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의 김희수 씨, 인천 용현동의 이남옥 씨, 서울 논현동의 김혜숙 씨, 인천 도화동의 김구월 씨(왼쪽 부터)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친구의 권유로 무당을 찾았어요. 살을 풀어야 한다고 해서 부모님 몰래 210만원을 준비해서 굿을 했는데 그 후로 인생이 술술 풀렸어요. 아무래도 굿 덕분인 것 같습니다.”
오 씨는 그 전에도 역술인이나 인터넷 사주카페를 찾기는 했지만 ‘사람을 대하는 정성과 기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곤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무당의 효과를 체험한 오 씨는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영험하다’는 무속인을 찾는 일을 거르지 않고 있다.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당은) 인생의 조언자인 셈이에요. 희망 섞인 말을 들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나쁜 소리를 들으면 경계심이 생기는 그런 이치죠.”
수천 년간 인간의 갈등과 고민을 상담해온 무속인에 대한 서민들의 신뢰는 사회와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맥을 이어왔다. 이들에 대한 끈끈한 연대감과 경외감은 세대와 성별, 개인과 집단을 가리지 않고 무의식 저변에 자리 잡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현대인들이 무의식적으로 표출하는 무교(巫敎)적 제의 활동은 무궁무진할 정도다.
9월 말, 전북 전주의 번화가에 위치한 OO시장 어귀. 이른 새벽 화려한 굿판이 펼쳐지자 이내 시장 어귀는 몰려든 상인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길거리에서 굿판을 벌여 차량 흐름을 방해한 행위는 교통법규 위반으로 입건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은 상인들에게서 뜻밖의 말을 듣고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불경기가 지속돼 무당을 찾았는데 굿이라도 하면 장사가 나아질 것이라고 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굿을 했으니 사정을 참작해달라고 탄원한 것. 이야기를 듣고 난 경찰은 법대로 하는 것이 옳으냐, 상인들의 하소연을 받아들여야 하느냐로 고민했다고 한다.
치열한 생존현장에 있는 서민들의 ‘정신적인 동지’는 가족이나 친지, 또는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님이 아니다. 오히려 절대 선을 추구하는 종교인이나 민간신앙에 뿌리박은 무속인일 때가 많다. 서민들의 민생고가 최악인 지금, 서민과 함께 호흡하는 무당들은 2005년 가을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애인 없는 여자 없고, 바람 안 피우는 남자 없더군요.”
남녀관계만큼 세상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것도 없다. 무당 앞에 던져진 이 시대 필부필녀의 최대 고민은 역시 시공을 초월하는 애정 문제에 집중되고 있었다. 논현동에서 홍연암이란 조그만 암자를 연 홍세미(여·38) 보살은 가장 빈번한 상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달라진 연애’를 꼽았다.
우리 어머니 세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남편의 부정을 막을 비책 마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은 ‘가정은 가정이고, 내 삶은 내 삶이다’는 식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성 친구가 있어야만 가정이 유지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도 있겠지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정을 지키려면 이성 친구를 포기해야 해요. 그럼에도 두 가지를 양립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주부들의 연애 문제는 어느 무속인을 만나도 동일한 세태로 지적됐다. 물론 형태는 다변화됐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나이 많은 여성에 기대 사는 젊은 남자들의 급증이다. 한 무속인은 “이는 땀 흘려 번 돈의 가치가 경시되고 있기 때문이다”며 “언젠가 20대 총각이 50대 아줌마에게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양재동에서 ‘옥황선녀’로 불리는 무속인 김희수 씨는 이러한 세태는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혼할 명분을 찾기 위해 달려오는 주부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낀다”면서도 “이혼은 결국 자식에게 업보가 돌아가기 때문에, 부득불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속인들의 고민은 일반인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정(不淨)한 남녀 관계는 결국 가정을 해체하고, 가정의 해체는 자식 대에 업보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륜의 붕괴는 사회혼란과 국가쇠망의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찾아온 신도에게 복채를 받는 것이 무속인이지만, ‘고비만 넘기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서슴없이 신도에게 회초리를 드는 무속인도 있었다.
