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8

2017.03.08

안병민의 일상경영

마케팅은 편집이다

Less is More!

  • 열린비즈랩 대표 facebook.com/minoppa

    입력2017-03-03 16: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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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줄 알았던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이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던 시장에 젊은 디자이너들이 찾아와 새로운 공방과 가게를 열면서 활기를 불어넣고 있죠. 신선한 아이디어로 벼룩시장을 젊고 경쟁력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디스플레이’입니다. 서울풍물시장에 가면 구제 옷과 신발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광경을 자주 접합니다. ‘일단 물건이 많아야 손님이 온다’는 상인들의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게 문제였습니다. 물건이 아무리 많아도 고객 처지에서는 여기가 도대체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편집’입니다. 특정한 기획 아래 여러 가지 자료를 엮어 책이나 신문, 잡지 등을 만드는 일을 우리는 ‘편집’이라 부릅니다. 특히 방송이나 영화에서는 촬영한 필름을 잘라내 재구성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편집은 우리가 가진 많은 것 가운데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 추려 재구성해 고객에게 제시하는 겁니다.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게 관건이란 얘기죠.

    이런 편집의 개념을 시장에 접목하니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주제를 정하고 그에 적합한 제품만 남긴 겁니다. 나머지 물건은 과감히 빼버리니 가게마다 개성과 콘셉트가 생겨납니다. 예컨대 ‘1990년대 빈티지 청바지 전문’ 같은 식입니다. 그동안 물건을 마구잡이로 쌓아놓기만 했던 가게들이 이제 구별해 덜어내니 고유의 색깔이 뚜렷해집니다. 이처럼 편집은 ‘선택’과 ‘정제’, 그리고 ‘배열’을 키워드로 하는 마케팅의 핵심 화두가 됐습니다.





    ‘빼기’를 잘해야 고객도 모인다

    예전엔 수많은 물건을 판다 해서 백화점이라 불렀습니다. 많은 물건이 있는 게 백화점만의 강점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급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면서 이제는 ‘선택’이 어려운 과제가 돼버렸습니다. ‘결정 장애’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닙니다. 그러니 무조건 더 많은 대안을 제시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패션전문점 ‘엘큐브’도 같은 맥락입니다. 롯데는 젊은 층을 겨냥해 취향별로 각기 다른 편집숍을 열었습니다. 이름하여 미니백화점 엘큐브입니다. 판매하는 제품의 종류는 기존 백화점에 비해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젊은 고객의 열광은 커져만 갑니다.

    ‘적은 게 더 많은 것(Less is More)’이라는 금언(金言)은 서울풍물시장과 엘큐브에도 이렇게 접목되고 있습니다. 수십 개 제품 라인을 갖추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컴퓨터업계 강자 델이 왜 달랑 여섯 개(맥북, 맥북 에어, 맥북 프로, 아이맥, 맥프로, 맥미니) 모델밖에 없는 애플에게 왕좌를 내줘야만 했는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무얼 만들고 무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훨씬 더 중요해졌습니다. 관건은 편집입니다. ‘더(More)’가 아니라 ‘덜(Less)’의 미덕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보통마케터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핀란드 알토대(옛 헬싱키경제대) 대학원 MBA를 마쳤다.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 강의와 자문, 집필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 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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