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망에 걸려 올라오는 영덕대게.
낙찰받은 박달대게를 박스째 끌고 가는 한 중매인(아래).
영덕대게가 제철을 맞았다. ‘바다가 내준 보물’이라는 영덕대게. 취재진은 1월16일 새벽 영덕군 대진항을 출발하는 8t짜리 대게잡이 배 ‘길용호’에 승선, 대게잡이 현장을 취재했다. 올해로 13년째 대게를 잡고 있다는 길용호 정봉용 선장의 환영사(歡迎辭)를 들으면서….
“기자들이 타서 오늘은 멀리 안 갑니더. 힘들어할까 싶어서예. 그나저나 오늘 날씨 참 좋네예. 이번 겨울 들어 이런 날씨는 첨 봅니데이. 기자들 왔다 카이 바다도 무섭어서 조용한가.”(웃음)
10노트 내외의 속도로 망망대해를 달리기를 한 시간. 해안에서 약 20km 떨어진 망망대해 위에서 배는 서서히 멈춰섰다. 바람 한 점 없는 따뜻한 날씨. 둘러보니 배 주변에 ‘길용’이라고 적힌 부표 3~4개가 둥둥 떠 있다. “여기가 대게밭이에요?”라고 묻자 정 선장은 “양식장도 아닌데 밭은 무슨 밭. 보름 전에 자망을 쳐놓은 곳입니더”라고 답한다. 선장이 펴든 출조수첩에는 ‘12월31일, 1500’이라고 적혀 있다. 날짜는 자망그물을 친 날, 숫자는 그물의 길이다.
선원들의 손이 분주해진다. 먼저 대게를 담을 지하 탱크에 산소공급기가 연결된다. 바다 위의 부표도 배 위로 끌어올려진다. 어로탐지기는 부표가 놓인 곳의 수심이 213m라고 가리킨다. 오전 6시, 등을 환하게 밝힌 대게잡이 배들이 어둠 속 동해바다 위에서 별처럼 반짝인다.
부표에 매달린 채 그물을 지탱하던 어른 키만한 닻이 올려지자 비로소 그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구 모양 도르래가 삐걱삐걱 힘겨운 소리를 내면서 그물을 잡아당긴다. 그렇게 끌어올리기를 10여 m. 드디어 한 마리, 두 마리 어른 손바닥만한 등껍데기를 가진 대게들이 그물에 걸린 채 올라와 얼굴을 내민다. 박달나무처럼 속이 꽉 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박달대게도 간간이 끼여 있다. “야, 이놈은 빨간 넥타이(원산자 표시)를 달겠는데요.”
선원들이 낚아올린 대게를 상품성에 따라 대중소로 나누어 분류하고 있다.
대게 배는 보통 2, 3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인다. 끌어올려지는 그물의 뒤엉킴을 잡아주며 진두지휘하는 선장과 갑판에 앉아 그물에 얽히고설킨 대게를 풀어내는 선원, 크기와 상품성에 따라 대게를 분류해 어항에 담는 선원까지….
다리가 10개인 대게를 그물에서 빼내기란 쉽지 않다. 10개의 다리와 등껍데기에 걸리고 이리저리 꼬인 그물을 걷어내는 것은 보기에도 ‘쉬운 일이 아니지’ 싶다. 그물을 벗겨내다가 자칫 다리나 몸통이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다룰 수도 없다. 아무리 크고 튼실한 놈도 다리가 잘리거나 상처를 입으면 상품가치가 없어지기 때문.
그러나 선원들의 손놀림은 마치 기계처럼 신속 정확하다. 등껍데기를 잡고 머리를 빗듯, 대게 다리를 위에서 아래로 쓰다듬듯 훑어내자 그물에 꼬여 있던 대게들이 고스란히 그물을 벗어난다.
산란기인 겨울철에는 암컷 대게를 잡을 수 없다.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법으로 정해진 규칙이다. 그래서 그물을 벗어난 암컷 대게는 모두 바다로 돌아간다. 수컷과 암컷은 모양새만으로 금방 구별할 수 있다. 정 선장에게 구별하는 법을 묻자 “알을 차고 있잖능가”란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정말 암컷 배딱지 안에는 선홍빛 알이 그득하다. 알은 익어갈수록, 산란이 가까울수록 점점 짙은 갈색으로 변해간다.
선주들은 밤새 잡아올린 대게를 중개상에 넘기지 않고 선창에서 직접 팔기도 한다.
비밀은 바다 속 환경에 있다. 그렇다고 영덕 앞바다의 생태계가 좋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덕 앞바다는 매우 척박한 편이다. 대게를 제외하곤 변변한 어족이 없을 정도다. 최고 상품의 대게가 잡히는 것으로 유명한 왕돌초 주변 해역도 자갈밭이거나 뻘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가장 맛 좋은 대게가 왜 여기에서 잡히냐고? 정 선장은 그 비밀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영덕 강구항은 요즘 대게 풍년이다.
1500m에 이르는 15묶음의 그물을 끌어올리는 데 걸린 시간은 3~4시간. 걷어낸 그물을 정리하고 같은 자리에 다시 같은 크기의 그물을 내린 뒤 부표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자 시간은 어느덧 오후 2시에 가까워져 있다. 갑판 밑 어항에는 수백 마리 대게들로 채워졌다. 만선(滿船)은 아니지만 반선(半船)은 된다.
항구로 돌아오는 길, 갓 잡은 대게 한 마리를 쪄내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 맛이란? 글쎄, 맛보지 못한 사람이 과연 그 환상을 가늠이라도 할 수 있을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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