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에게나 균등한 시간. 하지만 우리 주위엔 유난히 시간관리에 탁월한 '달인'들이 있다. 그들로부터 '시간 불려쓰기'의 비결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택-외환은행장 등을 지낸 김재기 관광협회중앙회장(63)은 자신을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만나면서도, 한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기로 유명하다. 그의 하루 일과는 아침 6시에 시작된다. 6시에 문을 여는 곳을 찾기 위해 애를 먹기도 했다는 김회장은 요즘 조선호텔을 애용하고 있다. 만나는 장소를 조선호텔로 집중해 이동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비결. 6시, 6시30분, 7시30분…식으로 아침에만 4, 5건의 약속이 있는 경우도 많다. 6시에 만난 사람과는 커피에 토스트, 6시30분에 만난 사람과는 된장찌개에 밥… 이런 식으로 식사메뉴를 차별화하는 것은 시간을 아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상대??최선을 다하는 김회장의 시간관리 비법이다.
김회장의 ‘비밀병기‘는 두 개의 수첩이다. 하나는 김회장이 항상 차에 두고 다니는 1만여명의 핸드폰, 사무실, 집 전화번호와 주소가 적혀 있는 수첩. 김회장은 차로 이동 중에 계속 전화를 걸어 시간을 아낀다고. 하루 평균 수십여통의 전화를 받는 그는 이런 식으로 시간을 쪼개 사용하며, 전화를 받지 못했을 때는 반드시 응답전화를 해줌으로써 인맥을 관리한다. 핸드폰을 두 개 갖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다.
또 하나의 수첩은 김회장이 갖고 다니는 것으로 보통 10일 전에 확정된 일정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수시로 수첩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약속을 잊지 않도록 상기한다. 그는 ”상대방의 약속 취소 등으로 시간이 남을 경우, 평소 못 만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을 만남으로써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식이나 개업식 등은 A4 용지 한 장에 관련 내용을 적어 자동차에 한 장, 사무실에 한 장, 주머니 속에 한 장씩 챙김으로써 체계적으로 시간을 관리한다. 김회장은 ”예기치 않은 문상 등 갑작스런 일이 생겼을 때는 밤 12시 이후에 간다. 선약도 지키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루 평균 7건 정도의 모임에 참석한다는 김회장은 술은 맥주 한 잔, 양주 한 잔 정도로 자제하고 골프를 하는 것으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그가 시간관리에 철저한 기본 이유는 사람 만나는 것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 데다 ‘신용은 생명‘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가훈은 ‘작은 사람과의 약속이든 큰사람과의 약속이든 반드시 지켜라‘이다.
소종섭 기자 ssjm@donga.com
17~18시간 1인 다역…틈틈이 골프도
자칭 타칭의 시간관리 ‘달인‘인 IBS컨설팅그룹 윤은기 회장(49). 지난 92년 저서 ‘시(時)테크-시간창조의 기술‘을 내놓으며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한 그는 취침시간을 빼고 하루 17∼18시간쯤 쓴다.
본업인 경영컨설팅 업무 외에 방송 진행(KBS 제1라디오 ‘생방송 오늘‘), 한달 30회(연평균 350회) 가량의 강연 등으로 ‘1인 다역 인생‘을 사는 그의 일상은 그야말로 시간관리의 연속. 공군장교 시절 비행단장 부관으로 근무하며 철저히 짜인 일정을 따라야 했던 게 20여년을 이어온 시간관리의 내력이 됐다.
식사는 무조건 예약한다. 운동시간도 따로 없다. 궁리 끝에 헬스클럽 회원권을 내던지고 구입한 게 아령 3세트. 안방과 서재, 욕실에 1세트씩 놔두고 손에 걸릴 때마다 수시로 운동한다. 직업상 필수인 독서는 서문과 목차만 꼼꼼히 읽고 나머지는 철저히 발췌독. 지독한 속독인 그는 필요한 책을 한달에 한번 일괄 구매한다. 부족한 잠은 이동시 차안에서 20∼30분씩 토막잠으로 때운다.
저녁시간 약속은 사양. 특히 생활 리듬을 깰 우려가 큰 술자리는 10일 전쯤 사유를 밝혀온 선약에만 응한다. 대신 애써 절약한 시간으론 한달에 서너 번 부인과 함께 골프를 즐긴다. 부부가 서로 덜 바쁠 때 상대의 일을 도와주는 ‘시간공조체제‘만 잘 익혀두면 부부싸움의 80∼90%는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무수히 부닥치는 선택의 순간에 우선순위와 기회비용이 낮은 일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시테크의 시작”이라는 윤회장은 2001년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주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시간경쟁력이 개인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 조언한다. ”업무계획은 잘 세우면서 정작 사생활 계획에는 문외한인 것이 한국인의 단점”이란 지적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살면 너무 각박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그가 무심히 받아넘긴 한마디. ”Time is Cash(현금)!”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업무·휴식 구분 확실 여유시간 ‘창조‘
제일제당㈜ 인사팀 황석기교육담당부장(41)은 2년 전 ‘비범한 직장인‘ 대열에 합류했다. 98년까지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었던 그가 시간관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서부터.
갈수록 일에 매몰되는 것이 안타까웠던 그는 자신이 달성할 인생의 여러 가치를 지난 99년부터 다이어리에 업무리스트 적듯 빼곡이 써넣으며 하나하나 실천했다.
2000년 목표는 낭비요소를 줄이는 재테크, 건강한 몸과 정신, 활발한 취미생활, 가정의 행복, 동료로부터의 신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등. 황부장은 여기에 24시간을 골고루 배분했다. 일 중심의 시간관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업무와 휴식을 확실히 구분해 여유시간을 ‘창조‘하는 것이 시간 불려쓰기의 비결인 셈.
계획이 철저한 만큼 황부장은 직장 일 외에도 영어회화, 헬스, 골프연습, 인터넷, 독서(한달 5권) 등 정해진 스케줄을 어기는 법이 없다. 계획 완료에 대한 점검은 필수.
”무엇이 가치있는 인생인지 따져보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면 시간관리는 저절로 이뤄집니다. 시간관리에 투자하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나 균등한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 삶의 질을 높이기란 그?鍍?쉽지 않은 일. 그래서 황부장은 더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위해 팜PC까지 구입, 스케줄 장비(?)를 업그레이드했다.
”2000년 재테크는 답보상태고…지방에 사는 사촌들 자주 찾아본다는 게 잘 안 지켜졌네요.” 지난 연말 아내와 한 해를 꼼꼼히 ‘결산‘해본 그는 2001년 다이어리에 ‘동료들에게 여유로운 얼굴로 비칠 것‘이란 목표를 새로 추가했다.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