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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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보호위원회는 ‘왕따 해결사’

“대전 L군 따돌림 사건’ 첫 타깃… 자체 경찰인력 가동 사실 확인 조사

  • 입력2005-03-04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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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왕따 해결사’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김성이·이하 청보위)가 ‘왕따’ 척결을 위해 칼을 빼들었다. 지난 97년 국무총리 소속기관으로 출범한 이래 청소년 대상 술-담배 판매 금지, 음란물 등 유해 매체물 단속, 청소년 성 보호 등 줄곧 ‘고유 업무’에 주력해온 청보위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청보위의 첫 타깃은 지난 98년 8월 대전 D고교에서 발생한 이른바 ‘L군(18) 집단 따돌림’ 사건. 당시 D고 1학년이던 L군의 아버지(53)가 아들이 일부 교사와 학생 등 63명에게 ‘조직적’인 ‘왕따’를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진 이 사건은 학생 대다수가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자녀들인 신흥 명문고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고 그 결과 큰 사회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학교 당국과 ‘가해자’로 분류된 학생의 부모들이 L군의 생활기록부 등 개인기록과 일기장을 입수해 만든 책자를 통해 혐의를 부인하고 L군측에 대해 집단 항의서명운동까지 벌이는 등 극단적인 감정싸움으로 치달아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가 됐음에도 아직 이 사건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청보위는 지난 11월 말 청보위 중앙점검단 소속 경찰관 2명을 은밀히 현지에 파견, D고와 관할 대전시교육청을 상대로 ‘왕따’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조사를 실시했다.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왕따 해결사’
    이는 사건이 법정으로 비화돼 2000년 초 대전지법에 의해 사건에 연루된 D고 학생 13명이 일종의 선고유예인 ‘불처분 결정’을 받고 같은 학교 H교사에겐 지난 11월 30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지는 등 사건이 사법적으로는 종결된 이후 이뤄진 조치여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H교사가 법원 판결에 불복, 항소를 한데다 피해자측이 관련자를 대상으로 제기한 민사소송까지 진행중인 민감한 시점에서 조사가 행해진 점도 청보위의 이런 행보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하는 부분이다.



    아직 언론에 포착된 바 없는 청보위의 이런 ‘파격’엔 어떤 속뜻이 숨어 있을까.

    “왕따가 횡행하는 교육환경도 엄연히 청소년 유해환경이다.” 청보위 김성이 위원장(54)은 “왕따 현상은 비틀린 성인사회의 산물이자 그릇된 교육 메커니즘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김위원장의 이런 강한 어조엔 청소년을 단순히 유해환경으로부터 차단하는 소극적 방법으론 ‘왕따’라는 정신적 폭력을 예방할 수 없다는 자각과 함께 왕따 척결에 대한 청보위의 강한 의지가 묻어난다. 말하자면 정책 방향을 ‘청소년 보호’에서 ‘청소년 인권 보호’로 한 단계 격상시켜 자칫 문화관광부, 보건복지부, 법무부, 교육부 등 여러 관련 행정부처 간 이견으로 생길 수 있는 청소년 보호정책의 ‘틈새’를 메우겠다는 것이다.

    2000년 8월 제2대 청보위 위원장 취임 후 이제 4개월 남짓 집무경험을 가진 김위원장이 ‘왕따’ 문제에 눈돌리게 된 건 지난 10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주최한 한 행사에 초대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행사에 참석한 L군 부모로부터 D고 사건이 발생 2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음을 전해들은 것.

    “왕따는 어느 조직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외없이 사법처리로 종료된다. 하지만 정작 ‘왕따’ 예방을 위한 교육적 논의는 실종된다. 법원 판결로 왕따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경직된 사고가 과연 교육적인 자세인가.”

