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이 한창인 가운데 일부 입시 컨설팅업체가 ‘본교와 분교가 분리된 대학들이 곧 통합할 것’이라며 분교 입학을 독려하고 있다.
1월 현재 분교를 분리 운영하는 대학은 건국대(충북 충주 글로컬캠퍼스), 고려대(세종캠퍼스), 동국대(경북 경주캠퍼스), 상명대(충남 천안캠퍼스), 연세대(강원 원주캠퍼스), 한양대(경기 안산 ERICA캠퍼스), 홍익대(세종캠퍼스) 등 7개교다.
이들 대학은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본교와 분교의 통합 승인을 심사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통합 대신 한 법인 아래서 서로 다른 종합대학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이들 대학은 현 시점에서 당시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본·분교 통합설에 수험생과 학부모가 현혹된 것은 ‘고려대 해프닝’ 탓이다. 지난해 11월 ‘똑같은 이름을 가진 두 대학’인 고려대 안암캠퍼스(안암)와 세종캠퍼스(세종)가 통합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한쪽은 ‘격이 다른 학교’라며 반발을, 다른 한쪽은 ‘같은 학교인데 차별 말라’며 맞대응을 펼쳤다.
분교와 캠퍼스의 다른 점
발단은 세종 총학생회가 ‘교육부와 본·분교 통합 신청에 대해 긴밀히 협의해나갈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세종 부총장 공문을 공개한 것이었다. 총학생회 선거 당시 분교제도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한 당시 세종 총학생회는 세종 학생들이 분교생이라는 이유로 본교생과 차별받고 위축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안암 학생들은 즉각 반발했다. 댓글 게시자의 실명이 드러나는 공식 페이스북에서는 ‘본교 입학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무시하지 말라’거나 ‘입학성적이 차이 나는데도 두 캠퍼스를 통합하는 건 본교 학생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그나마 논거를 갖춘 댓글이 달렸다. 그러나 익명이 보장된 커뮤니티에는 세종 학생들에 대한 비하와 인신공격이 난무해 두 캠퍼스 학생 간 갈등이 커지기도 했다.
세종 측은 ‘오해’라며 수습에 나섰다. 이긍원 세종 기획처장은 “세종의 장기적 발전 방향을 총학생회 측에 전달하며 공문을 줬는데 기정사실처럼 곡해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본·분교 통합’은 안암 의존성을 줄이고 세종 독자성을 강화해 ‘병립캠퍼스’로 성장한다는 뜻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세종 총학생회도 곧 ‘사죄문’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분교제 폐지 주장은 철회하지 않았다.
국내 대학은 본교와 다른 지역에 있는 분교를 통칭해 편의상 ‘캠퍼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법적으로 볼 때 분교와 캠퍼스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분교(branch school)는 본교에서 파생한 학교다. 고등교육법상 대학 경영자는 분교를 설립할 수 있다. 캠퍼스(campus)는 같은 대학의 다른 교정을 의미한다. 즉 캠퍼스는 본교인 셈이다.
본교와 분교의 이러한 개념은 2011년 화제가 됐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른바 ‘캠퍼스’를 운영하는 대학에 중복학과를 없애고 교사 확보율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분교를 본교로 인정해주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서울 교정은 인문사회과학캠퍼스로, 수원 교정은 자연과학캠퍼스로 계열을 나눠 운영하는 성균관대 모델로 바꾸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때 분교가 있는 대학 중 경기 안성에 분교가 있던 중앙대를 비롯해 경희대(경기 용인 국제캠퍼스), 한국외대(경기 용인 글로벌캠퍼스), 단국대(충남 천안캠퍼스) 등이 본·분교를 통합하기로 하고, 2012~2014년 통합 과정을 거친 뒤 단일대학 체제를 갖췄다.
