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대구·경북(TK) 유권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후한 평가를 했다. 10명 중 7명 가까운 유권자가 박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 TK뿐 아니라 부산·경남(PK)에서도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 절반이 넘는 57%의 여론조사 응답자가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TK와 PK가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같은 시기 충청도에서는 52%였고,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도 47%를 기록했다. 평소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박하던 호남에서조차 ‘잘한다’는 응답이 38%였다.
같은 시기 정당 지지율은 어땠을까. 서울에서는 새누리당 42%,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20%로 새누리당이 2배 이상 높았다. 충청도에서도 42% 대 28%로 새누리당이 크게 앞섰고, TK에서는 58% 대 13%로 4배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 PK에서도 50% 대 16%로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불과 1년 반 전 일이다(해당 여론조사는 한국갤럽 월평균 기준이며,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공정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참조).
이 같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인기는 그해 8월 터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사건과 관련 있었다. 당시 도발의 후속조치로 무박 3일간 이뤄진 남북협상에서 박 대통령 등이 강단 있는 태도로 안보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자 높은 지지율로 호응해준 것이었다.
그 높던 지지율은 어디로…
그로부터 7개월 뒤인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진박(진짜 친박근혜) 공천’에 이어 총선에서도 ‘진박 마케팅’이 극성을 부리면서 19대 국회에서 152석을 갖고 있던 새누리당은 수도권 등에서 참패하며 122석 확보에 그쳤다. 결국 123석으로 한 석을 더 얻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게 원내 제1당 지위를 넘겨줬고, 그 결과는 민주당 출신 정세균 국회의장으로 귀결됐다. 이후 ‘최순실 게이트’로 12월 9일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1년 반 사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정상에서 바닥으로 급전직하하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해 11월 이후 5% 아래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9월까지 33% 지지율을 유지하던 새누리당은 10월 29%, 11월 16%, 12월 14%로 지지율이 반 토막 난 상태.새누리당 지지층은 어디로 갔을까. 일부는 무당층으로, 또 일부는 개혁보수신당(가칭) 지지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10% 넘는 새누리당 골수 지지층은 여전히 ‘의리’를 지키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디오피니언이 지난해 12월 27일 실시한 조사에서 새누리당은 10.6% 지지율을 기록해 9.8%에 그친 개혁보수신당을 앞섰고, 12월 30일과 31일 실시한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도 새누리당은 12.7% 지지율로 8.0%의 개혁보수신당을 제쳤다. 디오피니언 조사 결과를 권역별로 살펴보면 서울과 PK에서는 개혁보수신당이 새누리당을 조금 앞섰지만, TK에서는 새누리당이 21.2%로 7.0%에 그친 개혁보수신당을 따돌렸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뒤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한 의원 대부분이 서울 등 수도권과 PK 출신 인사로 채워진 이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재 새누리당 소속 의원은 두 가지 옵션을 두고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하나는 ‘보수를 개혁하겠다’는 명분으로 스스로 탈당해 신당 창당에 합류하거나, 다른 하나는 당에 남아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의 ‘탈박’(탈박근혜) 과정을 지켜보는 것. 신당파는 이미 지난해 12월 27일 1차로 29명이 뛰쳐나갔다. 새누리당에 남아 있던 의원 99명 가운데 인 위원장의 요구로 탈당한 인사는 1월 5일 현재까지 2명. 직전 당대표였던 이정현 의원과 울산에서 5선을 기록한 정갑윤 의원이다. 관건은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과 TK 출신으로 진박 좌장역을 해온 최경환 의원의 거취다. 서 의원과 최 의원의 탈당까지 현실화되면 인 위원장의 ‘1차 탈박’ 작업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인 위원장이 1월 6일을 시한으로 정한 것은 12일 귀국을 앞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영접용이란 해석이 많다. 김상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반 전 총장이 새누리당에 입당하거나 새누리당과 손잡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며 “다만 인 위원장이 시도하는 탈박 작업이 좋은 성과를 내면 연쇄 탈당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이 반 전 총장 측과 대선(대통령선거)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시도할 여지가 생긴다”고 내다봤다.
인명진 실패=새누리당 침몰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도 “인 위원장의 새누리당 탈박 시도는 국민으로부터 사실상 탄핵된 새누리당이 불임정당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고육책 성격이 짙다”며 “촉박한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당 전체를 환골탈태시킬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징성 있는 친박 인사를 타깃 삼아 탈당을 종용한 뒤 성과를 내고, 그 동력으로 개혁보수신당 또는 반 전 총장 측과 대선 국면에서 보수연합을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전망했다.대통령 탄핵과 새누리당 몰락을 지켜봐야 했던 새누리당 전통 지지층은 아직까지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 가운데 어느 쪽에 마음을 줄지 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인 위원장의 탈박 작업 성과에 따라, 그리고 반 전 총장이 귀국한 후 전통 보수 지지층의 민심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란 전망이 높다. 인 위원장의 친박 축출은 지난해 20대 총선 직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돼 대표적인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떠올리게 한다. 김상진 교수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 친노 공천 배제로 비문(비문재인) 인사의 연쇄 탈당을 막았던 것처럼, 인 위원장이 친박 인사를 탈당시켜 ‘탈박’에 성공하면 추가 탈당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박의 버티기에 막혀 인적쇄신이 좌절되면 오히려 인 위원장이 축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도 “인 위원장의 새누리당 쇄신은 특정인 몇몇이 나가느냐, 남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당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인 위원장의 뜻대로 될 개연성이 높다”면서 “하지만 그 반대라면 인명진 개인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새누리당 침몰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