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어떤 분야가 유망할까요.”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다. 지난 글에서 다뤘듯이 ‘모든 직업의 예술화’가 나타나면 분야를 막론하고 안정성과 고소득을 보장하는 직업은 사라질 전망이다. 인공지능(AI)의 처방이 인간 의사보다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 내 의대 열풍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미래에 유망한 분야는 없다. 구글 감원 사태에서 나타나듯이 단순 작업을 하는 프로그래머는 가장 먼저 실직 운명에 직면해 있다. 불확실성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필자는 재능에 상관없이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춤에 재능이 없다면 그것이 무용을 배워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필자 나름대로 이를 실천한 결과물이 ‘다빈치스쿨’이라는 책 집필이었다.
필자는 요즘 ‘재능이 없는 사람을 위한 글쓰기’라는 가제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책은 ‘첫문장을어떻게시작해야할지가머리에떠오르지않아마냥시간을보내기’라는 독일어식 명사(名詞)로 시작한다. 필자에게 글쓰기 재능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 글쓰기가 쉬워지는 듯했으나 다시 책을 쓰려니 ‘또다시너무어렵다는생각이든다’.
에세이라는 이유로 마음 내키는 대로 쓰는 것을 혐오한다. 그럼에도 지금 책을 논리적(論理的)이면서 무논리적(non-logical)으로 쓰고 있다. 언젠가 마주친 ‘신심명(信心銘)’의 첫 구절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때문이다. 스님들 풀이에 의하면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로지 가리고 선택하는 것을 꺼릴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편견이나 잘못된 생각으로 분별에 집착하면 지극한 도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를 “모든 것을 선택한다”로 재해석했다. 필자의 공부법도 이와 맞닿아 있다. 바로 모든 것을 동시에 다 배우는 ‘혼란의 공부법’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권한 삶의 자세인 “Stay hungry. Stay foolish(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와도 유사하다. 극단적으로 많은 것을 동시에 배우다 보면 역설적으로 무지 상태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것이 주는 절망과 희망을 즐기자.
“자연은 선택하지 않지만 예술은 선택을 한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을 인간은 예술(art) 안에서 한다. 자연이 만든 모든 것 안에 그것이 만들어진 기록이 있다. 우리가 이것을 의식할 때 우리는 우주의 질서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선택이라는 단어가 정말 중요하다 생각하고 시적인 감동을 느끼고 있을 때 어느덧 아래 문장이 따라 나온다.
“Some can reconstruct the laws of the universe from just knowing a blade of grass.
Others have to learn many, many, things before they can sense what is necessary
to discover that order which is the universe.”
어떤 사람들은 풀잎 하나를 아는 것만으로 우주 법칙을 재구성할 수 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우주 질서를 발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감지(感知)하기 전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쉬운 영어지만 알면서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답을 찾기까지 20여 년이 걸렸고, 그 여정을 ‘벤야민 번역하기’라는 책에 담았다. 천재라고 봐도 무방한 칸이지만, 본인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박하게 느끼며 이 말을 한 것 같다. 르코르뷔지에 같은 천부적 재능을 가진 건축가와 자신을 비교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만든 위대한 걸작에는 천재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또 다른 감동이 있다. 칸이 설계한 미국 솔크연구소를 보라.
세상 이치가 보이기 시작하자 한국 사회의 문제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노력은 많이 하는데, 의미 없는 낭비가 많다는 점이 그것이다.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실상은 아는 것이 눈을 가리는 경우가 더 많다. 쌓아놓기만 하는 지식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그림을 볼 때 화가에 관한 지식을 먼저 떠올리는 것, 와인을 마실 때 맛에 집중하기보다 와인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한국적 병폐다. 지식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감이 없어서다. 한국과 일본 학생들은 무지를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무식해도 당당한 사람이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 수 있다.
