히 멤놀이 일반인에게 노출되는 빈도도 잦아졌다.

    멤놀을 즐기는 청소년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이 어렵다. 멤놀을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간 자칫하면 연예인에게 얼이 빠진 ‘빠순이’나 ‘오타쿠’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다만 멤놀 카페의 수로 그 규모를 짐작할 따름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멤놀로 검색하면 다음은 1만1000여 개, 네이버는 4300여 개의 카페가 뜬다. SNS에서 멤놀을 즐기는 청소년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SNS 사이트인 미투데이에 2010년 1~3월 3개월간 멤놀에 대해 올라온 글은 6312건인 데 비해 1년이 지난 올 1월부터 3월 24일까지는 1만12건에 달한다. 미투데이에서 멤놀로 검색해 나온 글이 2007년 2월 이후 1만9439건임을 고려하면 이 중 절반 이상이 최근 3개월 이내에 쓰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코스프레’에서 아이들 문화로

    ‘멤놀(멤버놀이)’에 빠진 청소년
    그렇다면 멤놀은 어떻게 하는 걸까. 멤놀이 이뤄지는 곳은 주로 온라인 카페다.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기자가 직접 카페에 가입했다. ‘삼척 삼병’ ‘찔러보기’ ‘임관’ 등 모르는 용어 투성이. 정회원 인증을 받기 전 준회원 신분으로는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극히 한정돼 있다. 수많은 카페 중 가입절차 없이 멤놀을 즐길 수 있는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멤버 신청을 받는 게시판을 보니 그룹 F(x)의 설리, 티아라의 지연, 동방신기의 믹키유천, 2NE1의 산다라박, 샤이니의 온유, 카라의 구하라 등 인기 연예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신청 글이 꾸준히 올라와 있었다. 2년간 다음과 미투데이에서 멤놀을 즐겨온 유모(17) 양의 설명이다.

    “우선 희망하는 역할 멤버를 신청해서 ‘임관’해야 해요. ‘임관’은 특정 연예인 역할을 맡는 것을 뜻합니다. 그다음엔 해당 멤버의 말투나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글을 올립니다. ‘와쌉(what’s up)’ 같은 말을 많이 쓰는 연예인이면 글에 적절히 그 단어를 넣고, 독백체로 트위터를 쓴다면 그걸 따라 하고요. 이 때문에 본격적으로 활동하려면 해당 멤버를 연구해야 합니다. 말투가 다르면 그 멤버의 느낌이 안 난다는 이유로 공격이 들어옵니다.”

    멤놀의 또 다른 묘미는 커플놀이다. 3월 11일 기자가 찾아간 온라인 카페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멤놀 카페에서 커플이 된 멤버는 따로 ‘커플 게시판’을 만들어 그 안에서 연달아 글을 주고받는데, 상대가 아닌 다른 회원이 두 사람이 쓴 글을 몰래 읽었기 때문이다. 유양은 “‘커플방의 글을 몰래 읽는 ‘염탐’ 행위는 강제탈퇴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왜 뜨겠느냐”라며 “커플놀이는 현실에선 이뤄지기 힘든 멤버를 가상으로 엮을 수 있어 재미있다”라고 설명했다.

    “‘삼척 삼병’은 최악이에요. 삼척은 글에서 귀여운 척, 아픈 척, 센 척을 하는 행위이고, 삼병은 따옴표, 띄어쓰기, 맞춤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병신’이라는 뜻이에요. ‘ㅋㅋㅋ’ ‘ㅎㅎㅎ’ 등의 자음 남발도 우리 카페에서는 안 되고요.”

    온라인 멤놀 경력 3년 차로,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멤놀 카페를 운영하는 중학생 전모(15) 양은 나름의 원칙까지 가지고 있었다. 멤놀을 할 때도 지켜야 할 룰이 있다는 게 그의 주장. ‘무개념’ 멤버와 가입만 하고 활동 없이 가만히 있는 ‘찔러보기’ 멤버는 환영받지 못한다. 이런 회원이 많아지면 바로 회원 ‘물갈이’에 들어간다. 전양은 “물갈이는 활동하지 않는 회원을 탈퇴시키거나 강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멤놀은 미투데이, 트위터와 같은 마이크로 블로그로 공간이 확장됐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멤놀이 활발히 이뤄지는 사이트인 미투데이. 남성그룹 비스트의 멤버 손동운 역을 맡은 이의 멤놀 미투데이를 찾아가봤다.

    ‘3월 4일, 우리 비스트 멤버들은 하루하루 우리 여친님들 생각만^-^♥ㅎㅎ드디어 저 들어왔어요! 저 스케줄 바빠져서 별로 못해요ㅎㅎ 여친님들한테 미안해요!’

    ‘3월 13일, ‘뷰티’(그룹 비스트의 팬클럽)분들이 보고 싶은 동운이 왔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 vs “뭐가 문제냐”

    ‘멤놀(멤버놀이)’에 빠진 청소년

    멤놀(멤버놀이)은 SNS의 유행과 더불어 부각된 문화현상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멤놀문화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다른 멤버 사진까지 올리면서 친근하게 글을 쓰니 멤놀을 모르는 사람에겐 당연히 연예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실제 이 블로그를 연예인의 것으로 착각해 친구 신청을 한 사람도 있었다. 멤놀의 부작용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상당수 사용자는 “멤놀이 온라인 이름 사칭과 다름없다”라고 입을 모은다. 닉네임 ‘가나’는 “동경의 대상을 사칭하는데 좋은 시선으로 볼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닉네임 ‘꿍꿍이’는 2011년 1월 소녀시대 멤버 제시카를 사칭하며 멤놀을 하는 계정을 잡아내 미투데이 측에 신고하기도 했다. 멤놀임을 밝힌 사람은 별다른 제재가 가해지지 않지만, 밝히지 않고 오해 소지가 큰 사람은 계정이 해지되거나 정지된다.

    멤놀 문화를 바라보는 부모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연예인에게 빠지면 본업인 공부에 소홀하지 않겠느냐는 것. 실제 자신도 다음 카페에서 멤놀을 하는 닉네임 ‘박정수’는 “닉네임에부터 그 연예인으로 불리고 사람들끼리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보니 중독성이 상당히 강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멤놀을 즐기는 청소년 대부분은 “학교에서 공부할 거 다 하고 남은 시간에 노는 건데 멤놀이 문제면 소꿉놀이, 선생님놀이도 문제 아니냐”라고 반발한다.

    이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청소년이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가 아이돌밖에 없기 때문에 멤놀이 유행하는 것이다. 이런 역할극은 무대만 달라질 뿐 예전에도 있었다”고 분석한다. 한편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멤놀의 유행을 청소년기 특징과 관련지어 설명했다.

    “청소년기는 이상과 현실의 격차가 가장 큰 시기라 아이돌을 따라 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온라인 멤놀은 컴퓨터 앞에 앉아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탓에 중독성이 짙다. 확실한 건 매체의 진화에 따라 청소년의 놀이방식도 진화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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