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에 불을 지펴놓아 아랫목에는 훈기가 돌고 있으나 웃목은 여전히 차다. 조금만 참으면 웃목에도 온기가 돌기 시작할 것이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은 99년 초, 체감경기가 도무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시중의 우려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아랫목 웃목론(論)‘을 이용한 절묘한 답변을 내놓았다.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 자리에서였다. 2년 전 김대통령의 언급이 들어맞았더라면 지금쯤 아랫목뿐만 아니라 웃목도 절절 끓어 국민들은 따끈한 온돌방에 ‘등 따습고 배부르게‘ 누워 있어야 옳다.
최근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당시의 ‘아랫목 웃목론‘이 회자되고 있다. 김대통령이 노동과 공공부문 개혁을 비롯해 구조조정 완료 시점으로 정한 2월 말이 다가오고 있지만 웃목이 더워지기는커녕 아궁이에 지핀 불씨마저 가물가물해지고 있다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오고 있다.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인 한양대 나성린 교수(경제학)는 이러한 배경에 대해 ”개혁의 성과를 너무 빨리 따먹으려고 한 것이 실수”라고 지적했다. 나교수는 ”98년부터 이자율을 낮추고 세제 인센티브를 주는 등 섣불리 경기를 부양시키는 바람에 개혁이 중단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99년 중반, 정부는 이미 ‘IMF 졸업‘을 선언해 버렸다. 97년 대선 과정에서 DJ가 여러 차례 언급했던 ‘1년반 안에 IMF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일부 언론들마저 나서 두툼한 정부의 보도자료를 받아쓰기에 바빴다. 그러나 97년 말 이후 한국사회에서 ‘IMF‘라는 말이 IMF에서 받은 대기성 차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듯 ‘IMF 졸업‘역시 ‘구조조정의 중단‘을 뜻하는 말은 아니었다.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2000년 봄의 4·13 총선을 목전에 둔 정부가 총선 승리를 위해 4대부문 개혁의 성과를 필요 이상으로 부풀린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장의 폐해는 머지않아 ‘개혁 지체 현상‘으로 나타났다. 최근 공기업 개혁이나 2차 금융구조조정이 이익집단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 위기에 놓인 것도 따지고 보면 이때부터 생겨난 ‘개혁 해이 현상‘과 무관치 않다.
4대 분야 개혁 중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실물 분야의 개혁은 시한을 정해놓고 추진하기보다는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과 부실 제거 등을 동반하는 금융개혁은 어느 정도 시한을 두고 추진해야 하는 특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금융 시스템을 바로 세워 자금시장을 돌게 해야만 실물 붕괴로 이어지지 않고 기업 구조조정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경제학)는 ”기업 부실-금융 부실-자금시장 경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기업 구조조정보다 금융개혁이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김대통령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기업 구조개혁을 위한 각종 법령이 연내에 국회에서 통과되면 내년부터는 새로운 시스템 아래서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금융개혁이 은행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금융 시스템을 복원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접어놓은 채 인위적 은행합병과 지주회사 만들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지주회사 편입 대상으로 논의되던 경남-광주-평화은행 등에 대해서는 2002년 6월 말까지 노사협의로 기능재편을 끝낸다는 방식으로 지주회사 방식의 통합을 사실상 유예함으로써 전문가들 사이에서 ‘금융 구조조정은 결국 물 건너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02년은 대통령 선거가 예정된 해. 이익집단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가 구조조정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지주회사 방식의 통합이 아닌 ‘국민+주택‘이라는 우량은행간의 합병도 험난한 앞길을 예고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농성 현장 공권력 투입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두 은행 노조원들뿐만 아니라 간부급 행원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한 지점장은 ”정부가 스스로 정해놓은 시간에 쫓겨 은행합병의 상징적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비난했다.
금융 전문가들의 평가도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금융연구원 손상호 박사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한다고 하더라도 기업금융의 열세로 인해 한국을 대표하는 우량은행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중복기능을 조정하고 1인당 생산성을 높여야만 선진은행으로 갈 수 있다”고 충고했다. 국민+주택은행의 합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성과라면 ‘우리도 세계 100위 안에 드는 초대형 선도은행을 갖게 됐다‘는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를 얻기 위한 기회비용은 결코 적지 않을 전망이다.