지식이 많다고 논문을 잘 쓰는 것이 아니다. 먼저 유치하더라도 자신만의 이론이 있어야 한다. 이후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이를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한국은 순서가 뒤집혔다. 정통성과 이단에 관한 끊이지 않는 논쟁을 보고 있자면 “아직도 한국은 노론이 지배하는 세상인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오구라 기조의 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담겼다. 이제 소비자는 그만하고 생산자가 돼보자. 먼저 예술가가 돼야 작품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다. 지난 글에서 다뤘듯이 ‘모든 직업의 예술화’가 나타나면 분야를 막론하고 안정성과 고소득을 보장하는 직업은 사라질 전망이다. 인공지능(AI)의 처방이 인간 의사보다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 내 의대 열풍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도무난 유혐간택’
건축가 루이스 칸이 설계한 미국 솔크연구소에는 ‘천재에겐 허락되지 않은 감동’이 담겨 있다. [뉴시스]
필자는 요즘 ‘재능이 없는 사람을 위한 글쓰기’라는 가제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책은 ‘첫문장을어떻게시작해야할지가머리에떠오르지않아마냥시간을보내기’라는 독일어식 명사(名詞)로 시작한다. 필자에게 글쓰기 재능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 글쓰기가 쉬워지는 듯했으나 다시 책을 쓰려니 ‘또다시너무어렵다는생각이든다’.
에세이라는 이유로 마음 내키는 대로 쓰는 것을 혐오한다. 그럼에도 지금 책을 논리적(論理的)이면서 무논리적(non-logical)으로 쓰고 있다. 언젠가 마주친 ‘신심명(信心銘)’의 첫 구절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때문이다. 스님들 풀이에 의하면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로지 가리고 선택하는 것을 꺼릴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편견이나 잘못된 생각으로 분별에 집착하면 지극한 도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를 “모든 것을 선택한다”로 재해석했다. 필자의 공부법도 이와 맞닿아 있다. 바로 모든 것을 동시에 다 배우는 ‘혼란의 공부법’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권한 삶의 자세인 “Stay hungry. Stay foolish(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와도 유사하다. 극단적으로 많은 것을 동시에 배우다 보면 역설적으로 무지 상태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것이 주는 절망과 희망을 즐기자.
아는 만큼 보인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그러나 재능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재능없는사람이쓰는위대한문학’이라는 독일어식 명사를 만든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꼭 언급해야 하는 사람이 건축가 루이스 칸이다. 인생 고비마다 마주치는 스승들이 있는데, 필자에게는 칸이 그런 사람이다. 칸이 말한 다음 문장은 20여 년째 내 마음속에서 속삭이고 있다.“자연은 선택하지 않지만 예술은 선택을 한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을 인간은 예술(art) 안에서 한다. 자연이 만든 모든 것 안에 그것이 만들어진 기록이 있다. 우리가 이것을 의식할 때 우리는 우주의 질서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선택이라는 단어가 정말 중요하다 생각하고 시적인 감동을 느끼고 있을 때 어느덧 아래 문장이 따라 나온다.
“Some can reconstruct the laws of the universe from just knowing a blade of grass.
Others have to learn many, many, things before they can sense what is necessary
to discover that order which is the universe.”
어떤 사람들은 풀잎 하나를 아는 것만으로 우주 법칙을 재구성할 수 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우주 질서를 발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감지(感知)하기 전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쉬운 영어지만 알면서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답을 찾기까지 20여 년이 걸렸고, 그 여정을 ‘벤야민 번역하기’라는 책에 담았다. 천재라고 봐도 무방한 칸이지만, 본인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박하게 느끼며 이 말을 한 것 같다. 르코르뷔지에 같은 천부적 재능을 가진 건축가와 자신을 비교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만든 위대한 걸작에는 천재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또 다른 감동이 있다. 칸이 설계한 미국 솔크연구소를 보라.
세상 이치가 보이기 시작하자 한국 사회의 문제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노력은 많이 하는데, 의미 없는 낭비가 많다는 점이 그것이다.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실상은 아는 것이 눈을 가리는 경우가 더 많다. 쌓아놓기만 하는 지식은 약이 아니라 독이다. 그림을 볼 때 화가에 관한 지식을 먼저 떠올리는 것, 와인을 마실 때 맛에 집중하기보다 와인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한국적 병폐다. 지식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감이 없어서다. 한국과 일본 학생들은 무지를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무식해도 당당한 사람이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 수 있다.
지식이 많다고 논문을 잘 쓰는 것이 아니다. 먼저 유치하더라도 자신만의 이론이 있어야 한다. 이후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이를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한국은 순서가 뒤집혔다. 정통성과 이단에 관한 끊이지 않는 논쟁을 보고 있자면 “아직도 한국은 노론이 지배하는 세상인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오구라 기조의 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담겼다. 이제 소비자는 그만하고 생산자가 돼보자. 먼저 예술가가 돼야 작품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