“없는 사람이 너무 살기 힘든 시대”
“솔직히 무당인 저도 이민 가고 싶네요. 개인적으로 배운 사람들이 한심하고 한없이 원망스러우니까요.”[논현동 천신암 김혜숙(여·45) 씨]
연애 문제가 서민 고민의 손바닥이라면, 돈 문제는 손등일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돈 문제에서는 서민들의 분노가 느껴졌다. 돈 문제를 둘러싼 서민 신도들의 원성은 무당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멀게 만들 정도가 된 것. 천신만신(天神萬神)께 기도를 올리기 위해 산으로 간 무당들은 정성의 절반 이상을 신도들의 경제문제 해결에 매진했다. 경제문제에서만큼은 신도들보다도 무당들의 한숨 소리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왜냐고요? 무당들이 바로 이 시대의 진정한 서민들 아닙니까. 빚 없는 무당 없고 잘사는 무당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서민들의 고통을 절감하는 것이죠.”(한국의 샤머니즘 사이트 운영자 장영호 씨)
부도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중소기업 사장, 떼인 돈을 돌려받지 못한 가게 주인, 월급 못 받고 쫓겨난 직원, 아버지의 돈을 훔쳐간 딸…. 경찰서와 법원을 거쳐 해답을 찾지 못한 이들은 무당 앞에 찾아와 무릎을 꿇는다.
한 무속인은 서민들의 절절한 고통을 보노라면 공짜로라도 굿판을 벌여주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들이 들고 오는 ‘쌈짓돈’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무당의 유일한 즐거움이라면, 친구 같은 서민들이 사글세에서 전세로, 그리고 내 집으로 늘려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랏점을 보면 무섭고 험한 말들만 튀어나와요. 그러니 답답한 것이지요.”(김혜숙 씨)
태생적으로 서민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무당들은 나라의 경제 문제에 관해 묻자 성난 황소처럼 목소리를 드높였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 돈의 흐름이 꽉 막혔다는 설명이었다. 과거에는 막히더라도 한쪽으로는 터주어 숨통이 트이곤 했는데, 최근 몇 해 동안은 경기의 흐름 자체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도 무당은 먹고산다고요? 아니에요. 지금은 무당도 먹고살기 힘든 시대가 됐어요.”
관악구 신림동에서 고시생들의 미래를 점쳐주는 한 늙은 박수무당의 한숨이다. 그는 “젊은이들이 진로 상담을 많이 해오지만 그들의 앞길도 꽉 막혀 무당 하는 재미가 덜하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언제쯤이나 경제의 암담한 구름이 걷힐까.
대다수 무당들이 내년도 하반기까지는 경기회복을 기대하지 말라고 예언했다. 회복되더라도 매우 더딜 것이라고 말한다.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수출 경기도 나쁘지 않냐는 반문에는 호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돈이 돈을 버는 시대, 돈 많은 이들만이 잘 먹고 잘사는 걸 기자 양반이 몰라서 하는 소리요?”
경제 문제에 기대할 것이 없다니, 내친김에 국운(國運)을 물어보기로 했다. 개인의 운이 아무리 좋아도 세계적인 국면이나 국운이 풀려야 개인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천신만신, 즉 자연 전체가 평안해야 나라가 평안하고, 그것이 개인과 가정의 평화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란다. 무속인들의 예측은 불행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세계 전체의 기운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지각 변동도 잦아 지진이 나고, 물난리라는 천재지변이 반복되고 있어요. 과거에는 어쩌다가 한 번 있었던 일인데….”(홍세미 씨)
서울 북가좌동의 차혜숙씨, 서울 논현동의 홍세미 씨
“거대한 소용돌이가 정치판에 자리 잡은 형국이오. 청와대에서 살다 나온 사람들에게는 명예는 없을 것이오. 동짓달 섣달에 국상(國喪)이 있을 것이고, 우리 정치인들 그 밥에 그 나물이오….”
