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곡성의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7월 31일 전남 순천 덕암동 역전시장에서 시민들에게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7·30 재·보궐선거(재보선) 전남 순천·곡성에서 49.4% 득표율로 당선하면서 여당 인사로는 처음 전남 지역 국회의원이 됐다. 고향 곡성에서 몰표가 나왔고,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 출신지인 순천에서도 앞섰다. 상대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재선인 서 후보여서 의미는 더 컸다.
새누리당이 전신을 포함해 호남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한 건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강현욱(전북 군산을) 전 의원 이래 18년 만. 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전남에선 첫 당선이라 호남에서 지역감정 벽을 허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그가 “호남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순천·곡성에 도전장을 내밀 때만 해도 ‘무모한 도전’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전거 운전대를 잡았다. 당 지도부의 대대적인 지원유세 대신 이른바 ‘쌀집 자전거’ 한 대로 나 홀로 선거를 치른 것. 시의원을 포함해 3번이나 ‘야당 텃밭’에서 선거를 치른 경험상 그는 ‘선거는 조직보다 민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17대 총선(광주 서구을)에서 그는 1% 득표율에 그치면서 지역감정 벽을 뛰어넘지 못했지만,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39.7%를 득표해 자신감도 있었다. 재보선 한 달 전부터 ‘예산 폭탄’을 공약으로 내걸고 표심 잡기에 주력했다. ‘말도 안 된다’는 야당 측 비하에는 “예산을 따오지도 못하면서 훼방만 놓는다”고 오히려 큰소리쳐 주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택시기사와 버스기사, 환경미화원 손을 잡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미치도록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슬로건이 적힌 현수막을 걸어 일꾼 이미지를 강조했다.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비례) 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호남 예산 확보에 주력했던 ‘호남 예산 지킴이’인 점을 부각하면서 “2년 동안 머슴처럼 쓰고, 마음에 안 들면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읍소하고 다녔다.
허름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 홀로 유세’에 나서는 그를 보고 유권자의 마음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전직 청와대 홍보수석이라는 ‘높으신 분’ 이미지도 사라졌다. 선거 이틀 전에는 유방암에 걸린 부인 김민경 씨가 선거운동 이후 처음 유세차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면서 주민들의 마음을 ‘짠하게’ 했고, 결국 그는 국회에 입성했다.
이 의원은 “순천·곡성 주민들이 누구도 하지 못한,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는 위대한 첫걸음 내딛었다. 지역구도, 지역감정을 무너뜨리는 물꼬를 튼 이상 큰 결실을 맺게 도와달라”며 “주민들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머슴이 되겠다”고 말했다.
1958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광주살레시오고와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이 의원은 84년 민정당 구용상 전 의원의 캠프에 합류하면서 광주 출신 ‘여당맨’이 됐다. 2002년 이회창 후보 캠프에서 전략기획을 맡았고, 2004년부터는 세상이 다 아는 ‘박근혜맨’이 됐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광주에 출마한 그에게 당대표이던 박 대통령은 두 번이나 전화를 해 격려했고, 이후 낙선 후보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당이 호남을 포기해선 안 된다”며 격정토로를 하던 그를 당 수석대변인으로 임명하며 인연을 맺었다. 그는 10년간 박 대통령 곁을 지켰고 박 대통령 당선 이후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을 지냈다.
# ‘공주’ 이미지 벗고 화려한 부활 나경원
7·30 재·보궐선거 서울 동작을에서 당선한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과 광주 광산을에서 당선한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
선거 초반까지만 해도 10%p 차로 앞선 나 의원은 경로당을 돌며 큰절을 올리는 등 조용한 선거를 시작했다. 노량진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동작의 딸이 엄마가 돼 돌아왔다. 대한민국 어머니의 힘으로 지역의 어려운 숙제들을 해나가겠다”며 몸을 낮췄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기동민 후보와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노 후보로 야권단일화에 나섰고, 박빙의 승부가 예측되면서 지도부 유세가 본격화됐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야권단일화 이후 선거 막판 사흘 연속 동작을 방문해 “나 후보를 박 대통령 뒤를 잇는 여성 지도자로 키워야 한다”고 힘을 실어줬고, 결국 새누리당에서 유일한 여성 3선 의원이 배출됐다.
