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어느 날, 20대 중반의 K씨는 국내의 유수한 외국인회사로부터 입사 합격 통보를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회사에서 지정한 병원의 신체검사만 통과하면 어엿한 사회인으로 새출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K씨는 평소 건강관리를 잘해온 탓에 신체검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회사로부터 ‘입사가 곤란하다’는 연락이 왔다. 간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K씨의 간기능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바로 유전자다. K씨의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간암 환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유전자가 발견된 것이다. 당장은 멀쩡하더라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이 유전자가 활동을 벌여 간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얼마 후 유전자 진단서를 요구하지 않는 다른 직장에 취업한 K씨. 이번에는 생명보험회사 직원과 한바탕 입씨름을 벌여야 했다. K씨가 간암 발병 유전자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 비해 2배가 넘는 보험료를 납입해야 한다고 판정됐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발병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채용하는 일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또 생명보험회사가 고객의 유전자 상태에 따라 보험료를 다르게 매기는 일은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원이나 보험가입자의 입장에서 과연 이런 ‘유전자 차별’은 정당한 것일까.
지난 6월18일 미국을 비롯한 선진 5개국은 1990년부터 진행해온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결과물 초안을 발표했다. 각종 질병 유전자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됐기에 인류에게 커다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암을 포함한 난치병의 조기 진단은 물론 질병 유전자를 없애 아예 병의 ‘싹’을 제거하는 유전자치료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
하지만 게놈프로젝트의 성과물이 인간 사회에 적지 않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예측이 만만치 않다. 유전정보는 사람의 건강상태에 대해 100% 확실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단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몇 %’라고 말할 뿐이다.
예를 들어 특정 돌연변이 유전자(MSH2)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평생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80%라고 알려졌다. 여성의 경우 자궁내막암과 난소암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한다. 또 다른 돌연변이 유전자(BRCAI)의 경우 이를 가진 여성은 평생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5%라고 보고됐다.
그렇다면 나머지 15~20%의 확률은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사람이 병에 걸리는 데는 유전자뿐 아니라 환경적 요인도 매우 크다. 같은 발암 유전자를 가졌다 해도 환경에 따라 발병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K씨가 간암 유발 유전자를 가졌다고 해서 기업체나 보험회사로부터 차별대우를 받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김상득 연구원(철학박사·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은 “K씨의 경우 간암이 생기든 그렇지 않든 차별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K씨가 병에 걸리지 않고 단지 간암 유발 유전자의 ‘보균자’로만 살아갈 경우 직장생활이나 보험에서 전혀 결격 사유가 없기에 유전자에 근거한 차별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
K씨가 미래에 간암이 발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시점에서 잠재적 질병 유발 유전자 보균자를 실제로 그 질병에 걸린 자와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어떤 사람이 범죄 성향을 가졌다고 해서 곧바로 범인 취급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연구원은 “하지만 기업체나 보험회사 입장에서 보면 특정 질병 유전물질 보균자를 차별 대우하고 싶을 것이며, 또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말한다. 사실 유전자 차별의 조짐은 수년 전부터 이미 미국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 2월8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유전병의 유무와 암에 걸릴 가능성을 검사한 결과를 연방직원(280여만명)의 채용과 승진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여기에는 ① 연방 직원의 채용과 수당 급여의 조건으로 유전자검사를 요구해서는 안 되며 ② 보호된 유전정보를 이용해 연방직원을 분별하고 그들의 승진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되며 ③ 치료와 의학연구에 사용되는 유전정보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등의 3항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유전정보의 보호가 민간 기업에도 적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1996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유전병이 진행되고 있는 사람 중 15%가 채용시험에서 유전병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또 13%는 자신과 가족 중 누군가가 유전병을 이유로 취직할 수 없거나 직위에서 해고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를 적절하게 통제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일례로 미국의 장애인 보호법은 신체장애인들을 고용차별로부터 보호하고 있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장애가 될 위험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산업독성물질과 같은 작업장 내 위해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직원을 선별하기 위해 유전자검사를 행하고 있다. 문제는 회사가 작업장 환경을 개선하는 일보다 유전자검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즉 회사는 직원을 채용할 때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잘 버티는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을 선호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보험분야에서의 차별 역시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보험회사는 임신한 피보험자들에게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만일 선천적인 신체장애의 위험이 클 경우 아이의 보험 혜택을 철회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사실 미국은 의외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의료보험제도의 수준이 열악한 형편이다. 물론 극빈자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다. 문제는 중하층이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보험금이 월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계층이기 때문에 현재에도 의료보험에 가입할 엄두를 못 내는데, 그 수는 4000만명(인구의 14%)에 이른다고 한다. 만일 보험회사가 유전정보마저 보험료 책정에 사용한다면 이 소외된 사람들이 의료보험에 가입할 길은 훨씬 멀어질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로부터 혈액 한 방울을 채취해 각종 유전성 질환을 분석하는 장면이 나오는 SF영화 ‘가타카’. 모니터에는 ‘신경과민증에 걸릴 확률 60%, 조울증 42%, 비만 66%, 주의집중력 장애 89%…’ 그리고 ‘예상 수명 33세’라는 데이터가 나타난다. 아기의 유전자로부터 각종 질환은 물론 수명까지 예측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 모습이다. 물론 유전정보의 수준에 따라 우수한 계층과 열등한 계층이 구별될 것이고, 열등한 경우 유전자치료를 통해 끊임없이 신분상승을 꾀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리게 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사회상이다.
