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산에 거주하는 30대 후반의 직장인 민모 씨는 3월6일 오후 5시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맞았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민 씨 가족은 12년 전인 1994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시신기증을 서약한 상태. 가족들이 다니던 교회 목사에게서 “의료인들의 해부실습용 시신이 없어 동남아 국가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가족 모두 시신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주변 친인척의 만류에도 민 씨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임종하자마자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사망진단서를 요구했다. 70대 중반인 민 씨 아버지의 사망원인은 췌장암. 이미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돼 장기기증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고 통원치료를 받아오던 터였다. 민 씨는 아버지가 통원치료를 받아온 병원에 연락해 사망진단서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전화를 건 시각은 6시경. 그런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육안으로도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빨리 변해갔다.
장기기증자들과는 대우 ‘하늘과 땅’
장기기증운동본부와 다시 통화가 된 시각은 다음 날 오전 8시20분 무렵. 민 씨는 전화를 받은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에게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 사망진단서 내용,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했다. 몇 분 후 다른 관계자에게 전화가 걸려와 또다시 설명했다. 그런데 몇 분 후 또 다른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자초지종을 묻는 게 아닌가. 이날 오전 민 씨는 같은 내용을 세 번씩이나 되풀이해야 했다.
장기기증운동본부가 연결해준 병원은 이대목동병원. 아버지의 시신을 운구하기 위한 병원 구급차가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40분쯤. 병원 관계자의 설명은 가족들에게 또 한번 갈등을 일으키게 했다. 해부실습용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시신 반환을 최소한 1년에서 길게는 2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12년 전 시신기증 서명을 한 이래 어떤 설명이나 정보도 접하지 못했던 민 씨 가족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시신 운구를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 시신은 그렇게 병원으로 넘겨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이후 장기기증운동본부나 기증을 받은 이대목동병원에서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시신 없는 장례식을 조용히 치렀다.
민 씨는 “뭔가 특별한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힘겹게 시신기증을 결정했는데 장기기증운동본부나 병원에서 이처럼 무성의하게 처리하는 모습에 실망이 컸다”면서 “시신기증을 반대한 다른 가족이나 친인척들에게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모 씨의 어머니는 지난 연말 장기간 입원하던 서울 모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가족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병원에 시신기증 의사를 전달했지만 만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은 답답해졌다. 매장이든 화장이든 시신을 처리해야 할지 아니면 시신을 기증하기로 했으니 무작정 기다려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던 것. 발인 당일까지 기다리던 가족은 결국 시신기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사망한 개그맨 김형곤 씨가 시신기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병원에서 ‘아름다운 기증’이라고 평가하며 ‘기증식’까지 떠들썩하게 한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마침 장기기증운동본부는 3월 한 달을 ‘사랑의 장기기증 등록의 달’로 정하고 캠페인을 벌여 3월19일 하루에만 3000명의 장기 및 시신기증 등록을 받았다. 한국공항공사와 전국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는 건강보험관리공단, 전기안전공단 등 공기업까지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의 경우 지역본부에만 벌써 1000명 이상이 등록했다. 봇물 터지듯 밀려드는 신청서를 등록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됐다.
시신기증자 크게 늘어 대학병원 측 배짱
현재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등록한 장기 및 시신기증 등록자 수는 19만2000여명이지만 이번 캠페인 결과까지 합하면 3월 말 현재 20만 명을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결과에 뿌듯해야 할 장기기증운동본부에는 그러나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장기기증자들과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시신기증자들의 막막한 현실 때문이다.
장기기증운동본부 최승주 사무국장은 먼저 민 씨의 부친 시신에 대한 처리 과정이 정리된 상담일지를 내보이며 해명과 함께 시신기증의 현실적 한계를 털어놓았다.
“인원이 부족해 공식적으로 업무시간이 끝난 6시 이후에는 자원봉사자의 집으로 자동 연결돼 24시간 전화를 받는다. 뇌사자가 발생하거나 시신기증 의사를 밝혀오는 민원인이 있으면 즉각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민 씨의 경우는 그 전날 전화 통화한 기록이 없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분명 24시간 전화를 받고 그에 따른 대처를 하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처리 과정에서 다소 지연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병원에서 시신기증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보관할 수 있는 냉동고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시신기증자 가족들에게 대학을 연결해주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시신기증이 이뤄지지 않는 안타까운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날 상담기록을 보면 장기기증운동본부 민원 담당자가 민 씨 아버지의 시신을 기증받을 곳을 물색하기 위해 무려 6개 대학 의과대학과 부설병원 해부학실로연락한 것으로 돼 있다.
