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된 몰티즈를 반려견으로 키우는 김모 씨는 얼마 전 반려견의 ‘슬개골 탈구’(무릎 앞 한가운데 있는 작은 종지 모양의 오목한 뼈가 어긋나는 질병)로 동물병원을 찾았다. 수술비는 자그마치 120만 원. 예상치 못한 비용에 놀란 김씨는 신용카드 3개월 할부로 수술비를 지불했다. 또 지난해에는 반려견이 장염에 걸려 1박 2일간 동물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검사·치료·입원비 등으로 약 30만 원을 썼다. 김씨는 “반려견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갓난아기 한 명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만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증가하면서 김씨처럼 반려견의 의료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현재 반려견을 키우는 국내 인구는 1000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반려동물 보유 가구 비율은 2012년 17.9%에서 2015년 21.8%로 증가했다. 덩달아 반려동물 관련 시장도 급성장 중이다. 매년 두 자릿수 이상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지난해에는 2조3000억 원까지 확대됐다. 2020년에는 5조 원을 상회할 것이란 전망이 심심찮게 나온다.
1년 6만 원이면 반려견보험 가입
하지만 문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다. 그중 의료비 부담을 호소하는 이가 많다. 동물도 나이가 들수록 온갖 질병에 노출되고 비용도 사람과 맞먹는다. 그렇기에 최근 견주들 사이에서 일명 ‘펫(pet)보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펫보험은 애완동물의 상해·질병치료와 손해 등을 보상하는 보험이다.
현재 삼성화재, 롯데손해보험, 현대해상 등 보험사가 취급하고 있다. 자동차보험처럼 1년에 한 번 보험료를 내고 해마다 갱신하는 시스템이다.
먼저 삼성화재 ‘파밀리아리스 애견의료보험2’는 보험 가입자가 키우는 애완견의 상해·질병치료비와 개의 잘못에 대한 배상 등을 보상해준다. 상해·질병치료비손해는 자기부담금 1만 원을 제외한 금액의 70%를 보상하며, 배상책임손해는 자기부담금 10만 원이 공제된다.
신규 가입 시 동물 연령은 만 6세 이하여야 하고 과거 병력이 있으면 가입이 제한될 수 있다. 또한 보험계약 시 가입 동물의 이름, 생년월일, 품종, 애견협회등록번호 등이 기재된 설문서와 가입 동물의 얼굴 사진 3매가 필요하다. 보험료는 만 1세 순종 몰티즈 기준 연 32만 원 수준이다.
롯데손해보험의 ‘롯데마이펫보험’은 강아지와 고양이 둘 다 가입할 수 있다. 수술 및 입원 시 의료비를 보장해주는 ‘수술입원형상품’과 통원진료까지 추가적으로 담보하는 ‘종합형상품’으로 나뉜다. 수술입원형상품은 수술 회당 최고 150만 원과 입원 하루당 최고 10만 원, 종합형상품은 통원 하루당 최고 10만 원을 보장해준다. 동물 연령은 보험 신규 계약 시 7세까지, 갱신 시 11세까지 가능하다.
또 2마리 이상 보험에 들 경우 특약을 통해 10% 할인받을 수 있다. 보험계약 시 애완견 사진과 반려동물등록증 또는 건강진단서 등이 필요하다. 고양이는 별도의 등록증이나 진단서 없이 사진 제출만으로 가입이 가능하다. 보험료는 자기부담률에 따라 다른데 소형견 1세 기준 70% 종합형상품(자기부담 30%)은 28만 원, 70% 수술입원형상품은 7만6600원, 50% 종합형상품은 22만9000원, 50% 수술입원형상품은 6만1000원이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10월 ‘하이펫애견보험’을 다시 선보였다. 일반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견 가운데 90일령 이상 만 7세까지만 가입할 수 있으며, 보상한도는 500만 원으로 질병과 상해에 대해 보상한다. 또 반려견이 입힌 피해도 연간 2000만 원 한도로 보상해준다. 자기부담금 1만 원 외 60~80%를 보상받을 수 있다.
보험료는 만 1세 기준 32만 원이며, 피부병 확장보장 특약을 추가할 경우 48만 원이다. 특히 앞서 두 보험과 달리 특약을 통해 피부질환과 구강질환은 물론, 슬개골·고관절 등의 탈구질환도 보상받을 수 있다. 다만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선천적·유전적 질병, 특정 질병, 예방접종 가능 질병, 임신, 출산, 미용, 중성화수술 등은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최근에는 국내 처음으로 P2P(Peer to Peer) 반려동물 의료보험이 등장했다. 보험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전문 스타트업 ‘두리’가 P2P 보험 플랫폼 ‘다다익선’을 통해 ‘롯데마이펫보험’ 계약자를 모집하고 있는 것. 일정 수 이상 인원이 모이면 보험사에 더 나은 보장 내용과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형태다.
