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80대 후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60대 김모 씨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김 씨는 8년째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시어머니를 부양하며 마음 놓고 외출한 적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균형 감각이 떨어져가는 시어머니가 살짝만 넘어져도 크게 다치는 경우가 생겨서다. 김 씨는 “조금만 다른 일을 보고 있으면 바로 병원행”이라고 애로를 토로했다. 잠깐 외출을 해야 할 때면 근처 시누이 집에 시어머니를 꼭 맡긴다. 김 씨가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는 시간은 시어머니가 복지관에 가서 자리를 비우는 오전 3시간 정도다. 김 씨는 “꼭 아이를 등원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김 씨를 보며 시어머니도 “에구, 내가 죽어야 하는데…”라고 한숨을 쉰다.
노인 인구 천만 시대가 도래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일명 ‘노노(老老)부양’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60대 자녀가 80대 부모를 돌보거나 70대 자녀가 90대 부모를 간병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노부양’ 가구는 늘어나지만 지역사회 재가복지 서비스는 부족한 실정이다. [GETTYIMAGES]
분가 포기하고 부모 부양만 40년
은퇴 후 서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오모 씨 부부도 오 씨의 95세 어머니를 부양하고 있다. 부부는 신혼 시절부터 오 씨의 부모,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신혼 때 분가하려고 집 계약까지 했지만 집안 어른들이 서운해하는 것 같아 계약을 파기했다는 게 오 씨의 설명이다.
젊은 시절엔 웃어른을 부양하는 게 체력적으로 부치지 않았다. 문제는 은퇴 후였다. 오 씨의 아내 정모 씨는 정시에 시어머니 끼니를 챙기면서 가게 운영도 병행하고 있다. 고령인 시어머니가 스스로 밥상을 차리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정 씨는 평일 오전 8시 30분 가게에 나가지만, 오전 8시에 맞춰 밥을 먹는 시어머니를 위해 매일 상을 차리고 있다. 그 세월이 벌써 40년째다. 오 씨는 “아내가 고생하는 걸 보면서 그때 분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든다”며 “아내도 나이를 먹으면서 힘들다고 재차 얘기하지만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오 씨는 5~6년간 아버지도 간호했다. 그는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의 대소변 수발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오 씨는 “부모님이 요양병원에 가고 싶지 않아 했고 나도 요양병원이 내키지 않았다”며 “집에서 노인을 돌보는 가구를 위한 정부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혼자 돌보면 경제적·신체적·정서적 3중고 부담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노노부양 세대 현황’에 따르면 2023년 말 현재 만 60~79세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 가운데 만 80세 이상 부모를 부양하는 세대는 13만1008가구다(그래프 참조). 만 80세 이상 피부양자를 둔 60세 이상 직장가입자는 2019년 약 9만 가구, 2021년 약 11만5000가구로 집계됐다. 4년 만에 약 4만 가구(44%)가 늘어난 것이다.
만 80세 이상 직장가입자가 만 60세를 넘은 피부양자를 둔 경우도 106가구에 달했다. 팔순이 넘은 노부모가 돈을 벌면서 환갑을 넘긴 자녀를 부양하는 경우가 100가구를 넘는 것이다. 2019년 769만 명이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올해 7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80세 이상 고령자도 2019년 176만 명에서 올해 말 238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노인을 부양하는 노인은 경제적·신체적·정서적으로 3중고를 겪는다고 지적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만성질환 또는 중증질환이 있는 노인을 돌보려고 경제활동을 그만두고 부양에만 집중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노인이 국가 지원 없이 혼자 오랜 기간 부양하다 보면 경제적 손실도 크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돼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령화는 급속히 진행되는 데 반해 돌봄 지원책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지자체가 지원하는 ‘노노케어’(건강한 노인이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노인을 찾아가 말동무 해주기 등 돌봄 사업)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전문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지역사회 재가복지 서비스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허준수 교수는 “중증질환이 없는 노인은 대부분 지역사회와 가정에서 돌보는 게 세계적 추세”라며 “노인 부양이 개인만의 책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김건희 특검 수사’ 한덕수 손에 달렸다
미국, SK하이닉스에 6600억 원 보조금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