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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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구원투수 ‘기회와 위기’

한나라 임시 전당대회 대표 취임 유력 … 총선 결과에 따라 정치생명 갈림길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3-04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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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구원투수 ‘기회와 위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가 최대 지분(46%)을 갖고 있는 ‘EG’의 주가가 증권업계의 관심사항으로 떠오른 시점은 2월 하순. 2월19일부터 7일간, 다섯 번에 걸쳐 EG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증권전문가들은 폭등한 EG 주가를 ‘박근혜 주가’로 풀이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차기 대표후보로 떠오르자 기대심리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것. 최근 EG 주가는 박의원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 움직였다. 2월25일 박의원이 한나라당으로부터 ‘스카우트비’로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EG 주가는 10% 이상 급락했다. 그러나 스카우트비가 사실 무근임이 밝혀지자 주가는 26일과 27일 이틀 연속 가격제한폭까지 뛰었다. EG 주가와 박의원이 한 묶음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기대심리’는 한나라 당사 주변에도 큰 흐름으로 잡힌다. 영남권의 공천장을 받은 K씨는 지난해 말 이회창 전 총재, 최병렬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가로 세로 2~3m가 넘는 대형그림을 각각 준비했다. 그러나 K씨는 2월 중순, 이 그림들을 폐기했다. 대신 그는 박의원에게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박의원 비서진들에게 간접적으로 홍보용 사진 촬영을 요청했지만 “아직 (대표도 아니고)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K씨는 “박의원이라면 유권자들에게 신뢰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렬식 리더십이 한나라당을 쑥대밭으로 만든 이후 당 내외의 시선이 박의원에게 쏠리고 있다. 소장파 14명이 대표후보 명단을 발표했지만 당 주변에서는 벼랑끝 위기에 몰린 당을 견인해줄 ‘한나라당의 잔다르크’는 박의원이란 믿음이 우세하다. 수도권 중진 L의원은 “146석의 원내 절대 다수를 갖고도 47석의 열린우리당에 질질 끌려다니는 것은 당 중심이 없기 때문”이라며 박의원의 지도력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강재섭 김덕룡 의원 등 당 중진들도 “대안도, 시간도 없다”며 박의원이 구원투수임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3월18일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박근혜 체제’로의 개편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장외 차기 대선후보감’들도 거론되지만, 이들은 현직을 버리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움직임을 유보하고 있다.

    오르락내리락 ‘박근혜 기대심리’

    ‘4ㆍ15’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가 된다는 것은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잡는 일이다. 총선에서 이길 경우 당권 장악이 가능하고 여세를 몰아 친정체제를 구축하면 대통령 후보로 갈 수 있는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다. 반대로 패배 때 입어야 할 상흔은 상상을 초월한다. 30년 보수정당의 맥을 끊은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공천은 이미 끝난 상황이다. 이런 정황 때문에 박의원 측근들은 “총선 승리에 대한 보장이 없다”고 말한다. 다른 중진들이 대표 출마를 주저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 조타수’로 통하는 측근 R씨는 “고민도 많고, 위험성도 큰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결국 정면돌파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측근들은 박의원이 더 적극적이라며 “가능성이 없다고 비겁하게 뒤에 숨어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자세로 주저하는 측근들을 격려한다는 것이다.

    박의원측은 이미 당의 환골탈태를 위한 ‘프로그램’의 일단을 선보였다. 박의원은 2월 말 “당을 적당히 바꿔서는 국민에게 다가갈 수 없다”며 “신당을 창당하는 수준으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버려야 새로움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게 한나라당에 대한 처방전. 박의원은 “최병렬 체제도 이 문제를 인식했지만 실천력이 문제였다”며 칼자루를 쥘 경우 과감한 자기 변신을 예고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해 보인다. 무엇보다 ‘박정희’의 벽이 너무 높다. 오늘날의 박의원을 만든 ‘박정희 향수’는 이제 딸의 발목을 잡는 그늘로 작용한다. 칼럼니스트 전여옥씨는 2월 말, “박정희는 죽었지만 딸을 통해 일종의 유훈정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원도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일 뿐 한 게 있느냐”며 가세했다. 2월26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진상규명 특별법’ 심의 과정에서 박정희를 겨냥한 듯한 조항이 논란을 빚었다. 박의원은 즉각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을 놓고 당 지도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지만, 나서는 동료의원은 많지 않았다.

    박의원은 지난해 10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정치인으로 보지 않고 대통령의 딸로 보고 있다. 또 그 후광으로 살아간다고 믿고 있다. 이는 편견이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의식한 정치적 행보를 버린 지 오래됐다는 설명이다.

    박근혜 구원투수 ‘기회와 위기’

    박의원은 2002년 5월 한나라당을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박의원은 모친인 육영수 여사가 숨진 뒤 20대 후반을 ‘국모’로 살았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국모로 1년간 활동하는 게 10년간 총리를 한 것보다 더 많은 경험과 경륜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박의원은 지난해 10월 기자와 만나 “그때 국가경영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했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권력의 핵심에서 벌어지는 파워게임과 권력무상도 이미 그 당시 절실하게 체험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무엇보다 정치권 주변에서 그의 정치력과 지도력에 대한 의혹과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동료의원들의 평가는 다소 냉랭하다. TK 출신인 L의원은 “정치지도자가 갖춰야 할 포용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한다. 재선의 P의원 생각도 비슷하다. 이번 공천에서 탈락한 그는 “박의원의 정계진출 뒤부터 돕고 싶었는데 ‘밥 한번 먹자’는 소리를 하지 않더라”며 박의원의 용병술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탈당과 입당 과정에서 보여준 어설픈 정치력도 문제. 결국 이적료 의혹까지 덮어썼다.

    이 때문에 박의원의 역할을 ‘총선용’으로 제한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동대표제를 도입해 서울과 수도권에서 검증되지 않은 ‘박근혜 브랜드’를 보강하자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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