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한 주민들과 이들 외국의 한민족이 누가 누군지 서로 인사하며 정을 나누고, 이민-유학할 때 도움받고, 중매도 서고, 동업도 하며 세계를 무대로 민족의 역량을 키워나가자는 사업이 바로 ‘민족망 사업’이다. 매개체는 물론 인터넷이다. 한민족의 정체성 유지와 민족경제권의 확대차원에서 꼭 필요하며 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사업처럼 보인다. 유대인, 중국인, 일본인, 아랍인들은 이미 이런 사이버 민족네트워크를 만들어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이 민족망 구축사업이 국내에서도 시작됐다. 정부예산 등 3000억원 이상의 적지 않은 돈이 투입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런데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정부기관과 정치권 사이에 주도권 다툼이 일면서 민족망이 출범단계에서부터 ‘양분’될 조짐이다. 외교통상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은 ‘재외동포데이터베이스구축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일부 국회의원들과 이들을 후원하는 정보통신부는 따로 법을 제정해 ‘민족망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 상대를 비난하며 자기 쪽으로의 ‘흡수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두 개가 될 수 없는 민족망 사업. 어쩌다 일이 이렇게 돼 가고 있을까.

이 무렵 서울 여의도에선 또 다른 ‘민족망 구상’이 나오고 있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이상희 위원장(민주당), 정동영 의원(민주당), 한완상 상지대 총장(민화협상임의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아 2000년 5월 여의도에서 ‘민족망 사업 추진 위원회’를 발족한 것. 위원회가 7월 개최한 공청회에서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은 “이 사업이 재외동포들의 교류-협력의 장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상희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33명은 11월27일 민족망 사업지원 법률안을 발의해 12월23일 현재 이 법은 국회에 상정돼 있는 상태다. 위원회의 기획안은 국가정보원 정보통신부 등 정부기관, 각종 동포-시민단체, 국내외 기업체, 북한 내 기관의 데이터와 서버를 통합해 훨씬 광범위한 규모의 ‘사이버 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 위원회 관계자는 “민영화형태를 띠며 전자상거래 등 수익 창출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규모가 큰 만큼 2005년까지 투입되는 사업비는 3396억원에 이른다. 이중 상당액을 정부예산에서 충당한다는 계획.
재단과 위원회 모두 ‘민족망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면서도 줄기차게 상대를 공격하고 있다. 재단은 위원회측 법안이 접수된 다음날인 11월28일 ‘민족망 사업지원법 제정 저지 지원요청’ 공문을 청와대, 기획예산처 등 정부 각 부처에 보냈다. 이 공문에서 재단은 “위원회 사업이 우리 재단의 기존 사업과 명백히 중복되며 우리 사업에 심대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저지 이유를 밝혔다.

민족망 사업은 인터넷 공동체를 통한 한민족의 통합과 번영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다(민족망 사업 지원법률안). 그러나 정부-국회 내에서조차 ‘통합’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12월21일 기자와 인터뷰한 재단과 위원회 관계자들은 서로 상대를 향해 ‘민족망의 분열’을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