대학마다 기증 거부의 이유가 달랐다. 아주대와 성균관대, 가톨릭대 병원은 “자체 병원 등록자만 받는다”고 거절했고, 한양대는 “어제 1구를 받으면서 냉동고가 다 찼다”는 이유로, 경희대는 “3월 말부터 기증을 받겠다”는 이유로 시신기증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시신기증을 허락(?)한 곳이 바로 여섯 번째 전화 통화한 이대목동병원이었던 것.
또 다른 문제는 시신기증을 받은 일부 의과대학 관계자들의 비상식적인 태도다. 최 국장은 “과거에는 시신이 모자라 각 의대 해부학실에서 장기기증운동본부로 읍소에 가까울 정도로 부탁했는데 요즘에는 완전히 배짱이다. 한 대학 관계자에게 예의상 시신기증자 장례식장에 화환이라도 보내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이야기했다가 귀찮게 하려면 관두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신기증자 가족들에 대해 어떤 대학은 추도식이나 납골당을 제공하는 등 친절하고 적절한 배려를 하는 반면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않는 대학이 있다”는 게 최 국장의 부연 설명.
복지부엔 시신기증 담당 부서도 없어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차원의 대책은 물론 대책을 마련할 부서나 기관조차도 전무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는 각막이나 골수, 신장 등 장기기증자들에 대한 관리와 지원을 위해 2000년 2월 ‘국립장기이식센터(KONOS)’를 설립했다. 이 센터에는 장기이식기획팀과 장기수급조정팀 단 2개팀만 있다. “시신기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조직”이라는 것이 KONOS 홍보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보건복지부에는 시신기증을 담당하는 부서가 아예 없다.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정책본부 혈액장기팀 최진수 주무관은 “장기, 혈액관리, 인체조직, 대한적십자사 등과 관련된 업무만 관장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10월 장기기증 종합대책을 마련할 때도 시신기증 문제는 취급되지 않았는데 장기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장기기증도 중요하지만 시신기증만큼 인류의 의학 발전에 소중한 일은 없다. 이처럼 의로운 행동이 적절한 평가와 배려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기초의학에 투자하지 않아 기증된 시신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의학계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주변 친인척의 만류에도 민 씨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임종하자마자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사망진단서를 요구했다. 70대 중반인 민 씨 아버지의 사망원인은 췌장암. 이미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돼 장기기증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고 통원치료를 받아오던 터였다. 민 씨는 아버지가 통원치료를 받아온 병원에 연락해 사망진단서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전화를 건 시각은 6시경. 그런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육안으로도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빨리 변해갔다.
장기기증자들과는 대우 ‘하늘과 땅’
장기기증운동본부와 다시 통화가 된 시각은 다음 날 오전 8시20분 무렵. 민 씨는 전화를 받은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에게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 사망진단서 내용,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했다. 몇 분 후 다른 관계자에게 전화가 걸려와 또다시 설명했다. 그런데 몇 분 후 또 다른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자초지종을 묻는 게 아닌가. 이날 오전 민 씨는 같은 내용을 세 번씩이나 되풀이해야 했다.
장기기증운동본부가 연결해준 병원은 이대목동병원. 아버지의 시신을 운구하기 위한 병원 구급차가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40분쯤. 병원 관계자의 설명은 가족들에게 또 한번 갈등을 일으키게 했다. 해부실습용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시신 반환을 최소한 1년에서 길게는 2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12년 전 시신기증 서명을 한 이래 어떤 설명이나 정보도 접하지 못했던 민 씨 가족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시신 운구를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 시신은 그렇게 병원으로 넘겨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이후 장기기증운동본부나 기증을 받은 이대목동병원에서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시신 없는 장례식을 조용히 치렀다.
