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총선때 수도권 한 선거구의 합동 연설회 장면.
서울 중구(박성범-김동일-정호준)
“기왕 나섰으니 이겨야 하지 않겠느냐.”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 가문인 ‘정(鄭)패밀리’의 맥을 잇기 위해 출사표를 던진 아들 호준씨에게 정대철 의원(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이 한 말이다. 영어(囹圄)의 몸인 그는 당초 아들의 출마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정가(鄭家)의 맏며느리이자 부인인 김덕신씨의 생각은 달랐다. 참모들의 반대에도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라”며 호준씨를 격려했다. 삼성전자 과장으로 평범한 삶을 살던 호준씨는 결국 중구에서 7선과 5선을 한 할아버지(정일형)와 아버지(정대철)의 뒤를 이어야 하는 가문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호준씨의 출마선언은 박성범 전 의원(한나라당)과 김동일 전 중구청장(민주당) 등 2파전으로 전개되던 중구 선거판세를 출렁거리게 만들었다. 박 전 의원측은 ‘차떼기’ 등으로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지난 4년간 바닥을 기면서 닦아놓은 조직표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방송인 출신으로 박 전 의원의 부인인 신은경씨는 전력의 반을 맡는 맹활약을 하고 있다. 3선의 구청장 출신인 김동일 전 구청장이 무시 못할 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중구 선거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 김 전 구청장을 키우다시피 한 정의원측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김 전 구청장은 이에 개의치 않고 호남 표심 묶기에 분주하다.
서울 동대문을(홍준표-허인회)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한나라당 홍준표 후보가 ‘동대문을’을 접수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한 달. 표차는 3000여 표였다. 2000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김영구 후보에게 11표차로 패한 허인회 위원장(당시 민주당)으로서는 2001년 ‘10·25’ 재선거에서 ‘홍준표’에게 패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됐다. 그 후 와신상담 3년. 동대문을을 품에 넣기 위해 허위원장은 우리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허위원장측은 “이번에도 실패하면 더 이상 기회를 갖기 힘들지 모른다”는 조바심을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강한 자신감을 감추지 않는다. ‘차떼기’로 한나라당 지지표심이 반 토막 난 상태에서 홍의원의 현 정권을 향한 폭로성 발언이 불발탄되면서 동대문에서 ‘한나라당’이 또 한 번 상처를 입은 게 치명타라는 것. 그러나 홍의원의 주장은 다르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함께 스크럼을 짜고 내놓은 동대문뉴타운 개발 및 균형개발촉진지구 지정 등과 같은 지역개발사업이 지역민의 최대 이슈로 등장, 당과 관계없이 ‘해결사 홍준표’에 대한 기대감이 대단하다는 것. 유덕열 전 구청장이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3자 필승구조가 정착된 상황도 홍의원으로서는 불감청 고소원. 유 전 구청장측은 선명성을 부각하기 위해 허위원장을 타깃으로 설정, 공세를 펼치고 있어 홍의원을 든든하게(?) 하고 있다.
서울 구로을(이승철-이태복-김한길)
한나라당 이승철 의원에 맞서 민주당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우리당 김한길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도전장을 던졌다. 김대중 정권에서 장관직을 지낸 전직의 두 일합(一合)이 지역 표심을 자극한다. 2001년 ‘10ㆍ25’재선거 이후 이의원과 김 전 장관 간의 리턴매치도 쏠쏠한 재밋거리. 여론조사(미디어리서치 2월24일)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이 우위를 지키는 가운데 이의원과 이 전 장관이 추격전을 벌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 재선거 때도 김 전 장관이 줄곧 앞서다가 ‘홍삼(弘三, 김홍일ㆍ홍업ㆍ 홍걸)비리’가 이슈화되면서 패배한 만큼 안심하기에는 이른 상태. 이의원측은 당 지지도가 떨어져도 3파전이면 승산이 있다는 3자필승론을 주장한다. 이 전 장관과 민주노동당 정종권 후보 등도 과거 노동운동의 경력을 바탕으로 전통적으로 서민지역인 이곳의 민심을 공략하고 있다.
서울 도봉을(설훈-유인태)
민주당 설훈 의원과 민주화 동지인 우리당 유인태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격돌하는 도봉을은 두 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전ㆍ현직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 3월6일 현재 설의원, 유 전 수석과 자민련의 장일씨가 각각 출사표를 던진 상태. 한나라당에서는 백영기 지구당위원장 등이 당내 경선을 거쳐 맞상대로 나설 예정이다.
