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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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 종로에도 상가 공실 속출, “권리금 포기하고 장사 접는 건 처음”

‘건물 임대’ 현수막 날마다 늘어… “임대 보증금 다 까먹고 장사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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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0-09-26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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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종 바꾸시려고요?”
    “아니요. 그냥 그만 하려고요.”
    “다른 분이 들어오나요?”
    “요즘 같은 때 누가 들어오겠어요. 아무도 안 들어오죠.”
    “미치겠네.”

    9월24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종각역 지하상가 상인들 사이에 작은 소란이 발생했다. 1990년 4월 1일부터 지하철 종각역 지하상가를 지켜온 A(65)씨가 이날 화장품 매장을 정리한 탓이다. 가게 주변에는 본사로 반품할 화장품 상자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본사 직원 2명이 매장을 방문해 가게 정리 절차를 방금 알려준 참이었다.

    권리금 지급은 옛말

    9월24일 서울 종로구 일대 상가들이 줄지어 임차인을 찾는 현수막을 줄지어 붙이고 있다. [조영철 기자]*

    9월24일 서울 종로구 일대 상가들이 줄지어 임차인을 찾는 현수막을 줄지어 붙이고 있다. [조영철 기자]*

    9월24일 점심시간에도 서울 종로구 종각역 지하상가들이 영업을 개시하지 않고 있다. [조영철 기자]

    9월24일 점심시간에도 서울 종로구 종각역 지하상가들이 영업을 개시하지 않고 있다. [조영철 기자]

    A씨는 종로 상권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상인이다. 한 칸짜리 의류 매장에서 시작해 가게를 넓혔고 화장품 매장으로 품목도 변경했다. 33.3㎡(10평) 정도의 크지 않은 가게였지만 직원도 2명 둘 만큼 장사가 잘됐다. A씨는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던 곳인데 방문객이 예전 같지 않아 이제는 한산하기만 하다”며 “3월 이후로 월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를 마지막으로 매장에서 일하던 직원 2명과 계약 관계를 끝냈다”며 “가게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권리금도 포기하고 장사를 접는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수송수입실적에 의하면 코로나가 본격화된 3월부터 8월까지 종각역 하차인원은 514만 705명으로 지난해 대비 66.5%에 불과했다. 승객이 준 것 이상으로 지하상가 매출은 크게 줄어든 것이다. 

    A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매장을 포기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기존 상인들이 가게를 내놔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공실률도 증가하는 추세다. 매장 명의변경 과정에서 상인 간 지급되는 권리금 역시 코로나19 국면에는 옛말이 됐다. 



    직장인이 몰려 ‘목이 좋다’고 소문난 종로 상권도 예전 같지 않다. 한국감정원은 분기별로 주요 상권 공실률을 발표한다.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이 330㎡를 초과하는 상가건물은 중대형상가에, 이에 해당하지 않으면 소규모 상가로 집계된다. 종로 상권의 중대형상가 공실률은 올해 1분기 6.1%에서 2분기 7.5%로 증가했다. 소규모 상가의 경우 1.5%에서 2.9%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서울 중대형상가 공실률은 7.9%로 동일했고 소형상가 공실률은 4.0%에서 4.2%로 증가했다. 종로 상권은 상황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볼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 중심 상권에서 공실률 증가 추이가 가파르다는 게 지역 상인들과 중개업자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주 고객이 직장인과 외국인인데…”

    9월24일 서울 종로구 대로변의 한 매장이 입점 점포가 없어 텅 비어 있다. [조영철 기자]

    9월24일 서울 종로구 대로변의 한 매장이 입점 점포가 없어 텅 비어 있다. [조영철 기자]

    9월24일 정오 무렵 방문한 종각역 인근 종로 거리에는 예년과 다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곳곳에서 임대 현수막을 내건 빈 매장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개별 점포는 물론 대로변의 빌딩 전체가 빈 경우도 여럿 있었다. 노래방과 의류매장까지 업종도 다양했다. 한 포장마차 건물에는 ‘8월 31일로 영업 종료합니다’라는 게시물을 붙인 채 한 달 가량 가게를 비워놓은 상태였다. 검은색 헬멧을 쓴 남성 2명이 오토바이를 탄 채 거리를 누비며 수시로 대부업체 명함을 뿌리고 있었다. 이미 바닥에는 형형색색의 대부업체 명함이 빈 공간 없이 놓여있었다. 

    종로구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이화현(60) 공인중개사는 “코로나 이후 상가 매물의 개념이 달라졌다”며 “점포를 인수하려는 사람이 있어야 매물이라 부를 수 있을 텐데, 점포를 내놓기만 하지 인수하겠다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종로2가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B(60대·여)씨 역시 이들 중 한 명이다. 월 매출이 6000만~7000만 원 가량 나오던 고깃집이었지만 최근에는 하루 매출이 50만 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루 평균 300만 원씩은 매출을 올렸던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황금 구간에도 이제는 100만원의 매출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B씨는 “종로 일대 상권의 주요 손님은 직장인과 외국인인데 코로나19와 함께 발길이 뚝 끊겼다”며 “가게를 부동산에 내놓고 누군가 인수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무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8‧15 광화문 집회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될 것이라는 발표를 듣고 직원 2명도 정리했다”며 “지금은 사위가 저녁에 나와 홀을 봐 준다”고 말했다. B씨는 “요즘은 장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라며 한탄했다. 

    종로구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이(60대·여)씨는 “종로에는 자영업 경력이 제법 되는 프로들이 장사를 한다. 그런데도 종로 상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씨는 “보증금에서 월세를 제하는 방식으로 임대료를 충당하며 버티다 보증금이 다 떨어져 가게를 정리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경기 악순환 부르는 공실률 증가”

    9월2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일대 거리가 예년과 달리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해윤 기자]

    9월2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일대 거리가 예년과 달리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해윤 기자]

    종로의 저녁은 스산했다. 9월23일 저녁, 종로 거리는 더 이상 일과를 끝낸 직장인들로 붐비지 않았다. 각양각색의 전광판이 휑한 거리를 비추는 가운데, 노래방 사장들은 간판에 불도넣지 않고 27일까지 유지되는 집합금지 명령이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술집은 ‘포장 가능’이라 적힌 A4 용지를 가게 출입구에 붙여놓고 손님을 기다렸지만 관심을 보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종로 상인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주 매출 시간대가 저녁에서 점심으로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20년 동안 종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다 올해 사업을 정리했다는 권모(50) 씨는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 업황을 살핀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일찍 귀가하다보니 저녁장사는 더 이상 없다”며 “20~3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점심장사가 주요 수입원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상가 공실률 상승이 경기 악순환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가 나빠진 탓에 상가공실률이 높아졌지만 반대로 상가공실률이 높아지는 것이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며 “건물주의 담보 대출 상황이 악화되거나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면 막연히 부자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이들이 대출을 끼고 부동산을 갖고 있는 상태”라면서 “근본적으로는 경기 회복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겠지만 공실 상가를 위한 세제 지원 대책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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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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