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하면서 술을 마셔야 할 상황이라면 어떤 술이 좋을까. [GettyImage]
가끔 필자의 유튜브 채널에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다. 냉혹하게 말하자면 몸에 좋은 농약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인 질문이지만 나 또한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질게 답하진 못한다.
다이어트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찾아오는 숙명의 순간이 바로 술을 마실 때다. 차라리 술을 원래부터 안 마시는 사람이거나 아예 몸에서 안 받는 사람이라면 고민할 일이 없다. 그런데 사실 이런 사람들은 당초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다이어트를 하는 많은 이들이 그 고뇌의 근원을 되짚어보면 어느 정도는 음주 습관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사회생활은 술을 빼놓고 상상하기 어렵다. 직장 회식에서 술을 마시고 친구들을 만나도 술을 마신다. 심지어 소개팅을 해도 술을 마시는 일이 있지 않은가. 원래부터 몸에 안 받으면 몰라도 본래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매 순간 번민에 시달린다.
술만 마시면 살 안 찔까
알코올은 그 자체로 칼로리가 탄수화물과 단백질보다 높다. [GettyImage]
게다가 알코올은 에너지로 전환하기가 쉬워 신체에서 바로 소비된다. 탄수화물 같은 영양소는 잉여로 들어올 경우 몸에서 흡수하지 않고 배출되는 경우가 있지만 알코올은 네이버페이 적립금 쓰듯 알뜰살뜰 다 쓴단 얘기다.
사람의 몸이 기본 유지를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만약 알코올로 다 충당하면 어떻게 될까? 지방의 경우 잉여로 들어온 것은 체지방으로 변환되기 쉽다. 술자리에 나오는 안주에 지방질이 많으면 차곡차곡 뱃속에 쌓인다. 그러니까 술 마시면 살이 찌는 이유는 안주 때문이기도 하지만 술 자체 때문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위해선 술을 끊는 게 최선이지만 목숨은 끊어도 술은 못 끊는다는 용자들은 세계 어디에나 득시글하다. 키토제닉(저탄고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알코올 섭취가 혈중 케톤 농도를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알코올이 케톤 생성 증가시킨다고?
먼저 케톤이 왜 중요한지 알아보자. 근래 유행하는 키토제닉 다이어트나 구석기 다이어트 등은 모두 ‘케토시스’라고 하는 상태를 다이어트의 요체로 삼고 있다.케토시스란 몸이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게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체는 크게 탄수화물(포도당)과 지방(케톤)을 에너지원으로 쓰는데 포도당 저장고가 바닥나면 이제 지방을 연소시켜 에너지를 만든다. 이때 생성되는 게 케톤이다.
우린 거의 항상 탄수화물을 입에 달고 살기 때문에 일부러 단식을 해보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지막으로 몸이 케토시스였던 시절은 신생아 시절인 경우가 많다. 신생아는 태어났을 때 케토시스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케토시스 상태를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헬스광들이 근손실에 집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알코올이 혈중 케톤 농도를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에 애주가들이 얼마나 환호했겠는가.
알코올 흡수시 혈중 케톤 농도가 증가하는 까닭은 간이 알코올을 분해해 케톤으로 변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맹점이 있다. 첫째는 결국 알코올 섭취량이 늘어나면 지방 대신 섭취된 알코올을 에너지원으로 쓰게 되며 이렇게 되면 결국 케토시스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보다 치명적인데 케토시스 상태에서의 음주는 간에 보다 큰 독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하면서 음주를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평소보다 술에 빨리 취하고 숙취가 심했다고 술회한다. 이는 에탄올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특정 효소가 간에 큰 독성을 갖는 대사 산물을 만들기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케토시스 상태에서 발생하는 케톤체인 아세톤과 베타하이드록시부티레이트는 이 효소 발생을 촉진시킨다.
그래서 키토제닉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만약 피할 수 없는 술자리를 맞게 된다면 반드시 그전에 뭘 좀 먹어서 케토시스 상태를 미리 깨버리길 권한다. 모든 술꾼이 체화한 지혜인 ‘배불리 먹은 다음 마시면 덜 취한다’에는 나름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다이어트에 덜 해로운 술
다이어트 중에 음주하게 되면 투명하고 향이 없는 술을 고르자. [GettyImage]
알코올과 당분으로 인한 영향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염증 작용에 대한 이야기는 생소할 것이다. 몸 안에서 염증 작용이 많이 발생할 경우 우리는 보다 허기를 쉽게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허기를 느낄 때 가장 당기는 설탕이 많이 든 음식은 몸 안에서 염증 작용을 더 자극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체중 증가가 심해진다. 이 때문에 다이어트 클리닉에서는 비만 환자의 염증 완화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술은 발효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발효 과정에서는 알코올 외에도 각종 부산물이 발생한다. 어떤 것은 건강에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와인의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레스베라트롤의 건강상 효능은 널리 알려졌고 최근에는 홉의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산(MHBA)이 체지방 감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좋은 성분은 술 한 잔에 극히 미량이 들어있기에 술을 마신다고 해서 이런 이점보다는 알코올과 다른 성분들로 인한 악영향이 더 크다는 사실.
발효 과정의 부산물 중에는 인체에 염증 작용을 일으키는 것들도 있다. 때문에 대체로 증류주보다는 발효주가 더 다이어트에 부적합하다. 우리의 친구 맥주는 그래서 아웃이다. 맥주는 곡물로 발효시켜서 탄수화물 함량이 다른 술에 비해 더 많다는 것도 다이어트의 큰 걸림돌이다.
증류주라고 해도 색깔이나 향이 진할수록 다이어트에 부적합하다. 이는 주로 착향료 때문이다. 착향료란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중 하나로 술의 맛과 향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는 독성도 있기에 염증 작용과 숙취에도 영향을 미친다.
와인을 증류시켜 만든 브랜디는 증류주이긴 하나 착향료 함량이 많아 안타깝게도 매우 부적절하다. 레드 와인도 마찬가지다. 와인을 꼭 마시고 싶다면 화이트 와인이 그나마 낫다.
그렇다면 이런 모든 조건을 가장 훌륭하게 만족시키는 주류는 무엇일까? 가장 투명하고 향이 없는 술, 바로 보드카다. 술과 다이어트에 대해 논의하는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가 ‘정히 다이어트 중에 술을 마셔야겠다면 잘 정제 또는 증류된 보드카를 조금 마셔라’라고 권한다.
사실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술 중 하나도 투명하고 향이 없지 않은가? 소주 말이다. 제대로 된 증류를 거친 소주라면 보드카 못지않게 좋은 술일 것 같다. 다만 시판되는 일반 소주는 증류주가 아니고 주정을 희석시키면서 여러 가지를 가미한다. 한국의 술 좋아하는 다이어터들을 위해 이에 관한 면밀한 평가가 시급하다. 일례로 소주에 많이 들어가는 감미료 수크랄로스가 인슐린 민감도를 자극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