서울의 강북지역 가운데 동북지역은 우리당이 강세를 보이는 곳. 의정부에서부터 노원 도봉 강북 성북구로 이어지는 동북벨트는 우리당이 ‘우리당 바람’의 진원지로 특별히 공을 들이는 지역이다. 유 전 수석의 한 측근은 “유 전 수석이 도봉을에 나섬으로써 의정부의 문희상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시작으로 하는 동북벨트 축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는 설의원 진영도 바쁘다. 설의원은 “솔직히 민주당의 지지도 자체가 빠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하지만 당이 제 갈 길을 잡으면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 힘을 모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유 전 수석을 선두로 설의원과 한나라당 후보가 추격을 벌이는 1강 2중 양상.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올지 주목된다.
경력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두 후보가 맞선 것이 흥미를 더욱 돋운다. 한나라당은 우리당으로 말을 갈아탄 안영근 의원을 응징하겠다며 ‘윤상현’ 카드를 내밀었다. 윤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위(한양대 국제대학원교수)로 잘 알려져 있다.
두 후보는 서로 자신의 우위를 주장하고 있다. 윤위원장측은 “상대 후보 진영에서 여론조사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윤위원장을 ‘전두환의 사위 윤상현’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정면 돌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측근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인천에 온 것부터가 전 전 대통령의 후광을 얻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여론조사에서 줄곧 3~10%포인트 차로 안의원을 앞서 왔다”고 주장했다.
반면 안의원측은 “한나라당 탈당 직후에는 어려웠던 게 사실이지만 우리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안의원의 지지도 상승했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에서는 박규홍 인천시지부 사무처장이 후보로 확정됐는데 한나라당 후보를 제외한 두 후보가 인하대 출신인 것도 눈길을 끈다.
경기 의정부갑(홍문종-문희상)
한나라당 홍문종 의원과 우리당 문희상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세 번째 대결을 바라보는 의정부 표심은 어느 곳보다 뜨겁다. 두 인사의 전적은 1승1패. 이번이 3차전이다. 민주당 홍남용 전 의정부시장, 민주노동당 목영대 지구당위원장 등이 그 뒤를 추격하고 있다.
의정부 총선 이슈는 ‘분도(分道)론’. 경기 남도와 북도를 나누자는 주장이다. 지역민들은 분도작업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을 필요로 한다. 참여정부 실세인 문 전 실장에게 지역민들의 기대가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라는 게 우리당의 주장이다. 문 전 실장측도 분도 해결사역을 자임하며 이 분위기에 편승한다. 그러나 홍의원측은 ‘실세론’의 허구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반론을 편다. “사패산 터널 공사가 불교와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중단됐을 때 문 전 실장이 과연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의원측은 “당시 문 전 실장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고 역할 부재를 질타한다. 분도 문제는 힘의 논리가 아닌 정책 대안 및 접근 능력으로 풀어나갈 현안이라는 게 홍의원측의 설명이다.
경기 수원 영통구(한현규-김진표)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총선 올인 전략에 따라 관료로서의 꿈을 접고 진로를 수정한 대표적인 인물. 우리당 지도부는 그런 그에게 “수원 팔달구로 가서 남경필 의원을 저격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러나 김 전 부총리는 영통으로 진로를 바꿨다. 한국경제 책임자 김 전 부총리의 상대는 수원경제 전도사인 한현규 경기도 정무부지사(한나라당). 국민의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에서 일하다 손학규 경기지사의 눈에 띄어 경기도와 인연을 맺은 별난 이력의 주인공이다. 수원 영통의 총선코드는 ‘경제전쟁’. 한나라당이 먼저 대대적인 선제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실물 및 서민 경제 파탄 책임을 김 전 부총리에게 묻겠다는 입장. “수원이 경기도의 핵심 지역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수원성장론과 함께 경제파탄책임론은 한 전 부지사가 펼치는 총선전략의 양 날개다. 김 전 부총리측은 “경제관료의 경험을 살려 생산적인 정치를 위한 밀알이 되겠다”고 방어벽을 쳤다. 민주당에서는 수원시의회 의장을 지낸 김종렬씨가 공천을 받아 표밭을 다지고 있다.
