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 65세 이상 택시기사가 크게 늘면서 이들이 내는 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 이들 고령 택시기사를 비교적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서울 개인택시기사 100명 중 35명꼴로 만 65세 이상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관리를 허술히 하는 정부가 고령 택시기사의 사고 증가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령 택시기사가 대부분 운전면허증 갱신 제도 특별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는 등 운전능력검사를 거의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2015년 10월 서울 중구 을지로 30 롯데호텔서울 주차장에 진입하던 모범택시가 주변 화단과 충돌한 데 이어 주차돼 있던 고급 승용차 4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해당 모범택시를 운전한 서모(당시 75세) 씨는 “운전을 40년 했는데 이런 사고를 내겠느냐”며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서씨의 조작 실수로 사고가 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서울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서씨가 고령이라 순간적인 실수로 사고를 낸 듯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5일에는 부산 사하구 감천동 한 도로에서 67세 택시기사 우모 씨가 몰던 택시가 1m 아래 공사현장으로 떨어져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택시기사의 운전 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운전 가능 여부 가려낼 방법 없어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시내 개인택시 운수종사자 중 만 65세 이상은 1만7073명으로 전체의 34.6%이다. 연령대별로는 60대가 2만3832명(48.3%)으로 가장 많고, 70대도 6723명(13.6%)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젊은 택시기사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현재 서울시내에서 운전하는 30대 개인택시기사는 210명, 20대는 4명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개인택시 면허는 나이 제한 없이 양도 및 상속이 가능하다”며 “은퇴한 사람이 개인택시 면허를 사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고령화가 심각하다”고 말했다.택시기사의 고령화에 발맞춰 고령자의 교통사고 비율 역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시내에서 발생한 개인택시 교통사고 중 고령 택시기사의 비중은 2011년 26.3%(527건)에서 2016년 41.6%(526건)로 15.3%p 높아졌다. 개인택시기사 중 고령자의 비중(35%)보다 더 높은 수치다. 연간 총 주행거리에서 연간 총 사고 건수를 나눈 ‘주행거리 대비 사고 건수’로 만 65세 이상 고령과 그 미만인 비고령 개인택시기사를 비교해봐도 고령은 0.988, 비고령은 0.650으로 고령자가 더 높게 나타났다. ‘주행거리 대비 사망자 수’도 고령(1.21)이 비고령(0.97)보다 높았다.
김인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사는 “고령 운전자의 사고 비율이 높다고 운전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 고령 운전자 중 정상적인 운전이 힘든 사람만 선별해 운전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고령자 운전과 관련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민안전처는 지난해 10월 2일 국토교통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노인 안전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도로교통법 제87조 1항에 따른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증 갱신 주기가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된다. 경찰청 운전면허계 관계자는 “현재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안에 개정안이 통과되고 내년부터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만 65~74세인 고령 택시기사는 이 개정안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운전자가 운전면허증 갱신 때 받는 신체검사의 경우 운전 가능 여부를 운전자 본인이 평가하는 등 너무 간소화돼 있어 면허증 갱신 절차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더 자주 운전면허증을 갱신한다고 해도 고령자의 운전능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택시기사만 쏙 뺀 자격유지검사
현재 사업용 자동차 운전자 중 65세 이상 비율이 가장 높은 업종은 택시다. 교통안전공단 운수종사자시스템에 따르면 2015년 택시기사는 법인택시와 개인택시를 합쳐 27만7107명이며, 이 중 19.5%(5만4035명)가 고령 택시기사다. 이에 반해 영업용 버스 운전자는 5.7%만이 고령이다. 그러나 고령 운전자의 비중이 높은데도 택시기사는 그동안 운전 적성 정밀검사 중 ‘자격유지검사’를 받지 않았다.
2015년 개정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제49조 3항에 따르면 버스기사 등 여객자동차나 운송사업용 자동차를 운전하려는 사람은 만 65세 이상 만 75세 미만이면 3년마다, 만 75세 이상이면 해마다 자격유지검사를 받아야 한다. 자격유지검사는 운전자의 시야 범위를 측정하는 시야각검사, 시각 신호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신호등검사, 선택적 주의력을 측정하는 화살표검사, 공간 판단력을 보는 도로 찾기 검사, 주의지속능력을 확인하는 추적검사, 다중작업능력을 평가하는 복합기능검사, 시각적 기억력을 측정하는 표지판검사 등 7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이 법안에서 택시기사만 검사 대상에서 빠졌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당초 개정안에 따르면 택시기사도 대상이었으나 택시업계의 반대로 빠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신윤근 국토교통부 신교통개발과 과장은 “택시기사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자격유지검사를 받도록 하는 개정안을 3월 안에 입법예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이런 방침에 택시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도길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홍보차장은 “자격유지검사를 하더라도 사고 이력이 있는 고령 운전자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이렇게 갑자기 시행 계획을 발표하면 나이가 많은 운전자는 안전운전을 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심어줘 생계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퇴직 후 15년간 택시기사로 일해온 이모(71) 씨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 택시운전대를 잡았는데 이제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젊은 사람은 받지 않는 검사까지 받아야 한다니, 늙는 것 자체가 죄인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하지만 자격유지검사 자체가 운전능력을 평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인석 박사는 “미국, 일본, 영국 등에서는 택시 등 대중교통 운전자가 자격유지검사뿐 아니라 전문의의 소견서까지 받아야 한다. 이에 비해 국내 자격유지검사는 가벼운 수준이라 더욱 엄격한 기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