노동부문 개혁과 관련해서는 최근 노동 분야의 현안이 터질 때마다 ‘노사간‘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노정간‘ 타협을 통해 사태를 봉합해 온 관행이 큰 문제로 꼽힌다. 최근 은행 합병과정에서 금융노조가 내세우는 ‘7·11 노정합의 이행‘이라는 주장도 따지고 보면 당시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이 은행 파업을 막느라 ‘앞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은행합병은 없다‘는 데 무리하게 합의해 줌으로써 불러일으킨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조합이 더 이상 사용자를 상대하길 거부하고 모든 현안을 들고 정부와 마주앉겠다고 하는 사태는 노사문화의 심각한 왜곡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치적 현안을 논의해야 할 노사정위원회는 당초 정부에서 약속한 대로 투쟁 일변도가 아닌 참여와 협력의 ‘신노사문화‘를 정착하는 역할을 하나도 하지 못한 채 노사간 현안이 터지면 그때그때 어정쩡한 타협을 중재하는 것으로 기능의 대부분을 소진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 분야를 포함한 공공부문의 개혁은 4대 개혁 과제 중 가장 미진한 분야로 꼽힌다. 유일한 성과라면 공기업에서 퇴직금누진제를 점진적이나마 없앤 것 등이 꼽힌다. 최근 한국중공업 민영화를 끝으로 대형 공기업의 민영화 작업 역시 벽에 부닥쳐 있다. 게다가 최근 적지 않은 공기업에서 노사가 결탁해 퇴직금 갈라먹기, 과다한 복지기금 조성 등 도덕적 해이 사례가 나타나는 것을 볼 때 공기업 개혁을 2001년 2월까지 완료한다는 김대통령의 약속 역시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공공부문 개혁 지연으로 인해 민간부문의 금융-기업 구조조정 주체들이 냉소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전주성 교수는 4대개혁 추진 방법론과 관련해 △장단기 과제 설정 부재 △경제논리와 정치논리 조화 실패 △개혁 과제의 백화점식 나열 등을 문제로 꼽았다. 전교수는 또한 ”앞으로는 외형적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신뢰할 만한 구조조정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성린 교수도 ”개혁의 실적을 과시하거나 획기적인 결과를 내려 하지 말고 일관성 있게 개혁작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권 출범 당시부터 내세웠던 김대통령의 4대개혁은 지금 중대한 고비에 마주치고 있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어 순항하리라고 보는 경제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개혁 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채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는 ‘DJ호‘의 앞날이 불투명하게 보일 뿐이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은 99년 초, 체감경기가 도무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시중의 우려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아랫목 웃목론(論)‘을 이용한 절묘한 답변을 내놓았다.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 자리에서였다. 2년 전 김대통령의 언급이 들어맞았더라면 지금쯤 아랫목뿐만 아니라 웃목도 절절 끓어 국민들은 따끈한 온돌방에 ‘등 따습고 배부르게‘ 누워 있어야 옳다.
최근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당시의 ‘아랫목 웃목론‘이 회자되고 있다. 김대통령이 노동과 공공부문 개혁을 비롯해 구조조정 완료 시점으로 정한 2월 말이 다가오고 있지만 웃목이 더워지기는커녕 아궁이에 지핀 불씨마저 가물가물해지고 있다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오고 있다.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인 한양대 나성린 교수(경제학)는 이러한 배경에 대해 ”개혁의 성과를 너무 빨리 따먹으려고 한 것이 실수”라고 지적했다. 나교수는 ”98년부터 이자율을 낮추고 세제 인센티브를 주는 등 섣불리 경기를 부양시키는 바람에 개혁이 중단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99년 중반, 정부는 이미 ‘IMF 졸업‘을 선언해 버렸다. 97년 대선 과정에서 DJ가 여러 차례 언급했던 ‘1년반 안에 IMF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일부 언론들마저 나서 두툼한 정부의 보도자료를 받아쓰기에 바빴다. 그러나 97년 말 이후 한국사회에서 ‘IMF‘라는 말이 IMF에서 받은 대기성 차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듯 ‘IMF 졸업‘역시 ‘구조조정의 중단‘을 뜻하는 말은 아니었다.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2000년 봄의 4·13 총선을 목전에 둔 정부가 총선 승리를 위해 4대부문 개혁의 성과를 필요 이상으로 부풀린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장의 폐해는 머지않아 ‘개혁 지체 현상‘으로 나타났다. 최근 공기업 개혁이나 2차 금융구조조정이 이익집단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 위기에 놓인 것도 따지고 보면 이때부터 생겨난 ‘개혁 해이 현상‘과 무관치 않다.
