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체제 2년, 이른바 20대 80 사회로의 진행은 우리나라 직장에서도 일어나고 있을까. ‘주간동아’는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서치 & 리서치(R&R)에 의뢰, 최근 한국의 직장에서 진행되는 계층화현상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30, 40대 화이트칼라 직장인 100명을 임의할당추출법으로 선 정, 표본으로 삼았고 조사는 전화면접으로 이뤄졌다. 조사대상 중 30명은 외국인회사, 20명은 금융기관, 50명은 제조업체 종 사자들이다.》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부터 하랄드 슈만의 공저 ‘세계화의 덫’에 이르기까지, 세계화의 가공할 위력과 폐해를 지적한 학자들의 견해는 한가지로 수렴됐다. 세계화의 종착역이 20대 80의 사회라는 것이다.
11월21일은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지 만 2년째 되는 날이다. 2년 동안 우리 사회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회 각 부문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휘몰아쳤고 효율성, 합리성, 능력이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화이트칼라들의 직장생활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이들은 직장에서 벌어지 고 있는 계층화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20대 80, 나는 어느 쪽인가
부의 편중, 빈익빈 부익부로 설명되는 20대 80의 사회가 한국의 직장사회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 직장인은 86%나 됐다.
재미있는 점은 자신이 20과 80의 범주 중 어디에 속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상위 20에 해당한다는 응답이 41%, 하위 80에 해당한다는 응답이 59%로 나타난 것. 이는 화이트칼라 계층이 아직도 미래를 낙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상위 20에 해당한다는 응답은 금융서비스업 종사자(55.0%)와 부장 이상 고위직(46.7%)에서 다소 높게 나타났다. 반면 제조업 종사자의 67.4%, 고졸자의 100%, 여성의 85.7%는 자신이 하위 80에 해당한다고 응답했다.
또 연봉제를 실시하는 직장 근무자의 67.4%가 하위 80의 범주에 속한다고 응답한 데 비해 연봉제를 실시하지 않는 직장 근무자 중 52.6%만이 같은 응답을 했다. 직장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연봉제 직장인일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결과라 하겠다.
● 상위 20에 속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인들은 어떤 방안을 모색하고 있을까.
상위 20의 계층에 속하기 위해 직장인들은 ‘개인의 능력향상’에 매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격증 취득, 유학, 학원수강 등과 같은 방법으로 ‘개인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직장인이 67%였다. 창업이나 전직을 고려하는 직장인은 20%였고, ‘노력하고 싶지 않다’(8%)거나,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므로 포기했다’(5%)는 직장인도 있었다. 특히 40대의 22.2%가 ‘포기했다’, 21.4%가 ‘노력하고 싶지 않다’고 응답해 자기개발 의지가 약하고 현실 안주 경향이 강함을 보여주었다.
역시 젊은층일수록 자기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개인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응답은 대리급 이하가 73.6%인 반면 과차장 이상은 59.4%~ 60%였다.
자신이 상위 20의 범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의 80.5%가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하위 80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이같은 노력을 하는 경우가 57.6%에 그친 것도 주목할 만했다. 대신 하위 80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는 직장인들의 23.7%가 전직을 고려, 평균치를 상회했다. 직장에서 자신의 위상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인생 계획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연봉제 실시 여부
조사대상 중에는 연봉제를 실시하는 회사가 43%, 실시하지 않는 회사가 57%였다.
외국계 기업의 70%가 연봉제를 실시, 국내 금융서비스업(30%)이나 제조업(32%)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연봉제가 정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봉제를 실시하는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들 중에는 자신에 대한 연봉평가가 공정하다고 보는 사람(60.5%)이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39.5%)보다 많았다.
그러나 연봉평가에 대해 문제점을 느끼는 직장인도 적지 않았다. 연봉평가가 공정하지 않다는 대답은 나이가 젊을수록(30~35세는 47.4%, 45~49세는 0%), 직급이 낮을수록(대리급 이하 50.0%, 부장 이상 11.1%), 학력이 높을수록(대졸 39.4%, 대학원졸 44.4%), 본인이 하위 80의 범주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일수록(20의 범주 14.3%, 80의 범주 51.7%) 많았다.
직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연봉평가에 긍정적인 반면, 자신이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연봉제에 부정적임을 알 수 있다.
● 억대 연봉자를 보는 느낌
매스컴에 등장하는 억대 연봉자들이나 선배를 제치고 승진하는 후배에 대해서는 조사대상 직장인의 76.5%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능력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견해가 55.5%, ‘나도 노력해서 저렇게 되겠다고 생각한다’가 21%에 이르렀다. 연공서열제에 익숙해 있던 샐러리맨들의 의식에 변화가 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 하겠다.
반면 ‘작은 차이로 지나치게 성과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승복하기 어렵다’는 대답이 18.0%, ‘자신이 초라하고 한심해 보인다’는 대답도 6.0%가 나왔다. 이를 학력과 회사별로 분석해보면 고졸자와 외국계 기업 근무자들일수록 부정적인 답변이 많았다. 능력평가에 의한 연봉제가 일반화된 외국계 기업에서 불만이 많이 제기된 점이 다소 특이하다.
‘아랫사람’과 ‘윗사람’중 누가 더 능력제에 대해 긍정적일까. 조사 결과 부장급 이상의 80.0%가 ‘능력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응답, 직위가 높을수록 능력제에 거부감이 적음을 보여준다. 또 본인이 상위 20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의 61.0%가 ‘능력있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대답한 반면 하위 80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50.8%만이 능력제를 인정했다.
● IMF 사태 전후의 급여수준 변화
IMF의 격랑을 헤치고 살아남은 직장인들의 급여에는 변화가 없을까. 조사결과 급여 수준이 IMF 사태 이전과 비슷하다는 답이 44%로 가장 많았다. IMF 사태 이전보다 오히려 증가한 직장인이 28.0%, IMF 이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응답자는 27.0%로 엇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를 평균하면 현재 화이트칼라의 급여수준은 IMF 사태 이전과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면서 많은 기업이 임금을 원상회복시켜준 결과로 풀이된다.
연봉제를 실시하는 직장인의 34.9%가 수입이 줄었다고 응답한 반면, 37.2%는 수입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연봉제를 실시하지 않는 직장인은 수입이 준 사람과 늘어난 사람이 똑같이 21.1%였다. 이같은 조사 결과를 볼 때 연봉제를 도입한 회사일수록 샐러리맨들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빨리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