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후보자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 모집 13일째인 2월 27일 선거인단이 100만 명을 돌파했다. 최종적으로 250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12년 18대 대선 때는 108만 명이었다. 선거인단 규모가 커질수록 누가 더 유리할까. 상대적으로 당내 조직기반이 취약한 후보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해 총선을 전후한 시기에 당대표로 활동하며 당내 조직기반을 공고히 했다. 특히 공을 들인 신규 입당 ‘10만 온라인 당원’ 대부분이 친문(친문재인) 성향인 것으로 알려진다. 민주당의 실질적 오너라는 얘기가 나오는 근거다. 그런 점에서 선거인단 규모가 늘어날수록, 다시 말해 일반 국민의 참여가 확대될수록 불리할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 민주당 권리당원은 20만 명 선이다. 이 가운데 60%, 즉 12만 명을 친문세력으로 본다.
역선택? 대단히 비열한 일
권리당원의 압도적 지지를 희석할 수 있는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민주당내에서는 대체로 150만 명 선을 기준점으로 본다. 그 이상으로 선거인단 규모가 커지면 문재인 대세론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가장 위협적인 후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안 지사가 중도 및 보수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많이 얻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50대 이상에서도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 대연정 발언을 계기로 이른바 ‘확장성’을 획득한 것이 주효했다. 그래서 최근 친문계 내에서는 경선 과정의 역선택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쏟아내는 중이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보수세력이 민주당 경선에 의도적으로 참여해 문재인 떨어뜨리기를 할 것이라는 전제다. 문 전 대표가 직접 나서 “경쟁하는 정당에서 의도적, 조직적으로 역선택을 독려하는 그런 움직임이 있다면 대단히 비열한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 역시 최고위원-탄핵소추위원 연석회의에서 역선택에 대해 “중차대한 범죄행위다. 단호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 친박단체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인터넷 카페에는 민주당 선거인단에 등록했다는 글을 올린 사람까지 나왔다. 이후 문 전 대표 공식 팬클럽인 ‘문팬’에는 박사모,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일베(일간베스트) 회원 명단을 확보해 배제시켜야 한다는 글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친문계로서는 당연한 우려다. 그런데 역선택을 하려고 상대 정당의 선거인단에 참여하는 것이 그렇게 용이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귀찮다. 민주당 선거인단으로 참여하려면 공인인증서로 신청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나마 지금은 무료로 발급 가능한 은행거래용 공인인증서를 사용할 수 있지만, 모집 첫날에는 비용이 들어가는 범용공인인증서를 가진 사람만 신청할 수 있어 포기한 사람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중에라도 명단이 공개돼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역선택으로 결과가 뒤집혔다고 어느 한 후보 측이 주장하면 당 차원에서 조사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특정 후보 캠프에서 경선 판세를 예측한다는 명분으로 신청자 명단을 인증번호와 함께 수집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와 논란을 빚기도 했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역선택이 대규모로 이뤄질 개연성은 별로 높지 않다.
선거인단 규모가 커지더라도 비율 면에서 가장 많이 증가하는 것은 역시 진보세력이라는 점도 이변 가능성을 낮게 하는 변수다. 비당원이라도 성향은 당원과 비슷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진보세력의 응집력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진보세력의 응답률이 높아진 것도 이런 현상을 반영한다. 선거인단 참여율이 높아진 점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걱정해야 할 것은 역선택보다 ‘역의 역선택’이다. 상대 정당의 경선에 참여해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면 매우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집단일 공산이 크다. 조직 동원 능력도 상당할 것이다. 이들이 바라는 대선 본선 구도는 어떤 것일까. 문 전 대표와 안 지사 가운데 누구를 더 위협적이라고 생각할까. 문 전 대표 측의 판단과 달리 그들은 안 지사를 더 상대하기 힘든 후보로 생각할지 모른다.
‘문재인 지킴이’ 늘어나는 효과
문 전 대표는 촛불정국에서 진보 선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강성 발언도 쏟아냈다. “가짜 보수 정치세력을 거대한 횃불로 모두 불태워버리자”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문 전 대표는 이 기간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방문하겠다”는 발언도 내놓았다. 보수세력의 우려와 공포를 더 키운 것이다. 안보 또는 종북 프레임을 걸 명분을 제공한 셈이기도 하다.안 지사가 본선에 오른다는 것은 문재인 대세론을 꺾었다는 의미다. 이는 이변인 동시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순간 누구라도 2002년 대선 당시 경선 과정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잠재운 노무현 바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본선에서도 바람이 불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안 지사의 확장성은 본선에서 위력을 더 발휘할 것이다. 실제로 일부 여론조사에서 안 지사는 3자 가상대결에서 문 전 대표에 비해 더 많은 지지율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역선택’보다 오히려 ‘역의 역선택’이 가능성 측면에서 더 높다고 본다. 하지만 이 또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보수진영이 분열할 대로 분열한 상태라 조직적으로 이런 일을 벌일 개인이나 집단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친박단체나 보수단체의 선동적 구호로 회자되다 끝날 개연성도 없지 않다. 친박단체 내에서는 할복단 모집 공고도 나왔고 암살단 모집 공고도 등장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실행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문 전 대표 측의 거듭된 ‘역선택’ 우려 표시는 결과적으로 친문 성향 유권자의 선거인단 참여 확대로 귀결될 수 있다. 이른바 ‘문재인 지킴이’가 늘어나는 효과다.
정권교체 열망이 커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주당 경선은 개별 대선주자들의 약진으로 흥행에 청신호가 들어온 상태다. ‘역선택’과 ‘역의 역선택’ 논란으로 국민적 관심은 더 높아진 상황이다. 경선 흥행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이런 논란이 경선 후까지 이어져서는 곤란할 것이다. 아름다운 승복이 이뤄질지에 더 관심이 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