4대 분야 개혁 중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핵심으로 하는 실물 분야의 개혁은 시한을 정해놓고 추진하기보다는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과 부실 제거 등을 동반하는 금융개혁은 어느 정도 시한을 두고 추진해야 하는 특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금융 시스템을 바로 세워 자금시장을 돌게 해야만 실물 붕괴로 이어지지 않고 기업 구조조정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경제학)는 ”기업 부실-금융 부실-자금시장 경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기업 구조조정보다 금융개혁이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김대통령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기업 구조개혁을 위한 각종 법령이 연내에 국회에서 통과되면 내년부터는 새로운 시스템 아래서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금융개혁이 은행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금융 시스템을 복원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접어놓은 채 인위적 은행합병과 지주회사 만들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지주회사 편입 대상으로 논의되던 경남-광주-평화은행 등에 대해서는 2002년 6월 말까지 노사협의로 기능재편을 끝낸다는 방식으로 지주회사 방식의 통합을 사실상 유예함으로써 전문가들 사이에서 ‘금융 구조조정은 결국 물 건너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02년은 대통령 선거가 예정된 해. 이익집단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가 구조조정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지주회사 방식의 통합이 아닌 ‘국민+주택‘이라는 우량은행간의 합병도 험난한 앞길을 예고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농성 현장 공권력 투입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두 은행 노조원들뿐만 아니라 간부급 행원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한 지점장은 ”정부가 스스로 정해놓은 시간에 쫓겨 은행합병의 상징적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비난했다.
금융 전문가들의 평가도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금융연구원 손상호 박사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한다고 하더라도 기업금융의 열세로 인해 한국을 대표하는 우량은행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중복기능을 조정하고 1인당 생산성을 높여야만 선진은행으로 갈 수 있다”고 충고했다. 국민+주택은행의 합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성과라면 ‘우리도 세계 100위 안에 드는 초대형 선도은행을 갖게 됐다‘는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를 얻기 위한 기회비용은 결코 적지 않을 전망이다.
노동부문 개혁과 관련해서는 최근 노동 분야의 현안이 터질 때마다 ‘노사간‘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노정간‘ 타협을 통해 사태를 봉합해 온 관행이 큰 문제로 꼽힌다. 최근 은행 합병과정에서 금융노조가 내세우는 ‘7·11 노정합의 이행‘이라는 주장도 따지고 보면 당시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이 은행 파업을 막느라 ‘앞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은행합병은 없다‘는 데 무리하게 합의해 줌으로써 불러일으킨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조합이 더 이상 사용자를 상대하길 거부하고 모든 현안을 들고 정부와 마주앉겠다고 하는 사태는 노사문화의 심각한 왜곡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치적 현안을 논의해야 할 노사정위원회는 당초 정부에서 약속한 대로 투쟁 일변도가 아닌 참여와 협력의 ‘신노사문화‘를 정착하는 역할을 하나도 하지 못한 채 노사간 현안이 터지면 그때그때 어정쩡한 타협을 중재하는 것으로 기능의 대부분을 소진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 분야를 포함한 공공부문의 개혁은 4대 개혁 과제 중 가장 미진한 분야로 꼽힌다. 유일한 성과라면 공기업에서 퇴직금누진제를 점진적이나마 없앤 것 등이 꼽힌다. 최근 한국중공업 민영화를 끝으로 대형 공기업의 민영화 작업 역시 벽에 부닥쳐 있다. 게다가 최근 적지 않은 공기업에서 노사가 결탁해 퇴직금 갈라먹기, 과다한 복지기금 조성 등 도덕적 해이 사례가 나타나는 것을 볼 때 공기업 개혁을 2001년 2월까지 완료한다는 김대통령의 약속 역시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공공부문 개혁 지연으로 인해 민간부문의 금융-기업 구조조정 주체들이 냉소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전주성 교수는 4대개혁 추진 방법론과 관련해 △장단기 과제 설정 부재 △경제논리와 정치논리 조화 실패 △개혁 과제의 백화점식 나열 등을 문제로 꼽았다. 전교수는 또한 ”앞으로는 외형적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신뢰할 만한 구조조정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성린 교수도 ”개혁의 실적을 과시하거나 획기적인 결과를 내려 하지 말고 일관성 있게 개혁작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권 출범 당시부터 내세웠던 김대통령의 4대개혁은 지금 중대한 고비에 마주치고 있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어 순항하리라고 보는 경제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개혁 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채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는 ‘DJ호‘의 앞날이 불투명하게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