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이도 매장.
한국에도 진출한 일본 최대의 화장품업체 시세이도(資生堂)가 지난해부터 채용한 새로운 경영철학이 재미있다. 이름하여 ‘탈(脫)덧셈’ 철학.
창업 130년을 넘어선 이 회사에는 백화점이나 화장품전문점 등의 전용매장에서 고객을 직접 맞는 점원(뷰티 컨설턴트)만 1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에게는 ‘오늘은 미백화장품 5개’ 하는 식으로 그날의 판매 할당량이 정해져 있었다.
시세이도는 이 할당량 정책을 지난해 4월 폐지했다.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물론 매출 하락을 각오한 시도다. 이 회사의 마에다 사장은 “중요한 것은 오늘 아무것도 사지 않더라도 ‘시세이도를 평생 쓰겠다’고 생각하는 고객을 늘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일본 내 화장품 시장이 한계에 도달했고 외국계 브랜드의 공격도 거센 상황이다. 따라서 자사 제품을 선택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매장에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뢰를 얻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할당량 때문에 고객의 신뢰를 잃고 있었다는 게 마에다 사장의 판단이다. 할당량 달성을 위한 점원의 노력으로 당장 회사 매출은 늘었지만, 정작 고객은 필요 없는 상품을 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오랜 기간 상품 개발과 광고, 문화활동 등을 통해 구축해온 고객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시세이도는 점원에게 피부 고민이나 화장품 선택 방법, 화장법 등에 대해 친절하게 상담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위해 점원 평가방법의 하나로 고객 앙케트를 도입했다. 점원이 고객에게 엽서를 주면 고객은 점원의 접객 태도를 4단계로 평가해 회신한다. 지난해에는 시행 반년 만에 약 22만 통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시도 때문인지 이 회사의 전체 매출액은 지난해 9월 중간결산에서 전년 동기 매출액을 상회했지만, 일본 국내시장에서의 매출액은 0.2%, 그중에서도 매장 점원이 담당한 매출액은 2%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에다 사장은 “일시적으로 매상이 떨어져도 2~3년 걸려 고객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여기에 더해 시세이도가 지난해부터 시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전략은 브랜드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다. 한때 100개에 달하던 상품 브랜드를 27개로 줄였다. 반면 지난해 3월 발매된 ‘쓰바키’라는 샴푸 브랜드는 이 분야에서 최고액인 50억엔(약 387억원)을 광고 판촉비로 뿌렸다. 그 대신 다른 동종 브랜드는 일절 광고를 하지 않았다. 그 덕인지 쓰바키는 발매 반년 만에 연간 매상목표 100억엔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이 분야 시장점유율에서 만년 4위였던 시세이도는 2007년에 1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시세이도의 이 같은 시도가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한국 기업들도 눈앞의 숫자에만 연연해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계기는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