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5

..

약 서비스 개선이냐, 개업약사 늘리기냐

약대 490명 증원 서로 다른 시선 … 26일 최종결정 藥업계 관심 집중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0-02-24 09:5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약 서비스 개선이냐, 개업약사 늘리기냐

    정부가 신약 개발을 비롯해 제약산업에 투자를 많이 하면서 약대 신설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사진은 경북대병원 생명의학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신약 관련 실험을 하는 모습.

    # 서울 송파구 잠실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자리한 상가 건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김모 씨는 약대 정원이 500명가량 늘어난다는 소식이 반갑지 않다. 현재 이 건물에만 약국 두 곳이 운영 중이다. 단지 내 다른 상가 건물에도 약국 두 곳이 있는 것은 물론, 큰길 건너편 신설 상가 건물에도 약국 두 곳이 들어섰다. 김씨는 “동네 약국은 이미 넘쳐나기 시작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4시간 운영하는 약국도 늘고 있다. 약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 이런 경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경기도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선 ‘약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 병원에 근무하는 약사 수는 20여 명으로, 필요 인력의 40%도 안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매년 절반 정도의 약사가 퇴사해 새로 고용해야 한다는 것. 약사의 연봉은 5000만원 내외로 적은 편은 아니지만, 채용된 지 2, 3개월 만에 그만두는 일이 빈번하다. 이 병원 관계자는 “약대 정원이 늘어나는 건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병원의 약사 구하기가 수월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 근무하는 약사는 보수가 개국(開局)약사나 제약사에서 근무하는 약사보다 적은 데다, 야간이나 새벽은 물론 휴일에도 근무를 해야 하는 등 환경이 열악하다. 조직생활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가 2009년 6월, 28년간 묶여 있었던 약대 정원을 490명 늘리기로 결정하고,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10월, 이 중 상당 인원을 약대 신설 대학에 할당하기로 하면서 대학가가 술렁였다. 전국 32개 대학이 약대 신설을 신청했고, 올 2월18일 총 19개 대학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최종 결과는 26일에 나올 예정이다. 이 같은 약대 신설은 ‘약대 유치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올 초 대학가를 뜨겁게 달궜다(상자기사 참조).

    그런데 매해 배출되는 약사가 490명 늘어난다면 우리의 약료(藥料) 서비스는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변할 것인가? 이에 대해선 약업계 분야마다 의견이 완전히 다르다.

    사실 복지부가 증원을 결정한 것은 보건의료계에서 꾸준히 약사 부족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490명이라는 인원을 결정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증원을 요구하는 약학대학과 병원, 제약사의 입장과 증원을 반대하는 ㈔대한약사회 등의 의견차가 워낙 컸기 때문. 복지부는 지난해 4~5월 세 차례에 거쳐 대한약사회, 한국약학대학협의회, 보건사회연구원, 제약협회 등 약업계 각 분야 관계자를 모집해 중장기 약사 수급방안을 논의했다. 복지부 의약품정책과 고태근 사무관은 “당시 관계 단체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증원 인력을 아주 보수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미 ‘포화’인 개업약사 수만 늘어날 수도

    한국약학대학협의회는 당시 현재 증원 수의 2배에 가까운 800명 증원을 강력히 주장했다. 김대경 한국약학대학협의회장(중앙대 약대 학장)은 “6년제로 전환하면서 2009학년도와 2010학년도에 신입생을 받지 않았다. 2012년 2월까지는 약대 졸업생이 배출되지만 이후 2년간, 약 2600명 의 공백이 생긴다. 그러면 가뜩이나 모자란 약사 인력이 더욱 부족해진다”며 “490명을 증원해서는 2020년이 돼서야 겨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약 서비스 개선이냐, 개업약사 늘리기냐

    이미 약국은 ‘포화’ 상태라는 게 약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보통 약사라고 하면 약국의 약사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약사의 직능이 다양해지고 사회적 역할도 커지고 있다. 김 회장은 “개국약사와 달리 제약사에 근무하는 산업약사와 병원에 근무하는 병원약사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병원약사는 필요 수요의 35% 정도밖에 충족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2009년 말 대한약사회에 신고된 약사 2만9639명 중 산업약사는 약 5%(1441명), 병원약사는 약 10%(2974명)에 그친다. 특히 2011년 1월부터 병원약사 인력기준이 강화되면, 병원의 약사 구인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병원 규모와 병상 수별로 필요 약사 수를 규정한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을 1월29일 공포했다.

    하지만 대한약사회는 약대 증원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대한약사회 진윤희 부국장은 “약사 인력은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2020년이 되면 공급 초과가 될 것”이라며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 방법이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2004년 발표된 ‘약사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 및 학제 개선 방안 연구’(고려대·홍후조)에 따르면 약사에 대한 최대 수요치를 가정하더라도, 2020년에는 약사 공급이 3230명가량 초과된다. 즉 현재 병원이나 제약사에서 겪고 있는 인력난은 약사 인력 자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급여나 처우가 열악한 탓에 이들 직종으로 진출하려는 약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대한약사회의 주장이다.