두리는 당초 목표 인원인 2000명 모집에 성공해 롯데손해보험 측으로부터 15% 할인된 가격을 받아냈다.
반려동물 의료수가 지정 시급
오명진 두리 이사는 “견주가 의료비에 부담을 느껴 반려견을 유기하는 경우가 많다. 차주가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견주의 반려동물보험 가입이 활성화되면 유기견 수도 줄어들 것이다. 또한 펫보험에 들려면 정부가 실시 중인 ‘동물등록’(시·군·구청에 반드시 개를 등록해야 하는 제도)이 필수인 만큼 펫보험 가입은 동물보호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반려동물보험 가입률은 0.1%에 불과하다. 가장 큰 이유는 펫보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다. 보험회사 한 관계자는 “견주조차 펫보험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10여 년 전 다수 보험사가 펫보험을 출시했지만 수익률이 낮다는 이유로 몇 년 만에 보험 판매를 중단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보험상품이 많지 않다 보니 고객 니즈가 꾸준함에도 쉽게 활성화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대해상은 2007년 국내 손해보험사로는 최초로 애견보험을 출시했다 2011년 철수했고, 삼성화재도 2008년 애견의료보험을 내놨지만 2011년 판매를 중단했다. 메리츠화재는 2013년 ‘튼튼K애견보험’을 내놨으나 이용이 저조해 출시 1년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 밖에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AIG손해보험이 2008년 펫보험을 출시했다 2~3년 만에 거둬들였다. 삼성화재와 현대해상은 각각 2012년, 2016년 다시 상품을 내놨고 롯데손해보험만 2013년 이후 꾸준히 판매 중이다.
새로 출시된 반려동물보험 상품은 과거에 비해 손해율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업계에서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반려동물 의료비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세중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동물병원이 보험에 가입된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과다한 의료행위를 제공하거나 의료비용을 높게 책정하면 보험사의 손해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보험사들이 반려동물보험 상품을 적극적으로 시장에 내놓으려면 ‘동물병원 의료비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1999년 자율 경쟁을 유도해 의료수가를 낮추겠다는 목적으로 기존에 있던 ‘동물 의료수가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하지만 그 결과 반려동물 진료 및 치료비는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 됐다. 더욱이 최근 몇 년 사이 반려동물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프리미엄급 서비스를 표방하는 동물병원의 경우 일반 동물병원에 비해 몇 배나 높은 비용을 청구한다.
한국소비자연맹 조사에 따르면 동물병원에 따라 치료비가 최대 18배까지 차이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려견의 주요 진료 명목으로 따져보면 제왕절개 비용은 최저 10만 원부터 최대 115만 원, 중성화수술은 최저 10만 원에서 최대 95만 원, 스케일링은 최저 5만 원에서 최대 45만 원, 복부초음파는 최저 1만 원에서 최대 18만 원이다. 반려견이 잘 걸리는 슬개골 탈구는 병원에 따라 수술비가 200만 원까지 차이 난다.
펫보험, 대선 공약으로 등장
이에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전진경 이사는 “독일처럼 진료비 상·하한선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 이사는 “독일은 2008년 동물 의료수가를 최종 확정했고, 동물병원은 해당 수가에서 최대 3배까지 받을 수 있어 자율 경쟁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보험 가입이 활성화되면 동물 복지도 자연스럽게 향상되는 만큼 견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보장 내용도 장기질환뿐 아니라 골절·예방접종 등 기초질환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반려동물보험 활성화는 대선 이슈로도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2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물방역국 신설 △동물등록제 실효성 강화 △반려동물 의료보험(공보험) 제도 도입 △유기동물보호시설 운영 지방자치단체 직영화 △유기견 입양 장려 △전통시장 불법 개 도축 금지 △반려동물 놀이터 건립 예산 지원 △동물 학대 처벌 강화 등 8대 공약을 전했다.
이 중 반려동물 의료보험 제도 도입과 관련해 이재명 대선캠프 정책팀 관계자는 “동물 복지를 위해 사람처럼 공보험 제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보험이 있긴 하지만 보험료 면에서 부담을 느끼는 견주가 많다. 공보험 도입과 더불어 동물 의료수가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을 완화하고자 정책 마련에 착수했다. 2월 15일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 연구용역 입찰 공고를 낸 것. 연구용역은 진료비 공시 제도와 의료수가 제도 도입 관련 조사를 진행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진료비 공시 제도가 동물병원 간 경쟁을 유도해 진료비를 낮추고, 의료수가 제도는 일정 진료를 표준화해 동물병원을 찾는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