나 의원은 “나의 승리는 동작 주민과 연대의 승리”라며 “이번 선거가 주는 메시지는 싸우지 않는 ‘덧셈’ 정치를 해달라는 것이다. 국회가 합의의 정치를 이뤄내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판사 출신인 그는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특보를 맡으면서 정계에 데뷔,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다. 18대 총선에선 서울 중구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서 패한 뒤 시장직에서 물러나자 여당 후보로 보궐선거에 나섰다. 2012년 4월 19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빼어난 외모와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그는 선거 때마다 지원 유세 요청 1순위로 거론됐다.
이번 동작을 공천 과정에서도 애초 새누리당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거절당하자 나 의원에게 출마를 요청했다. 나 의원은 여건이 좋지 않은 동작을에 전격 출마해 승리로 화답함으로써 그동안의 ‘엘리트 공주’ 이미지를 벗어버리는 한편, 김무성 대표 체제의 새누리당에서 일정 구실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상처뿐인 영광 권은희
야당 텃밭 광주 광산을에서는 예상대로 새정치연합 권은희 후보가 당선했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의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했던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에 성공했지만, 새정치연합이 7·30 재보선에서 참패한 주요인으로 지목돼 상처뿐인 금배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는 권 의원 공천을 위해 당초 광산을에 공천을 신청한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돌연 서울 동작을에 전략공천하면서 공천 신청자들과 486 출신 등 당내 인사들의 반발을 샀다. 급기야 공천을 신청했던 허동준 전 민주당 동작을 지역위원장이 기동민 후보의 ‘공천 수락’ 회견장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연출됐고, 결국 공천 잡음이 재보선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면서 예상 밖 완패를 당했기 때문. 선거 막바지에 수도권 전선에 비상이 걸리자 “야권연대는 없다”던 당 지도부는 정의당과 야권 후보단일화에 나서면서 또 한 번 유권자의 민심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은 권은희 얻고 다 잃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는 7월 31일 오전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권 의원은 “오직 정의의 한 길로 가겠다”며 “진실이 가리키는 곳으로 달려가겠다. 시민 여러분과 마음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광산을 투표율은 22.3%로 재보선을 치른 15곳 가운데 가장 낮다. 권 의원 득표율(60.61%) 역시 60%를 겨우 넘겨 공천에 대한 민심 이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권 의원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에 ‘윗선 지시’가 있었다고 밝힐 때의 정의감을 의원직 한 자리와 바꿨다는 비판에 맞서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를 졸업한 권 의원은 200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05년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경정 특별채용에 응시해 합격했다. 2012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수사를 담당했고, 6월 사직했다.
# 야권 대권후보 덜미 잡은 김용남
7·30 재·보궐선거 경기 수원병(팔달)에서 당선한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왼쪽)과 경기 수원정(영통)에서 당선한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의원.
수원병은 그동안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내리 5선을 한 여당 텃밭. 일찌감치 김 의원 출마가 예고된 상황에서 야권 대권주자이자 경기도지사를 지낸 손 후보가 뛰어들면서 여야 지도부가 총력전을 펴는 등 이목을 집중케 했다. 이 지역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김 의원은 수원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로, 지난 대선에서는 수원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낮은 인지도와 선거 사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재산 축소 신고를 확인하면서 위기에 몰렸고, 야권 후보단일화로 정의당 이정미 후보까지 사퇴하면서 ‘손 후보 우세’라는 전망이 나왔다. 위기는 곧 기회. 그는 “손 후보는 지역구를 떠날 사람”이라고 대공세를 시작했고, ‘지역 일꾼론’을 내세우며 경로당과 시장 등을 찾아 바닥 표심을 훑었다. 여기에 남 전 도지사의 조직력과 보수층 결집이 막판 대역전극의 발판이 됐다.
김 의원은 “위대한 수원 시민의 승리로 수원을 위해 일할 일꾼이 누구인지 현명한 선택을 해줬다”며 “공약을 반드시 실천해 수원시를 광역시에 버금가게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재보선의 사나이’라고 부르던 손학규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세 번째 보궐선거 당선을 노렸으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는 7월 31일 오후 “한국 정치 변화에 대한 열망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 대통령비서실장 쓰러뜨린 박광온
경기 수원정(영통)에서는 새정치연합 박광온 의원이 52.7%의 득표율을 기록,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새누리당 임태희 후보(45.7%)를 쓰러뜨렸다. 수도권 6곳 중 유일하게 야당에게 승리를 안겼다.
MBC 앵커와 보도국장 등을 지낸 박 의원은 2012년 총선에선 전남 해남·완도·진도 경선에 나섰다가 패했지만, 대중적 인지도에 당을 위해 헌신한 점까지 평가받아 공천을 따냈다.
