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한국 축구 혁신 특별전담팀(TF) 구성, 운영 관련 브리핑이 있었다. 최순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권오갑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김휘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우상일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양재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이용수 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채재성 동국대 교수(왼쪽부터).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사령탑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 현 네덜란드 감독과 함께 ‘4강 신화’를 일군 주역 중 한 명. 1997년부터 2년간 기술위원으로 활동한 뒤 2000년부터 2002년 월드컵까지 기술위원장을 맡아 히딩크 감독 선임부터 4강 신화까지 영광을 함께했다. 서울체고와 서울대를 거쳐 미국 오리건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파 축구인. 실업축구선수로도 맹활약한 경기인 출신이다.
벼랑 끝 선택은 ‘야당 인사’
이 위원장은 4년 전에 이어 지난해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때도 ‘축구계 야당’인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을 지지했다. 그는 ‘허승표 캠프’의 핵심 인사였고, 축구계 발전을 위해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역설한 인물이었다. 그가 한일월드컵 이후 KBS 해설위원, 세종대 교수로 활동하면서 제도권과 거리를 두며 한동안 재야에 머문 것도 이 때문이다. 2013년 미래전략기획단장으로 다시 대한축구협회에 몸담긴 했지만, 그의 구실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정몽규 회장 등 집행부가 ‘야당 인사’인 그에게 구원투수라는 중책을 맡긴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그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야당 인사인 이 위원장을 중용하면서 위기에 처한 한국 축구의 해결책으로 축구계 내부의 ‘대통합’을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이 위원장은 온화하면서 합리적 성품을 지녔다. 그러나 자기 신념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과 함께 강한 뚝심까지 갖춘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축구계 내부에선 “이용수 위원장이 기술위원장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집행부로부터 대표팀 사령탑 선임 등에서 사실상 전권을 부여받았을 것”이라고 평가하며 “집행부와의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왔다.
이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기술위원회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가 될 수는 없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으면서도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기술위원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라질월드컵을 치른 기술위원회는 이름만 기술위원회였을 뿐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구였다. 황보관 전 기술위원장은 월드컵 때 대표팀 지원팀장을 맡았다. 지난해 5월 대한축구협회 조직개편 이후 기술위원회가 ‘식물위원회’로 불린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기술위원회 구성에서부터 뚝심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성남FC와 강원FC 사령탑을 지낸 김학범 전 감독의 기술위원 위촉이다. 김 기술위원은 축구계에서 소문난 ‘공부하는 지도자’다. 더욱이 대한축구협회와 대표팀 운영과 관련해 쓴소리를 가장 많이 한 축구인이면서, 이 위원장과 함께 유력한 기술위원장 후보로 꼽혔던 인물이다. 이 위원장은 김 기술위원을 상근 기술위원 3명 중 1명으로 위촉하면서 ‘경쟁자’도 함께할 수 있다는 포용력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축구계 개혁’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으며, 이는 축구계에서 즉각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위원장은 아직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선임 이후 초반 분위기만 놓고 보면 뚝심과 굳은 신념으로 한국 축구 개혁의 큰 물줄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게 한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7명의 신임 기술위원에 대한 소임을 구분했다. 각급 대표팀 기술과 전술지원 담당 김학범 위원, 프로 및 K리그 협조체계 담당 조영증 위원, 여자축구 발전 담당 최인철 위원(왼쪽부터).
이 위원장은 기술위원회 개혁 차원에서 7명의 신임 기술위원이 맡을 소임도 구분했다. 김학범 위원은 각급 대표팀 기술과 전술 지원을 담당하고, 김남표 위원은 지도자 육성, 최영준 위원은 유소년 육성을 맡는다. 이 기술위원 3명은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트(NFC)에서 상근토록 했다. 축구 현장에서 일하는 조영증 위원(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은 프로 및 K리그 협조체계, 최인철 위원(현대제철 감독)은 여자축구 발전, 신재흠 위원(연대 축구팀 감독)은 대학과 아마추어 선수 육성을 책임진다. 스포츠의학 전문의 정태석 박사도 기술위원회에 합류해 스포츠 의·과학 지원을 맡도록 했다. 역대 그 어느 기술위원회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철저한 역할 분담과 책임체제다.
이 위원장은 한국 축구의 장기 발전을 위해 기술위원회가 추구할 ‘3영역 10과제’도 제시했다. 세 가지 주요 영역은 △연령별 대표팀을 위한 지원 시스템 구축 △국내 축구의 질적, 양적 향상 △역량을 갖춘 관련 인적 자원의 양성 등이다. 기술위원회가 장기적으로 한국 축구의 ‘싱크탱크’ 구실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그동안 근시안적, 행정 편의적으로 움직였던 기술위원회를 근본부터 바꾸겠다는 말이다.
장기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이용수 기술위원회’가 도출해내야 하는 첫 결과물은 홍명보 전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을 새 사령탑 선임이다. 기술위원회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30명 안팎의 후보군을 추려 한국 축구의 운명을 짊어질 새 지도자를 찾는 작업에 돌입했다.
대표팀은 내년 1월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을 앞두고 있고, 이에 앞서 9월 5일과 8일 각각 베네수엘라, 우루과이와 평가전이 예정돼 있다. 대표팀 사령탑 선임 작업은 일개 구단의 감독 선임과는 차원이 다르다.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이 위원장이 “9월 평가전 때문에 무리하게 새 사령탑을 선임하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밝힌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가능하다면 새 사령탑이 9월 평가전을 관중석에서라도 지켜보게 하고 싶다”는 말로 이르면 9월 초까지 새 감독 선임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국내파든 해외파든 새 지도자는 기본적으로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 맡게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월드컵 지역 최종예선 통과’라는 단서가 달린다. ‘이용수 기술위원회’가 만들어낼 첫 선택이 누구일지, 한국 축구계의 온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