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민은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특별검사팀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특검은 삼성그룹이 최순실 씨 소유 재단과 회사, 딸 정유라 씨를 금전적으로 지원한 것에 뇌물죄를 적용하려 하고 있다. 특검의 최종 목표는 박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처벌이다. 뇌물죄 적용에 필수 요건은 금전수수 사실과 대가성(직무관련성)의 입증이다. 대가성만 입증된다면 관련 재단이 사실상 본인 소유인 경우 뇌물죄, 최씨 소유인 경우 제3자 뇌물죄를 박 대통령에게 적용할 수 있다.
현재 검찰과 특검의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부터 정리해보자. 금전수수와 관련해 삼성그룹은 정씨의 승마 건으로 각각 35억 원과 43억 원을 송금했고, 이와 별도로 200억 원 넘는 돈을 미르·K스포츠재단에 입금했으며, 최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 원을 후원했다.
대가성과 관련해선 정부에게 운영 책임이 있는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1 대 0.35 비율의 합병 건에 찬성투표를 한 사실이 있다. 결국 삼성그룹의 금전 지급과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투표가 서로 관련됐는지 여부가 뇌물죄 구성의 관건이고, 특검팀이 입증해야 하는 일이다.
삼성그룹의 금전 지급과 정부의 합병 찬성투표는 시기적으로 가깝고, 박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즈음 단독 면담한 사실이 있다. 더욱이 “상부 지시에 의해 합병 찬성투표를 했다”는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진술과 “이 부회장을 찾아가 합병비율을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의 말도 주목할 대목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투표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에 따른 것인지 여부다. 만일 객관적으로 합병 반대가 정상적인 행동으로 판단된다면 합병 찬성은 이례적인 일이 되고, 찬성투표에는 ‘불량한 고려’가 개입됐다는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불량한 고려’는 결국 당시 삼성그룹의 금원 지급에 대한 대가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이미 나오고 있다. 당시 자문을 담당한 회계법인들은 1 대 0.38에서 많게는 1 대 0.95 합병비율을 제시한 바 있다. 결국 국민연금공단은 새로 생긴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할 수 있음에도 이를 포기한 셈이다. 그뿐 아니라 삼성그룹은 합병 결의 이전부터 1년간 삼성물산의 수주 건 등을 공시하지 않고 숨기는 방법으로 삼성물산 주가를 하락시켜왔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국민연금공단은 이러한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 전문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은 채 내부 투자위원회만 열었고 그것도 일부 위원을 교체해 찬성 쪽으로 결론을 몰아갔다는 정황도 있다.
이 대목에서 지난해 5월 30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주목해야 한다.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이 제기한 삼성물산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변경 신청 사건에 대한 판결이다. 서울고등법원은 1심을 깨고 매수가격을 올리라고 판결했다.
“합병을 결의할 무렵 삼성물산 주가가 회사의 객관적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중략) 삼성물산의 실적 부진이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됐고, 삼성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 있다는 의심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 (중략) 합병 결의를 앞두고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 주식을 대량 매도한 것은 정당한 투자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
법원도 의심한 사항을 투자전문가인 국민연금공단이 “몰랐다”고 주장한다면 한심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