분리 운영을 택한 7개 대학을 살펴보면 한양대를 제외하고는 분교가 모두 수도권 밖에 위치한다. 이들 분교는 ‘지역 맞춤형 특성화 전략’을 내세우고 자율경영 등 독립성을 지향하고는 있지만 속은 타들어간다. 1978년 본교 이름을 딴 분교가 생겨나던 시기는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때라 학생 확보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대학구조조정 압박이 거세지는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고교생들이 서울과 수도권지역 대학을 선호하고, 지방에선 국공립대를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라 본교 이름을 딴 분교도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이 때문에 분교들이 택한 생존법이 ‘소속 변경’ 또는 ‘캠퍼스 간 전과’ 제도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분교 입학생이 본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매년 입시철이 되면 분교 입학 담당부서에서는 ‘본교로 갈 수 있다’는 점을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적극 홍보한다. 2000년대부터 소속 변경 또는 캠퍼스 간 전과를 허용하는 대학도 많아졌다. 그동안 캠퍼스 간 전과를 허용하지 않던 상명대도 올해 이를 도입한다. 한 분교 관계자는 “신입생에게 어떤 점에 끌려 우리 대학을 선택했는지 물어본 결과 소속 변경 제도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통합 후에도 차별은 남아
그러나 이 제도를 통해 본교로 전과할 수 있는 학생 수는 극히 적다. 전과가 가능한 학과(부)도 제한돼 있다. 가령 고려대 세종은 입학정원 1480명 가운데 안암으로 소속 변경한 학생은 30명(2%)에 불과하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역시 한 해 30명 안팎,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40명 이내, 건국대는 15명 수준이다. 각 학부(과)에서 수석을 차지해도 본교로 소속 변경이 보장되지 않는다.
반면 한양대 ERICA캠퍼스는 캠퍼스 간 소속 변경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복수전공을 늘리기로 했다. 김대경 한양대 입학처장은 “2013년 서울캠퍼스와 ERICA캠퍼스가 완전히 분리되면서부터 소속 변경 제도 폐지를 추진했다”면서 “우수인재가 우리 학교를 찾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보다 독립경영 취지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한양대 ERICA캠퍼스는 다른 분교와 달리 서울과 가까운 경기 안산시에 위치해 학생 유치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점도 이 같은 결정에 한몫했다.
2012년 이후 차례로 분교를 통합한 중앙대, 경희대, 한국외대, 단국대 등은 문제가 없을까. 이들 학교는 이제 지방 캠퍼스를 본교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분교의 위상이 높아졌다. 입학 성적이 전반적으로 상승했고, 중복학과를 없애면서 대학본부가 추진하던 학사 구조조정도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합 과정에서 상당수 대학이 본교와 분교 구성원의 반발에 부딪힌 건 사실이다. 본교 위상이 떨어질 것이라는 학생들의 반발, 학사구조 개편에 대한 교수들의 반대 등이 있었다. 교수 사이에서는 누가 서울에 남고 누가 제2캠퍼스로 갈 것인지에 대한 갈등도 적잖았다.
이러한 부작용이 단적으로 드러난 대학은 가장 먼저 통합한 중앙대였다. 본교였던 서울 흑석캠퍼스는 2012년 통합 개교 후 교수와 학생이 몰려 공간이 모자라는 반면, 경기 안성캠퍼스는 텅 비는 공동화현상이 일어났다. 또 중앙대가 경기 하남캠퍼스 및 인천 검단캠퍼스 설립을 위해 안성캠퍼스 매각을 추진하려 하자 안성지역의 거센 반발도 샀다.
통합 과정에서 불법이 저질러지기도 했다. 2012년 박용성 당시 중앙대 이사장(전 두산중공업 회장)은 본·분교와 적십자간호대 통폐합 및 단일교지 승인 과정에서 박범훈 당시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에게 뇌물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수석은 중앙대가 통폐합 승인 조건을 위반해 행정제재를 받게 되자 담당공무원에게 압력을 행사했다. 이 사건으로 박 전 이사장은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박 전 수석은 징역 2년과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200만 원 형을 받았다.
대학 통합의 더 큰 문제는 구성원 간 인식의 차별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본교인 제1캠퍼스 학과 학생들은 여전히 제2캠퍼스 출신 학생들과 거리를 두고 있고,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제1캠퍼스에서 복수전공, 이중전공을 시도하는 제2캠퍼스 학생들에게 ‘학벌세탁’이라는 식의 ‘낙인찍기’를 하고 있다. 제2캠퍼스 학생들 역시 제1캠퍼스를 향유하는 이점을 누리려 하면서도 여전히 위축돼 있는 게 현실이다.
결국 본교와 분교를 통합한 대학도, 분리 운영을 유지한 대학도 서울 및 수도권대학 선호,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주의 등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교육부는 최근 대학 간 학점교류, 융합전공을 독려하는 학사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본·분교가 통합된 학교에서도 잘 교류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교육부의 방안 역시 제대로 실현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 대학가의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