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맞서는 금강송.
송성에 취한 이애주(서울대·인간문화재) 교수가 춤을 춘다. 깊은 숨에서 터진 가(歌)는 절로 무(舞)를 이끈다. 몸은 솔가지가 되어 너울대고, 춤은 도(蹈)가 되어 휘돌아나간다. 어느새 소나무춤은 한 그루 소나무가 되었다. 무용가는 말한다. 소나무를 닮고 싶다/ 소나무처럼 살고 싶다/ 아니, 소나무와 하나 되고 싶다.
‘일본 솔숲’ 재선충 습격 100년 만에 쑥대밭
강토의 주인(主人)은 누가 뭐래도 소나무다. 국토의 70%가 산지인데, 산을 덮은 나무의 70%가 소나무라고 한다. 그런데 한민족의 상징 수(樹)이기도 한 강토의 터줏대감이 죽어나가고 있다. ‘소나무 에이즈’라는 별명을 얻은 재선충 때문이다. 현재의 추세라면 100년 안에 한반도의 솔숲이 사라진다.
관동(關東)의 솔숲은 짙푸르렀다. 그러나 강원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뒷산의 소나무들은 많이 아파했다. 재선충이 속살을 파헤쳤기 때문이다. 죽어나간 소나무의 몰골은 처참했다. 푸른 잎은 온데간데없고, 나무 기둥의 색은 바랬다. 10월19일 이곳에서 발견된 재선충은 백두대간의 솔숲을 100년 안에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솔수염하늘소의 탈출공 모습.
“재선충과의 전투에서 패퇴하면 우리는 더 이상 ‘소나무와 놀 수 없다’. 소나무는 한국성(韓國性)을 관통하는 한민족의 상징 수다. ‘나라 나무’를 지키지 못하면 후세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국민대 전영우 교수·산림자원학)
10월27일, ‘강릉 전투’는 처절했다. 수령 50년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재선충이 똬리 튼 것으로 확인된 소나무는 3그루. 그럼에도 1400그루의 소나무를 잘라야 한다.
“가슴이 아프다.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럼에도 베어낼 수밖에 없다. 뿌리뽑지 못하면 백두대간의 소나무가 모두 죽기 때문이다.”(김은기 강원도 산림정책관)
토막 난 기둥은 2mm의 톱밥이 되었다. 가지와 잎은 잘게 썰어 소각했으며, 뿌리는 캐내 태운 뒤 약품을 뿌려 비닐로 씌웠다. 솔숲은 ‘흰색 봉분’으로 바뀌어갔다. 6000평의 솔숲은 11월 중순께 민둥산으로 변한다.
늙은 소나무 뿌리(松根)를 베개 삼아 대(大)자로 누운 김재두(47·강원 강릉시 성산면) 씨는 “오래 산 소나무들은 홀로 높은 절개를 지켜 늘 변함이 없다고 들었는데 무슨 곡절로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재선충 감염목이 발견된 강원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뒷산.
금산리에서 대관령 솔숲까지의 거리는 불과 6km, 재선충에게 패배하면 대관령의 금강송은 싹쓸이된다. 대관령 솔숲뿐이 아니다. 강릉에서의 패배는 백두대간의 소나무를 모두 재선충에게 내준다는 걸 뜻한다.
재선충은 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경남·부산·울산의 솔숲에서 기생하다가 2004년 경북 포항, 2005년 경북 안동 및 영천으로 서식지를 넓혔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추세대로 가면, 소나무가 2105년께는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병든 3그루 때문에 50년 안팎을 살아온 1400그루를 베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선충은 식물에 기생하는 선충이다. 암컷은 0.7~1.0mm, 수컷은 0.6~0.8mm로 사람의 눈으론 식별이 어렵다. 암수 1쌍이 20일 후엔 20만 마리로 번식한다. 재선충은 주로 소나무에 기생하는데, 줄기·가지·뿌리를 종횡으로 이동할 수 있다. 재선충이 터를 잡은 소나무는 100% 죽는다. 물과 영양소가 오르는 통로가 재선충에 의해 막히기 때문이다.
재선충은 스스로 다른 나무로 옮겨가지는 못한다. 솔수염하늘소가 재선충을 도와준다. 솔수염하늘소는 애벌레로 겨울을 나는데, 봄철 번데기가 되는 시기에 재선충이 주위에 모여든다. 5~7월 성충이 되어 소나무를 탈출할 때는 1마리당 1만5000마리의 재선충이 올라타 있다. 솔수염하늘소가 내려앉은 소나무에 재선충은 새 둥지를 튼다.