    여성 약사 인력이 많은 것도 산업약사가 부족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의료공급 중장기 추계’(한국보건사회연구원·오영호)에 따르면 약사 인력 중 55~60%가 여성이고, 약대 재학생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이르지만, 제약업체에 종사하는 산업약사 인력은 남성이 훨씬 많다. 대한약사회 박인춘 상무이사는 “산업약사는 지방 공장에서 근무하는 일도 잦기 때문에 결혼하고 아이도 키우는 여성 약사들은 상대적으로 이를 꺼린다. 하지만 한 제약회사 지방 공장의 경우 탁아소와 교육시설 등을 갖췄더니 지원하는 약사가 많아졌다”며 “병원이나 제약회사 등에서 약사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지 않고 증원만 한다면, 오히려 개국약사가 늘어 약사 간 경쟁만 치열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 이사는 “개국약사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면, 비싼 약을 과도하게 권유하는 등 약료 서비스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며 “약사가 많으면 소비자에게 무조건 좋을 것이라 쉽게들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학들이 약대 신설에 목매는 이유

    우수 신입생 유치에서 국가 지원금까지 ‘무조건 남는 장사’


    약 서비스 개선이냐, 개업약사 늘리기냐
    ‘약대 유치’는 올 초 대학가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해 6월 복지부가 약대 정원을 49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 인원을 놓고 교과부가 10월 “약대 신설 또는 기존 약대 증원을 위한 정원으로 390명을, 기존 약대가 제약산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별도로 꾸리는 ‘계약학과’ 정원으로 100명을 결정했다”며 “희망 대학들로부터 신청을 받겠다”고 공고했다. 신청 마감일인 12월11일 전국 32개 대학이 약대 신설을 신청했고, 올 2월18일 19개 대학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표 참조). 이는 최종 선발의 2~5배수 정도다. 22일부터 24일까지 현장 실사와 25일 최종 심사를 거쳐, 26일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

    신청 대학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약대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1월26일 동국대 총동창회에 참석해 “약대 유치가 안 되면 사표를 각오합시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강한 의지를 표방했고, 신청 지역은 다르지만 고려대(세종캠퍼스), 연세대(송도캠퍼스)도 자존심을 건 경쟁에 나섰다. 한 교과부 관계자는 “지난해 연말부터 신청 대학들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치열한 로비를 벌였다. 부지 확보는 물론 건물 신축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2007년 로스쿨 인가 선정 때보다 가열된 상황이라 보완에 더욱 신경 쓴다”고 말했다.

    교과부 “계획만 평가, ‘로스쿨’ 때와 다르다!”

    약 서비스 개선이냐, 개업약사 늘리기냐
    이토록 약대 신설에 대학들이 목숨을 건 이유는 뭘까. 우선 약대 학제가 올해부터 4년제에서 6년제(일반 학부 2년 + 약학부 4년)로 바뀐다는 게 가장 큰 요소다. 즉 약대를 가진 대학은 어느 대학, 학과 출신이든 상관없이 2학년 과정을 마친 학생을 받을 수 있다.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약대를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또 약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학 자연대의 커트라인이 높아질 수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지방대의 경우 약대 유치 여부는 학교의 존폐를 가를 수 있는 사안”이라며 “그만큼 약대 신설은 우수한 신입생을 유치하고 대학 인지도를 높일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신약 개발을 비롯해 제약산업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것 또한 중요 요인. 현 정부가 선정한 신성장동력 17개 가운데 ‘바이오제약·의료기기’와 ‘글로벌 헬스케어’가 모두 약사가 관여할 수 있는 분야다. 지난해 교과부가 주관한 원천기술 개발사업의 신약 개발 부문에만 280억원이 투자됐고, BK21 사업에도 약대 비중이 높다. 또 약대는 연구논문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국내외 대학평가를 받을 때도 좋다.

    교과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11학년도 약대 정원 배정 신청 공고’의 ‘심사·평가 기준’을 보면 ‘미래 신약개발 지원, 약과학자 육성, 생명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연구역량 창출 등이 중요한 평가 지표로 반영됐다. 연구역량, 기술이전 실적, 임상실습 여건, 약학 분야 석·박사 운영 여건 등의 지표도 포함했다’고 명시했다. 즉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약 개발을 중요하게 평가한다고 볼 수 있다. ‘교육 연구시설 및 기자재 확보 계획’도 평가의 20%나 차지한다.

    대학가에는 “의대와 부속시설을 갖춘 대학이 약대를 유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은 대학이라면 건물과 시설 및 우수한 교수 인력에 대한 투자가 승부를 가를 수 있다”는 관측이 떠돈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대학은 선정되기 전부터 약대 건물을 신축하고 교수를 초빙하고 있다.

    하지만 교과부 대학지원과 박주호 과장은 “확보 계획안의 내용과 실효성만 평가한다. 현장 실사도 계획안이 실효성이 있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다. 즉 현재의 시설 및 기자재 상황은 평가 대상이 아니다”며 “로스쿨 선정 때와 같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학들의 생각은 다르다. 약대 유치를 신청한 한 대학의 관계자는 “선정에서 떨어질 경우 약대를 위한 신축 건물과 신규 채용 교수 등은 자연대나 생명과학대 같은 유관 대학으로 돌릴 것까지 염두해, 투자 계획을 세웠다”고 귀띔했다.

    교과부는 2월 초 약대 신설 등을 심사, 선정할 정원배정심사위원회(이하 심사위)를 구성했다. 150명의 심사위원 풀을 만든 뒤 이를 45명으로 줄이고, 다시 15명을 최종 선발했다. 약대 교수 등 약학 전공자 8명과 의학계, 산업계, 이공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는 2월9일부터 11일까지 충북 모처에서 1차 서류심사를 했다. 심사위원들은 휴대전화는 물론 e메일도 사용할 수 없었고, 숙소 주변을 혼자 다닐 수 없었으며, 심사 내용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을 정도로 보완이 철저했다.

    과연 어느 대학이 ‘약대 유치 전쟁’에서 최종 승리의 미소를 지을 것인가. 신청 대학들은 물론 약료 서비스를 받는 모든 사람의 ‘귀’가 26일에 있을 교과부 발표에 쏠려 있다.




    교육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