고양 일산갑(홍사덕-한명숙)
한나라당이 서울 강남권과 성남 분당에 이어 경기 북부지역에서도 전략적 거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선택한 지역이 고양 일산. 당 공천심사위는 이 지역 대표 전사로 홍사덕 원내총무를 택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강남벨트에 안주하지 말고 일산벨트(일산갑·을, 덕양갑·을 등 4개 지역구)를 중심으로 수도권 북부지역에 한나라당 바람을 일으키라는 기획에 따른 공천인 셈.
이에 맞서는 우리당 한명숙 전 환경부 장관의 출사표도 당당하다. 김한길 총선기획단장을 찾은 그는 눈치를 보는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내가 홍총무를 꺾겠다”고 나섰다. 불감청 고소원이던 김단장은 즉석에서 ‘OK’ 사인을 냈고 홍총무와 한 전 장관이 등장한 일산은 곧바로 수도권 북부지역의 정치1번지로 변했다. 민주당 차태석 당 민원실장도 빅매치에 다리를 걸쳤다.
홍총무측은 이번 싸움을 ‘프로와 아마추어의 싸움’으로 규정한다. 여론조사 결과 지명도나 당선 가능성 등에서 홍총무가 모두 앞선다는 것. 홍총무측은 당대표 경선에 나설 예정이다. 이 경우 총선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여유가 있을 것이라며 낙승을 장담한다. 한 전 장관측도 이런 홍총무의 정치일정이 부담스럽다는 투다. 그러나 한 전 장관측은 ‘2%론’으로 홍총무에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총무직을 수행하면서 보인 몇 차례의 실수와 정치적 오판 등에서 ‘2%가 부족한 정치인’임이 입증됐다는 것.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홍총무측은 여성표 공략에 자신감을 가진다. 오랫동안 여성운동을 해온 한 전 장관도 여성을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일산 여심(女心)이 주목되는 이유다. 이웃 지역구에 출마한 유시민 의원 등 개혁세력들의 측면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점도 한 전 장관의 보이지 않는 힘이다.
“과연 3표의 한은 풀릴까.” 하남 선거는 우리당 문학진 전 대통령정무비서관의 재기 여부가 관전 포인트. 문 전 비서관은 16대 총선에서 광주의 한나라당 박혁규 의원에게 불과 3표차로 고배를 마셨고, 2002년 ‘8·8’ 재선거 때 지역구를 하남으로 옮겨 재기에 나섰으나 또다시 낙선, 끝내 눈물을 흘린 비운의 도전자. 그만큼 의지가 강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서관들 가운데 출마할 사람’을 찾을 때 언제나 먼저 이름이 오르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문 전 비서관의 이런 전의를 읽은 한나라당도 현역인 김황식 의원을 서둘러 발탁, 사실상 ‘에이스’끼리의 리턴매치에 필요한 멍석을 깔았다. 민주당 강병덕 ㈜한중교류개발 대표이사(39), 민주노동당 김진성 지구당위원장(38) 등도 양자구도의 틈을 파고들고 있다.
경기 여주 이천(이규택-이희규)
970명 때문에 ‘사단’이 벌어졌다. 정치개혁특위에서 지역구 인구 하한선을 10만5000명으로 정하자 인구 10만4030명인 여주가 통폐합 지역구가 되고 말았다. 인근 이천시와 합쳐져 한 선거구가 됐는데 그 결과 수도권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두 지역 현역의원 간의 맞대결이 성사됐다.
여주 출신 이규택 한나라당 의원과 이천 출신 이희규 민주당 의원이 한 자리를 놓고 다투는 당사자들. 인구 하한선에 미달한 여주와 달리 이천의 인구는 19만여명. 지역간 대결로 치러질 경우 인구가 많은 이천 출신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 않다. 여주에서 이의원의 단독출마가 예상되는 반면, 이천에서는 이의원 외에도 열린우리당의 최홍건 전 산업자원부 차관을 비롯한 다른 후보 3~4명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여주 표를 기반으로 이천 표를 잠식하려는 이규택 의원에 맞서 이희규 의원 등 이천 출신 후보들이 얼마만큼 이천 표 단일화에 성공하느냐가 관전 포인트.
이규택 의원측은 “수도권 다른 지역과 달리 우리당 바람이 그리 세지 않고 한나라당 고정 지지표가 강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희규 의원측은 “지난 4년간 이의원은 서울에 따로 숙소도 없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서울까지 왕복하며 의정활동을 해왔다. 이처럼 한 번도 이천을 떠난 적 없이 지역을 위해 일해온 것을 유권자들이 안다면 지지를 모아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