    김위원장의 지적대로 사실 ‘왕따’사건은 발생-처벌로 끝나는 것이 통례다. 법적 처벌 이외에 ‘왕따’의 심각성을 되짚어볼 수 있는 교육행정적인 후속조치는 생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자측이 수없이 관련 민원을 제기해도 해당기관끼리 민원을 이첩하며 서로 떠넘기기에만 급급해 원만한 ‘조율’은 이뤄지지 않고 가해-피해자란 적대적 관계만 남기 십상이다.

    때문에 ‘왕따’의 후유증은 크다. 현재 L군은 사건 당시의 충격으로 3년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99년 7월 학교도 자퇴했다.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다면 지난 11월 수능시험을 치렀어야 하지만 아직 학업을 계속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의 병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성폭력 피해자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정신질환이다. 대덕연구단지 연구원이었던 L군 아버지도 사건 이후 직장을 떠나야 했다.

    L군 아버지는 “단순한 왕따사건으로 보지 말아달라. ‘왕따’ 문제를 폭로한 후 학교측과 가해 학부모들은 우리 가족에게 ‘교육파괴 사건’으로 불러야 할 만큼 더 심한 조직적인 따돌림을 자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전국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D고와 대전시교육청에 대한 항의시위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하지만 청보위의 관심은 자칫 더 첨예한 대립을 부를 수 있는 당사자들 간의 이런 ‘주장’보다는 왕따 재발 방지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청보위는 중재를 겸한, D고 사건 관련조사를 마친 뒤 “청보위 조사 결과 D고 사건의 일부 관련자들이 왕따 혐의를 시인했으므로 학교측이 가해학생들에게 사회봉사프로그램을 부과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지도해 달라”는 요지의 협조공문을 지난 12월 중순 교육부로 보냈다.

    그러나 청보위의 이같은 ‘순수성’에 관련기관들은 한결같이 탐탁찮은 기색이다. ‘왕따’ 사건 조사는 원칙적으로 교육부 학교정책과의 소관사항. 교육부 관계자는 “협조공문은 받았다. 하지만 재판 계류중인 민감한 사안에 대해 무작정 청보위의 권유를 따를 수는 없다”며 “청보위의 공문은 그야말로 참고자료로서의 가치만 지닐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대전시교육청과 D고측도 “사건은 교육기관의 손을 떠났으므로 사법기관의 판단만 기다리면 된다”는 입장이다. 아직 남아 있는 소송의 결과를 법원의 판단에 맡길 뿐 사건 자체를 재론하기조차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청보위엔 L군 케이스를 계기로 다른 ‘왕따’ 사례들에 대한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대부분 3, 4년 전 발생한 묵은 사건이지만 교육기관 선에서 명확히 해결되지 못한 것들이어서 청보위의 ‘왕따’ 척결 의지에 적잖은 기대가 몰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위원장은 이에 대해 “왕따 문제 처리가 미숙한 것은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의 부재 탓”이라며 “적정한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는 성인사회의 왕따 현상이 청소년에게 그대로 학습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이런 소신에 따라 그는 영국과 호주, 싱가포르 등에서 시행중인 ‘컨퍼런스 시스템’을 내년 중 도입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 제도는 ‘집단 따돌림’에 대한 법원의 판결 이전에 가해-피해 청소년과 교사, 상담 전문가, 경찰관 등이 모여 판사의 주재 하에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종의 중재위원회. 때로 ‘사소한 문제’로 그칠 수 있는 왕따 사건이 어른들 간의 감정문제로 비화되거나 화해를 도모해야 할 학교가 스스로 ‘벽’이 돼 사실 은폐와 왜곡을 저지르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일선 학교와 청보위에 이런 중재위원회를 두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청보위는 청소년 폭력 예방을 위한 특별법(가칭) 제정도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청소년 문제를 ‘큰 그림’으로 풀어나가려는 청보위의 이런 파격적 시도는 다른 행정부처들에 의해 ‘왕따’당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까. 전임 강지원 위원장 시절 제한적인 권한에다 부처 이기주의로 소신있는 일처리에 방해받은 경험을 가진 청보위는 이제 자체 활동에 무게를 싣는 작업과 함께 ‘왕따’ 척결이란 이중과제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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