민 씨는 “뭔가 특별한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힘겹게 시신기증을 결정했는데 장기기증운동본부나 병원에서 이처럼 무성의하게 처리하는 모습에 실망이 컸다”면서 “시신기증을 반대한 다른 가족이나 친인척들에게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모 씨의 어머니는 지난 연말 장기간 입원하던 서울 모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가족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병원에 시신기증 의사를 전달했지만 만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장기기증, 생명존중을 실천하는 큰 희생’. 서울 시내 한 교회에서 신도들이 사후 시신 및 장기 기증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최근 사망한 개그맨 김형곤 씨가 시신기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병원에서 ‘아름다운 기증’이라고 평가하며 ‘기증식’까지 떠들썩하게 한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마침 장기기증운동본부는 3월 한 달을 ‘사랑의 장기기증 등록의 달’로 정하고 캠페인을 벌여 3월19일 하루에만 3000명의 장기 및 시신기증 등록을 받았다. 한국공항공사와 전국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는 건강보험관리공단, 전기안전공단 등 공기업까지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의 경우 지역본부에만 벌써 1000명 이상이 등록했다. 봇물 터지듯 밀려드는 신청서를 등록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됐다.
시신기증자 크게 늘어 대학병원 측 배짱
현재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등록한 장기 및 시신기증 등록자 수는 19만2000여명이지만 이번 캠페인 결과까지 합하면 3월 말 현재 20만 명을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결과에 뿌듯해야 할 장기기증운동본부에는 그러나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장기기증자들과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시신기증자들의 막막한 현실 때문이다.
장기기증운동본부 최승주 사무국장은 먼저 민 씨의 부친 시신에 대한 처리 과정이 정리된 상담일지를 내보이며 해명과 함께 시신기증의 현실적 한계를 털어놓았다.
“인원이 부족해 공식적으로 업무시간이 끝난 6시 이후에는 자원봉사자의 집으로 자동 연결돼 24시간 전화를 받는다. 뇌사자가 발생하거나 시신기증 의사를 밝혀오는 민원인이 있으면 즉각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민 씨의 경우는 그 전날 전화 통화한 기록이 없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분명 24시간 전화를 받고 그에 따른 대처를 하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처리 과정에서 다소 지연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병원에서 시신기증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보관할 수 있는 냉동고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시신기증자 가족들에게 대학을 연결해주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시신기증이 이뤄지지 않는 안타까운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날 상담기록을 보면 장기기증운동본부 민원 담당자가 민 씨 아버지의 시신을 기증받을 곳을 물색하기 위해 무려 6개 대학 의과대학과 부설병원 해부학실로연락한 것으로 돼 있다.
대학마다 기증 거부의 이유가 달랐다. 아주대와 성균관대, 가톨릭대 병원은 “자체 병원 등록자만 받는다”고 거절했고, 한양대는 “어제 1구를 받으면서 냉동고가 다 찼다”는 이유로, 경희대는 “3월 말부터 기증을 받겠다”는 이유로 시신기증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시신기증을 허락(?)한 곳이 바로 여섯 번째 전화 통화한 이대목동병원이었던 것.
또 다른 문제는 시신기증을 받은 일부 의과대학 관계자들의 비상식적인 태도다. 최 국장은 “과거에는 시신이 모자라 각 의대 해부학실에서 장기기증운동본부로 읍소에 가까울 정도로 부탁했는데 요즘에는 완전히 배짱이다. 한 대학 관계자에게 예의상 시신기증자 장례식장에 화환이라도 보내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이야기했다가 귀찮게 하려면 관두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신기증자 가족들에 대해 어떤 대학은 추도식이나 납골당을 제공하는 등 친절하고 적절한 배려를 하는 반면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않는 대학이 있다”는 게 최 국장의 부연 설명.
복지부엔 시신기증 담당 부서도 없어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차원의 대책은 물론 대책을 마련할 부서나 기관조차도 전무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는 각막이나 골수, 신장 등 장기기증자들에 대한 관리와 지원을 위해 2000년 2월 ‘국립장기이식센터(KONOS)’를 설립했다. 이 센터에는 장기이식기획팀과 장기수급조정팀 단 2개팀만 있다. “시신기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조직”이라는 것이 KONOS 홍보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보건복지부에는 시신기증을 담당하는 부서가 아예 없다.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정책본부 혈액장기팀 최진수 주무관은 “장기, 혈액관리, 인체조직, 대한적십자사 등과 관련된 업무만 관장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10월 장기기증 종합대책을 마련할 때도 시신기증 문제는 취급되지 않았는데 장기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장기기증도 중요하지만 시신기증만큼 인류의 의학 발전에 소중한 일은 없다. 이처럼 의로운 행동이 적절한 평가와 배려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기초의학에 투자하지 않아 기증된 시신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의학계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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