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8일 경기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의 딸 정연 씨의 결혼식.
9명의 전·현직 대통령들 중 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한 7명의 대통령들은 모두 슬하에 딸을 두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셋을 두었고, 고 윤보선 전 대통령은 둘을,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외동딸을 두었다.
YS의 세 딸, 군사정권 억압 피해 미국행
가장 어린 나이에 청와대 생활을 한 대통령 딸은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아홉 살 때 두 살 위의 언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다섯 살배기 남동생 박지만 씨와 함께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다. 1979년 갑자기 터진 10·26 사건으로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근혜(당시 27), 근령(당시 25) 자매는 청와대에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이들 자매 외에 딸이 한 명 더 있었다. 스무 살에 결혼해 6·25전쟁이 터지고 이혼한 전처 김호남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딸 박재옥 씨로, 그는 큰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1957년 국회의원을 지낸 한병기 씨와 결혼한 재옥 씨는 청와대 생활을 한 적이 없다. 고 육영수 여사는 결혼 당시는 몰랐다가 훗날에야 재옥 씨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오경환, ‘대통령가의 사람들’).
최근 이혼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외동딸 효선 씨는 단발머리 여고생 때 청와대에 들어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청와대 생활을 마감했다. 효선 씨의 전 남편 윤상현 씨는 2002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던 한양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로, 둘은 프랑스어학원에서 우연히 만나 청와대 경호원들의 엄호를 받으며 연애한 것으로 전해진다.
역대 대통령 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SK 최태원 회장의 아내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그는 미국 유학 중이던 85년 최 회장을 만나 연애하다가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인 88년 9월13일 효선 씨와 마찬가지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주례로 혼인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남3녀를 두었는데 현직 대통령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임기 중에 구속된 차남 현철 씨를 제외한 자녀들은 대중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장남 은철 씨와 혜영·혜경·혜숙 자매는 모두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결혼해 미국에서 평범하게 사는 까닭이다. 김 전 대통령의 딸들이 모두 미국으로 건너가 사는 것은 오랜 세월 군사정권으로부터 핍박받아 온 야당 정치인을 아버지로 둔 탓이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
윤보선 전 대통령과 최규하 전 대통령의 딸들 또한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결혼해 가정주부로 평범하게 살아왔다. 윤 전 대통령의 큰딸 완구 씨는 형법학계의 권위자로 고려대 교수를 지낸 남흥우 씨와 결혼했으며, 화가로 활동하기도 한 차녀 완희 씨는 상하이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 대리를 지낸 신규식 선생의 아들 준호 씨와 결혼했다. 80세가 넘은 완구·완희 자매는 현재 고령으로 건강이 쇠약하다고 한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딸 종혜 씨는 서대원 국가정보원 제1차장의 아내다.
학창시절 박근혜, 튀는 것 싫어 버스로 등하교
전도연(오른쪽)이 대통령 딸로 나오는 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한 장면.
장삼이사(張三李四)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대통령 딸들의 청와대 생활은 어땠을까. 박근혜 대표의 청와대 시절 일화 한 토막. 박 대표는 학창시절 대통령의 딸로 튀어 보이는 것이 싫어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는데, 어느 날 버스기사가 박 대표에게 “너희 학교에 대통령 딸이 다닌다면서, 대통령 딸은 어떻게 생겼니?”라고 묻자 박 대표는 “저랑 비슷하게 생겼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박근령 이사장은 “서울대 음대를 다니던 시절 변장을 해 경호원들을 따돌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가족.
하지만 새벽에 효선 씨가 갑자기 사라져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고, 즉각 대성리 주변에서 차량 검문이 이뤄졌다. 효선 씨는 사라진 지 1시간 만에 망우리 부근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발견됐는데, 당시 서울대를 출입했던 한 중견 언론인은 “밤늦도록 친구들과 어울려 아버지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노래를 부르다 심경이 복잡해져 청와대로 돌아가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됐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