재선충 둥지 튼 소나무 100% 죽어
경북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 야산에서 베어진 소나무에 붙어 있는 반출 금지 경고문.
경북 안동시에서도 소나무들은 심하게 아파했다. 병에 걸렸다고 내색은 하지 않았으되, 소나무들은 줄을 지어 죽어가고 있었다. 안동시에서의 전투는 패배한 듯 보였다. 포항시에서의 패퇴가 재선충을 안동으로 옮겨왔고, 안동시에서 물러서면 삼척시와 울진군의 금강송이 재선충의 사정권에 든다.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의 야산은 죽었거나, 죽어가는 소나무들로 을씨년스럽다. 죽은 소나무는 잿빛이었고, 죽어가는 소나무는 누런빛이었다. 야산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치열했다. 하루 종일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죽은 소나무는 모조리 베어졌으며, 약제 처리를 한 뒤 흰색 비닐에 덮였다.
소나무 재선충이 소나무를 죽이는 과정
안동시에서 인부들이 죽은 소나무를 베고 있다.소나무가 베어진 자리가 ‘봉분’을 연상케 한다.
안동시는 7월부터 죽은 소나무를 베어내고 있으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베어낸 소나무와 이웃한 소나무들이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7월 이후 새로 죽은 소나무가 약 1300그루(모두 재선충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대부분이 재선충에 의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에 달한다.
재선충은 이렇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소나무류 반출 금지구역’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지 않은 곳에서도 소나무는 신음하고 있었다. 안동시의 재선충이 영주시를 거쳐 제천시·원주시·춘천시로 북상하거나, 태백시를 거쳐 삼척 방면으로 방향을 틀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안동시는 내년 4월까지 살았건 죽었건 신덕리 인근 5만4000평의 소나무를 모두 잘라낼 요량이다. 문제는 신덕리 외 다른 지역에서도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7월부터 날마다 죽은 소나무를 베 온 한 인부는 “무시무시하다. 죽은 소나무를 발견해 잘라내면 얼마 뒤 이웃한 소나무들이 새로 죽어나간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재선충 급속 확산 … 방제 역부족?
조연환 산림청장에게 “경북지역에서의 재선충 방제가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물었다. 조 청장도 안타까워했다. “전혀 부정할 수는 없다. 조기에 각자의 적절한 처치와 대책을 수립하여 일사불란하게 대처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산주, 지방자치단체, 국민 그리고 산림청이 모두 합심하여 방제작업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회는 5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특별법’을 제정했다. 한 종류의 나무를 살리기 위해 법을 제정한 예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일이다. 전영우 교수는 “이런 일이 오늘 이 땅에서 전개되는 이유는 소나무가 한민족의 살아 있는 상징이자, 소중한 생명문화 유산이기 때문일 것”이라며 “우리 모두가 소나무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 청장은 “정부의 방제 노력과 더불어 피해목에 대한 국민들의 신고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잎이 우산살 모양으로 처지면서 죽어가고 있는 소나무는 일단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목으로 의심해 신고해주고, 피해 지역 및 인근 지역에서 무단으로 소나무가 이동되고 있는 상황을 발견했을 때도 신속하게 신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신고전화 1588-3249)
전영우 교수와 소나무 죽음 문턱까지 갔다 소나무 덕에 새 삶 … “재선충 못 잡으면 명목 소나무 다 죽는다”
전영우 국민대 교수(산림자원학)는 소나무와 질긴 연애에 빠져 있다. 최근 그가 사진을 찍고 글을 써 출판한 ‘한국의 명품 소나무’(시사일본어사 펴냄)는 소나무를 향한 사랑과 죽어가는 솔숲에 대한 안타까움이 녹아들어 있다.
전 교수는 ‘먹물’을 삶으로 옮기기 위해 ‘소나무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고 했다. 소나무에 눈을 뜨기 전엔 여느 산림자원학 교수와 같았다. 나무를 보면 얼마나 크고 곧은지, 즉 재목 값부터 따졌다고 한다.
그는 전국의 명목(名木,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순례하면서, 소나무의 씩씩한 기상과 솟구치는 기개가 소나무의 생기(生氣)라는 것을 비로소 느꼈다. 소나무는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구해준 생명의 나무이기도 하다.
“죽어서도 소나무 곁에 묻히고 싶었다.”
전 교수는 2002년 봄 심하게 앓았다. 횡행결장에 생긴 악성종양. 죽음의 문턱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때 소나무가 살포시 다가온다. 그는 이 땅의 명목 소나무를 사진과 글로 남기기로 결심한다.