하지만 ‘가타카’의 시나리오가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 세계에서 펼쳐질지도 모른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은 우리에게 유전정보의 오용으로 인한 병폐를 막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시급하게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회사로부터 ‘입사가 곤란하다’는 연락이 왔다. 간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K씨의 간기능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바로 유전자다. K씨의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간암 환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유전자가 발견된 것이다. 당장은 멀쩡하더라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이 유전자가 활동을 벌여 간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얼마 후 유전자 진단서를 요구하지 않는 다른 직장에 취업한 K씨. 이번에는 생명보험회사 직원과 한바탕 입씨름을 벌여야 했다. K씨가 간암 발병 유전자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 비해 2배가 넘는 보험료를 납입해야 한다고 판정됐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발병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채용하는 일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또 생명보험회사가 고객의 유전자 상태에 따라 보험료를 다르게 매기는 일은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원이나 보험가입자의 입장에서 과연 이런 ‘유전자 차별’은 정당한 것일까.
지난 6월18일 미국을 비롯한 선진 5개국은 1990년부터 진행해온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결과물 초안을 발표했다. 각종 질병 유전자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됐기에 인류에게 커다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암을 포함한 난치병의 조기 진단은 물론 질병 유전자를 없애 아예 병의 ‘싹’을 제거하는 유전자치료도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
하지만 게놈프로젝트의 성과물이 인간 사회에 적지 않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예측이 만만치 않다. 유전정보는 사람의 건강상태에 대해 100% 확실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단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몇 %’라고 말할 뿐이다.
예를 들어 특정 돌연변이 유전자(MSH2)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평생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80%라고 알려졌다. 여성의 경우 자궁내막암과 난소암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한다. 또 다른 돌연변이 유전자(BRCAI)의 경우 이를 가진 여성은 평생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5%라고 보고됐다.
그렇다면 나머지 15~20%의 확률은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사람이 병에 걸리는 데는 유전자뿐 아니라 환경적 요인도 매우 크다. 같은 발암 유전자를 가졌다 해도 환경에 따라 발병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K씨가 간암 유발 유전자를 가졌다고 해서 기업체나 보험회사로부터 차별대우를 받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김상득 연구원(철학박사·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은 “K씨의 경우 간암이 생기든 그렇지 않든 차별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K씨가 병에 걸리지 않고 단지 간암 유발 유전자의 ‘보균자’로만 살아갈 경우 직장생활이나 보험에서 전혀 결격 사유가 없기에 유전자에 근거한 차별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
K씨가 미래에 간암이 발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시점에서 잠재적 질병 유발 유전자 보균자를 실제로 그 질병에 걸린 자와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어떤 사람이 범죄 성향을 가졌다고 해서 곧바로 범인 취급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연구원은 “하지만 기업체나 보험회사 입장에서 보면 특정 질병 유전물질 보균자를 차별 대우하고 싶을 것이며, 또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말한다. 사실 유전자 차별의 조짐은 수년 전부터 이미 미국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 2월8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유전병의 유무와 암에 걸릴 가능성을 검사한 결과를 연방직원(280여만명)의 채용과 승진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여기에는 ① 연방 직원의 채용과 수당 급여의 조건으로 유전자검사를 요구해서는 안 되며 ② 보호된 유전정보를 이용해 연방직원을 분별하고 그들의 승진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되며 ③ 치료와 의학연구에 사용되는 유전정보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등의 3항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유전정보의 보호가 민간 기업에도 적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1996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유전병이 진행되고 있는 사람 중 15%가 채용시험에서 유전병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또 13%는 자신과 가족 중 누군가가 유전병을 이유로 취직할 수 없거나 직위에서 해고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를 적절하게 통제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일례로 미국의 장애인 보호법은 신체장애인들을 고용차별로부터 보호하고 있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장애가 될 위험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산업독성물질과 같은 작업장 내 위해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직원을 선별하기 위해 유전자검사를 행하고 있다. 문제는 회사가 작업장 환경을 개선하는 일보다 유전자검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즉 회사는 직원을 채용할 때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잘 버티는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을 선호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보험분야에서의 차별 역시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보험회사는 임신한 피보험자들에게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만일 선천적인 신체장애의 위험이 클 경우 아이의 보험 혜택을 철회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사실 미국은 의외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의료보험제도의 수준이 열악한 형편이다. 물론 극빈자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다. 문제는 중하층이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보험금이 월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계층이기 때문에 현재에도 의료보험에 가입할 엄두를 못 내는데, 그 수는 4000만명(인구의 14%)에 이른다고 한다. 만일 보험회사가 유전정보마저 보험료 책정에 사용한다면 이 소외된 사람들이 의료보험에 가입할 길은 훨씬 멀어질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로부터 혈액 한 방울을 채취해 각종 유전성 질환을 분석하는 장면이 나오는 SF영화 ‘가타카’. 모니터에는 ‘신경과민증에 걸릴 확률 60%, 조울증 42%, 비만 66%, 주의집중력 장애 89%…’ 그리고 ‘예상 수명 33세’라는 데이터가 나타난다. 아기의 유전자로부터 각종 질환은 물론 수명까지 예측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 모습이다. 물론 유전정보의 수준에 따라 우수한 계층과 열등한 계층이 구별될 것이고, 열등한 경우 유전자치료를 통해 끊임없이 신분상승을 꾀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리게 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사회상이다.
하지만 ‘가타카’의 시나리오가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 세계에서 펼쳐질지도 모른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은 우리에게 유전정보의 오용으로 인한 병폐를 막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시급하게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