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공조직 중심으로 치르겠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벌써부터 2002년 대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31 전당대회 이후 확고부동한 당내 기반을 다진 이총재가 이같은 원칙을 천명한 것은 우선 당의 공식 체제부터 ‘대선 기간조직화’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총재의 이런 결심은 ‘대권 1단계 플랜’에 따른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이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체화하고 있다. 우선 기존의 측근들을 멀리하고 신진 인사를 곁에 두는 양상이 나타났다. 황우려 고흥길 의원 등 이총재와 97 대선 때부터 생사를 같이한 측근들은 최근 당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고의원은 “여러 말이 나올 수 있어 당분간 의정 활동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신 이한구 의원과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 등 40, 50대 신진 인사들이 그 공백을 메우는 모습이다.
당의 정책 분야가 대폭 강화된 것도 이런 흐름의 선상에 있다. 이총재는 6월 초 정책위의장 1명에 정책실장 1명으로 구성됐던 정책조직을 정책위의장 1명(목요상 의원)-정책위부의장 2명(김기춘 김만제 의원)-정책조정위원장 3명(정형근 이한구 의원, 이경재 전 의원)으로 바꿨다. 과거 여당 시절 한나라당의 조직체제로 돌아간 것. 당내에서는 이를 두고 “이총재가 집권 준비에 상당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한 징표”라고 말한다.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인 유승민 소장이 각종 정책 현안에 대해 활발한 조언을 하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강화된 당 기획위원회(위원장 맹형규 의원)는 대권 플랜의 ‘야전 지휘소’로 볼 수 있다. 물론 이총재 측근들은 “기획위원회를 곧바로 대선 캠프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정세 분석이나 당내 업무 조정 등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하자는 것”(양정규 부총재)이라고 부인하지만, 기획위원회 구성원을 살펴보면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다. 우선 △세 차례 대선 경험이 있는 최병렬 의원의 참여 △정책팀을 책임지고 있는 정형근 이한구 의원과 이경재 전 의원의 합류 △정세 분석 등에 중요 역할을 해온 양휘부 금종래 특보 등의 참여 △김기춘 김홍신 의원 등 언론대책과 홍보 전문가들의 포진 등 완전히 ‘전시 체제’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이총재가 광범위한 물밑 조직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대권 플랜의 실천으로 볼 수 있다. 측근들은 이를 ‘아웃소싱’으로 설명한다. 유승민 소장은 “당내 인력에 한계가 있어 정책 개발과 판단의 대부분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주로 40대 소장학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27일 이총재는 이영선(연세대) 김병주(서강대) 박원암(홍익대) 교수 등과 3시간 가량 경제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물밑 조직화 작업이 가시화한 경우다. 한 관계자는 “앞으로도 아웃소싱을 계속 넓혀갈 것이다. 영향력 있는 전문가들을 조직화해 지지자로 끌어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캠프 구성원 전체가 하나의 씨앗이 돼 이같은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조직화 작업은 경제 분야뿐 아니라 정치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진행 중이다.
이처럼 공조직 중심의 체제 정비가 이루어짐에 따라 ‘부국팀’의 존재 여부가 또다시 주목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1998년 8월 총재 경선, 2000년 5월 총재 경선 등 중요 고비마다 ‘이회창 체제 정립’에 커다란 기여를 한 부국팀은 대표적인 ‘이회창 사조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공식적인 명칭은 ‘이회창 후원회’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부국빌딩 사무실에 대해 여러 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무실 자체를 없앨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부국 사무실에서 정무 기능 등 어떤 역할을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의미에서 ‘부국팀’은 이미 없어졌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를 달리 보면 ‘부국팀’이 한나라당 공조직으로 흡수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비주류 인사들은 “이총재가 전당대회 후 당 자체를 자신의 사조직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벌써부터 2002년 대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5·31 전당대회 이후 확고부동한 당내 기반을 다진 이총재가 이같은 원칙을 천명한 것은 우선 당의 공식 체제부터 ‘대선 기간조직화’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총재의 이런 결심은 ‘대권 1단계 플랜’에 따른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이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체화하고 있다. 우선 기존의 측근들을 멀리하고 신진 인사를 곁에 두는 양상이 나타났다. 황우려 고흥길 의원 등 이총재와 97 대선 때부터 생사를 같이한 측근들은 최근 당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고의원은 “여러 말이 나올 수 있어 당분간 의정 활동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신 이한구 의원과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 등 40, 50대 신진 인사들이 그 공백을 메우는 모습이다.
당의 정책 분야가 대폭 강화된 것도 이런 흐름의 선상에 있다. 이총재는 6월 초 정책위의장 1명에 정책실장 1명으로 구성됐던 정책조직을 정책위의장 1명(목요상 의원)-정책위부의장 2명(김기춘 김만제 의원)-정책조정위원장 3명(정형근 이한구 의원, 이경재 전 의원)으로 바꿨다. 과거 여당 시절 한나라당의 조직체제로 돌아간 것. 당내에서는 이를 두고 “이총재가 집권 준비에 상당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한 징표”라고 말한다.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인 유승민 소장이 각종 정책 현안에 대해 활발한 조언을 하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강화된 당 기획위원회(위원장 맹형규 의원)는 대권 플랜의 ‘야전 지휘소’로 볼 수 있다. 물론 이총재 측근들은 “기획위원회를 곧바로 대선 캠프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정세 분석이나 당내 업무 조정 등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하자는 것”(양정규 부총재)이라고 부인하지만, 기획위원회 구성원을 살펴보면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다. 우선 △세 차례 대선 경험이 있는 최병렬 의원의 참여 △정책팀을 책임지고 있는 정형근 이한구 의원과 이경재 전 의원의 합류 △정세 분석 등에 중요 역할을 해온 양휘부 금종래 특보 등의 참여 △김기춘 김홍신 의원 등 언론대책과 홍보 전문가들의 포진 등 완전히 ‘전시 체제’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이총재가 광범위한 물밑 조직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대권 플랜의 실천으로 볼 수 있다. 측근들은 이를 ‘아웃소싱’으로 설명한다. 유승민 소장은 “당내 인력에 한계가 있어 정책 개발과 판단의 대부분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주로 40대 소장학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27일 이총재는 이영선(연세대) 김병주(서강대) 박원암(홍익대) 교수 등과 3시간 가량 경제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물밑 조직화 작업이 가시화한 경우다. 한 관계자는 “앞으로도 아웃소싱을 계속 넓혀갈 것이다. 영향력 있는 전문가들을 조직화해 지지자로 끌어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캠프 구성원 전체가 하나의 씨앗이 돼 이같은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조직화 작업은 경제 분야뿐 아니라 정치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진행 중이다.
이처럼 공조직 중심의 체제 정비가 이루어짐에 따라 ‘부국팀’의 존재 여부가 또다시 주목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1998년 8월 총재 경선, 2000년 5월 총재 경선 등 중요 고비마다 ‘이회창 체제 정립’에 커다란 기여를 한 부국팀은 대표적인 ‘이회창 사조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공식적인 명칭은 ‘이회창 후원회’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부국빌딩 사무실에 대해 여러 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무실 자체를 없앨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부국 사무실에서 정무 기능 등 어떤 역할을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의미에서 ‘부국팀’은 이미 없어졌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를 달리 보면 ‘부국팀’이 한나라당 공조직으로 흡수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비주류 인사들은 “이총재가 전당대회 후 당 자체를 자신의 사조직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