그는 소나무를 들여다보면서 말을 걸어보았다. 솔숲 소리는 영혼을 맑게 걸러주었고, 송진 향은 생기를 되찾게 했다. 소나무들은 용기와 희망을 그에게 전해주었으며, 쇠약해진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준 묘약이었다.
“고백컨대, 소나무는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나를 구해준 생명의 나무였다.”
사람의 생명을 회복케 한 소나무를 ‘한국의 명품 소나무’에 실린 전 교수의 사진과 글을 따라 찾아가본다. 그는 “재선충을 박멸하지 못하면 명목 소나무들의 운명도 장담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 명주 삼산리의 소나무 “신목의 영험은 변함없다”
강원도의 명목 소나무는 굽거나 처진 형태로 자라는 다른 지역 소나무들과 달리 모두 금강송의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삼산리의 신목은 마을 사람들이 질병과 재난을 막고자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온 나무다. 이 신목은 21m의 높이로 장대하다. 2.7m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 줄기는 어떤 명목 소나무보다 곧고 푸르다. 굵고 단단한 줄기처럼 흔들리지 않는 기상과 굳건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신목이라서일까.
[☞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진부인터체인지로 나와 오대산으로 향하다가 6번 국도를 타고 진고개를 넘어 소금강 쪽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고개를 넘으면 나오는 제1주차장 부근에 있다.
만지송은 비탈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4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각기 다른 줄기들이 나와서 자라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외줄기에서 4가닥으로 갈라져서 수많은 가지를 쳤다. 뒷산에 올라 만지송의 품 안에 안기면서 들었던 첫 느낌은 천수관음이 현신한 듯하다는 것이었다. 몸통을 가운데 두고 천 개의 팔들에 달린 손가락인 듯 그 현란한 모습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듯했다.
[☞ 찾아가는 길] 경북 안동에서 영덕으로 향하는 34번 국도를 이용해 진안까지 간 뒤 31번 국도를 타고 영양 방향으로 향하다가 석보면소재지에서 911번 지방도로를 따라 석보중학교를 지나면 답곡동이란 마을이 나온다. 만지송은 마을회관 뒤 야산에 있다.
◆ 예천 감천면의 석송령 “자기 땅이 있는 부자 소나무”
석평 마을 사람들은 이 소나무가 마을의 화목을 지켜주는 영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석송령은 하늘로 솟구치기보다는 오히려 넓게 퍼져서 600년을 살아왔다. 나무의 키는 11m로 그렇게 크지 않다. 석송령은 토지 대장에 등재돼 매년 재산세를 꼬박꼬박 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석송령이 소유한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해마다 이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 찾아가는 길] 경북 풍기에서 이어지는 931번 지방도로를 이용하면 감천면 천향리에 닿고, 도로변에 있는 석송령을 만날 수 있다.
◆ 문경 대하리의 소나무 “황희 정승의 종택과 함께한 소나무”
명목 소나무는 같은 성씨끼리 모여 사는 곳에 감초처럼 나타나는 생명문화 유산이다. 문경시 신북면 대하리의 소나무도 다르지 않다. 대하리는 황씨 집안의 집성촌으로, 조선시대 4대 명상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황희 정승의 종택 사당과 사원이 있던 곳이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다른 반송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나무 밑에서 위를 쳐다보면 전혀 새로운 형상들을 만난다. 꼬여 올라간 가지가 회전한 기묘한 모습을 보면 소나무만이 간직한 생육 특성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옛사람들은 이 기세와 변화를 즐겼으리라.
[☞ 찾아가는 길] 경북 안동과 상주를 잇는 34번 국도를 이용해 산양면에서 충북 단양으로 가는 59번 지방도로를 타고 1km가량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다리를 건너면 만날 수 있다.
걸음을 옮겨 성황리 소나무 앞에 섰을 때 갈지자로 하늘을 향해 줄기를 힘차게 뻗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금 확인했다. 자연과 소통하는 데 정신적 여유와 적당한 감성의 그릇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도래솔이란 무덤을 둘러싸고 둥글게 늘어선 소나무를 일컫는 말이다. 성황리의 소나무는 죽은 이의 유택에 심어졌기에 300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 찾아가는 길] 경남 창녕에서 20번 국도를 이용해 의령 쪽으로 20여km쯤 내려가면 낙동강을 건너는 적포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정곡에 이른다. 정곡에서 진주 방향인 1101번 지방도로의 다리를 건너 바로 좌회전하면 성황리 마을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