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대책문건사건’의 두 줄기는 문건전달과정과 문건작성과정이다. 이중 문건전달과정(문일현기자- 이종찬부총재-이도준기자-정형근의원)은 밝혀졌지만 문건작성과정은 문건폭로 2주일이 지났건만 아직 미궁에 빠져 있다. 문기자가 왜 이 문건을 작성했는지, 작성과정에서 제3, 4의 인물이 개입했는지 여부 등 핵심 쟁점을 놓고 온갖 억측만 난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기자가 11월8일 중국에서 귀국,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고 있어 이같은 의문점들이 어떻게 풀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기자는 자신이 문건작성자로 밝혀진 이후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을 이부총재에게 참고용으로 보낸 것인데, 파문이 커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부총재와 문기자간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문기자의 주장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황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검찰수사와 당사자들의 언급 등을 통해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살펴보면 문기자는 6월24일 언론대책문건을 이부총재에게 보낸 것 외에 3, 4건의 다른 문건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이 문건들은 언론대책문건에 앞서 보내진 것들로 이부총재가 국가정보원장으로 재직할 때의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이들 문건 중 ‘재외동포의 법적 지위’와 관련한 문건은 중국내의 사정을 소상하게 담고 있는 등 중국당국과 외교적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수를 받기 위해 중국에 체류중인 외국인 기자가 본국의 정보기관장에게 모종의 보고서를 보냈다는 것은 중국당국 입장에서 볼 때 스파이 행위로 몰아붙일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이로 미뤄 이부총재와 문기자간의 관계는 취재원과 기자라는 통상적인 관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문기자가 하필이면 ‘언론대책’부분을 문건으로 작성했는지도 의문스런 대목이다. 문기자가 밝힌 문건작성동기는 “6월20일경 이부총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이부총재가 당시의 정국을 걱정하는 얘기를 하기에 평소 생각을 정리해 보냈다”는 것이다. 당시 시점은 옷로비 의혹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등으로 여권이 궁지에 몰렸던 상황. 그리고 옷로비 사건 와중에 김대중대통령은 ‘마녀사냥’ 발언으로 언론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래서 이부총재의 정국을 걱정하는 발언 중 “언론이 너무 심하다”는 식의 얘기가 나왔고 문기자도 이에 공감하는 얘기가 나왔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6월20일의 이부총재와 문기자간의 전화통화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문기자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고, 이부총재는 “전화통화를 했는지 기억이 분명치 않다”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부총재측이 제기하고 있는 제3의 인물 개입 주장은 10월26일 저녁 모처에서 ‘문기자가 중앙일보 모 간부와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정보가 입수돼 저녁 8시쯤 문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간부의 이름을 대면서 ‘상의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문기자가 시인하더라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문기자는 이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양측의 대화내용을 증명할 녹취록도 없고 문기자는 이를 부인하는 판에 ‘제3의 인물’개입 여부는 밝혀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문기자의 검찰소환조사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열쇠를 풀 해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