임 후보와 마찬가지로 수원정에 지역 연고가 없던 박 의원은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한 선거 전략을 선보였다. ‘경제통’ 출신인 임 후보는 지역구 곳곳을 돌며 부동산 업체나 젊은 엄마들과 대화하면서 교통 및 지역 문제에 대한 지식을 과시했고, 박 의원은 주요 기업 사업장을 찾아 ‘과거 대 미래’를 강조하면서 ‘국민의 대변인’이 되겠다며 근로자들을 공략했다. 당초 임 후보가 10%p 정도 앞서갔지만 선거 막판 정의당 천호선 후보와 야권 후보단일화에 성공하면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야권 후보단일화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명박 정부 때 노동부 장관과 대통령실장을 지낸 3선 의원 출신 임 후보는 야당 세가 강한 데다 야권 후보단일화로 쓴잔을 마셨지만, 당 요구에 부응해 수원벨트 선거를 이끈 만큼 당을 위한 공헌을 인정받는 분위기다.
# 3선 터줏대감 뛰어넘은 유의동
7·30 재·보궐선거 경기 평택을에서 당선한 새누리당 유의동 의원(왼쪽)과 경기 김포에서 당선한 홍철호 의원.
새누리당 지도부는 처음부터 대거 출동해 유 의원을 띄웠다. 19대 불출마를 선언한 정 후보를 ‘철새 정치인’이라 규정하고, 지역 발전을 염원하는 주민들의 욕구에 맞춰 “평택 발전을 위해 여당이 나서겠다”고 약속하면서 분위기를 반전했다는 게 지역 정가의 분석이다.
특히 경기도지사 출신 이인제 최고위원과 김문수 전 도지사의 지원 유세가 이어졌고, 당 지도부가 공재광 평택시장, 원유철 국회의원(평택갑), 남경필 전 도지사, 박 대통령이 모두 새누리당인 점을 강조하면서 지역 발전 기대심리를 자극한 게 주효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 의원은 “나도 예상 밖이다. 예상 밖 결과가 나온 것은 그만큼 평택 변화와 발전에 대한 시민적 열망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택 출신인 유 의원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를 지냈고,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중앙선대위 공보단 자료분석팀장을 맡았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정 후보는 ‘권은희 공천 파동’에 따른 민심 이반과 무소속 김득중 후보(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의 출마로 표가 갈리면서 4선 꿈을 접어야 했다.
# 장관 출신 누른 ‘치킨집 사장’ 홍철호
경기 김포에서는 ‘치킨집 사장’이 날아든 ‘이장 출신 장관’을 밀어냈다. ‘지역 일꾼론’을 앞세운 새누리당 홍철호 의원은 53.5%(4만8190표)를 득표해 ‘큰 인물론’을 내세운 새정치연합 김두관 후보(득표율 43.1%)를 여유롭게 앞섰다.
홍 의원은 닭 가공·유통기업인 ㈜크레치코 대표로 국내 치킨업계 3위인 ‘굽네치킨’의 성공신화를 쓴 최고경영자(CEO) 출신. 치킨 가맹점으로 성공한 기업가인 홍 의원이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지역에서 꼭 필요한 교통, 복지, 교육 공약을 제시하며 생활정치를 부각한 점이 유권자의 표심을 이끌어냈다는 평이다.
인천지하철 1호선 연장과 관련해 이 지역에서 3선을 한 유정복 인천시장의 인지도를 활용한 홍 의원은 “유 시장과 인천 계양에서 검단, 김포를 잇는 연장안을 설계 중”이라고 밝혀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시철도 조기 개통과 김포 한강평화로 건설사업 등 지역 밀착형 공약을 쏟아냈고, 식당가를 누비며 “의리의 홍철호냐 바람의 김두관이냐” “14대째 400년을 내리 김포에서 살아온 김포토박이”를 강조해 연고가 없는 김 후보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결국 야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된 김포2동 등 신도시에서도 김 후보를 제치면서 다윗의 화려한 승리를 이끌어냈다.
홍 의원은 “선거운동 중 만난 수많은 김포의 얼굴 속에서 민심을 읽었다”며 “더 많은 희망을 담아내기 위해 이를 악물 것”이라고 다짐했다
반면 김 후보는 김포에서 승부수를 던졌지만 첫 국회 입성의 꿈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13, 14, 18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에 출마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2012년에는 경남도지사직을 중도 사퇴하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패한 뒤 정치적 재개를 노렸으나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