정치 문제에 대해 거론한 무속인들은 하나같이 익명을 요구했다. 신기한 사실은 역술인들끼리도 지도자가 문제라는 비슷한 해석을 내놓았다.
흔히들 정치인과 무속인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한다.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면 정치인들은 무속인을 찾는다. 실제로 검찰의 수사에서 정치인들의 ‘검은돈’이 무속인에게 흘러간 것이 포착된 적도 다반사다. ‘정치인과 무속인은 밀월관계가 아니냐’는 질문에 아주 냉소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자기 무덤이나 파는 짓을 한다는 평가였다.
“정치인들과 오빠 동생 하는 무속인들이 있죠. 하지만 무당이 서민을 외면하고 자기 욕심을 채울 때는 그만한 대가가 온다는 것을 각오해야 해요. 정치인들과 언론이 무당 띄우고 죽인 사례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요?”[황해도 만신 김구월(남·42) 씨]
양재동 이희수 씨는 ‘무당들은 편하게 잠을 자도 안 되고, 자동차를 타서도 안 된다’는 서민 무당론을 펼쳐보였다. 굿 값은 비싸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반드시 굿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것, 무당의 임무는 이 땅에서 수천년을 살아온 조상님들의 음덕을 몸으로 느껴 후손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살을 풀어줘야지, 사사로이 정치인들의 잇속 챙기기에 뛰어들면 신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성(姓)씨만 놓고도 대략적인 개인의 기운과 운세를 맞힐 수 있다는 서대문의 차혜숙(여·45) 씨를 찾았다. 그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대단히 넓은 역사 속 인연으로 올라가 되짚어보는 무속인이다. 그 앞에 대군 후보로 거론되는 몇몇 정치인의 이름을 내밀었다.
한참 동안 정치인들의 기를 살핀 그는 “고(高) 씨들과 이(李) 씨들이 열심이 뛰고 있는데, 고 씨는 아니고, 이 씨가 기운이 좋다. 그런데 차기 대통령은 생각지도 않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의 미래는 선거 직전에야 확실해진다는 민숭민숭한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운이 많이 쇠했다”며 묻지도 않은 예언을 내놓기도 했다.
한 무녀는 “세상 돌아가는 것은 하나도 몰라요. 저는 신당 밖을 나가면 평범한 아줌마에 불과해요”라고 말했다. 경희대 서정범(80) 명예교수는 “신명 안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때론 날카로운 예지력을 선보이지만, 사회로 나오면 의외로 고립되는 사람이 바로 무속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무당들의 학력은 변변치 않았다. 그들은 신문·방송 같은 미디어를 멀리하며 고독한 구도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당에 들어간 이들은 압도적인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무속인 스스로가 ‘모 아니면 도’라고 털어놓는 이들의 예언능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 무녀는 “직감과 기감이 폭발하며 내 신경을 때릴 때, 그것을 말로 털어놓는 것이 예언이다”고 말했다. 그러니 거기에는 신의 목소리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확신이었다.
“첫째도 정성, 둘째도 정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내 신어머니(스승)나 내 안에 들어앉은 할아버지(신령)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사시사철 거르지 않고 산에 올라 기도를 드립니다.”
삼각산에서 3년을 살았다는 김혜숙 씨는 “밤에 산에서 잠을 자면 무섭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깟 무서움도 견디지 못하고 어찌 신도들의 사생활에 간섭하겠다고 나서겠습니까. 당신은 죽음이 두렵겠지만 우리는 죽음을 끌어안은 인간 아닌가요?”
나름대로 생사를 초월해 칼날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무속인이다. 그런 만큼 자신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굿이란 간곡하고 진실된 마음을 하늘에 전달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예전과 달리 지금은 돈 얼마 갖다놓으면 무당이 알아서 한다는 썩은 생각이 팽배해졌어요. 한마디로 무당이 신도를 버렸고, 사회가 무당을 버린 시대가 돼버렸습니다.”
서민들의 한을 풀어주는 무당이 이제는 사회를 비판하게 되었다. 서민의 편에 선 무속인이 정치인을 비판하는 시대, 과연 이 나라를 책임진 위정자들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