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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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변혁 물꼬는 터졌다

  • 이주향 / 수원대 교수

    입력2004-02-04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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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와 변혁 물꼬는 터졌다
    어제의 패자가 오늘의 승자가 되고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곳, 그 정치판은 치열하다.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예측하기 힘든 삶을 살아가는 정치인들을 보면 숨이 턱 막힌다.

    그런데 왜 나는 생존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특별한 사람들이 장식하는 비상식적인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는가. 챙겨보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세상은 선하지 않아서 활력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선하지 않아 활력이 있고 악하지 않아 희망이 있는 걸 텐데, 요즘 어제의 거물들이 툭툭 넘어가는 것을 볼 때면 활력도, 희망도 아닌 씁쓸함을 느낀다. 도대체 이 씁쓸함은 어디서 찾아든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거물들은 한결같이 ‘희생양’임을 자처한다. 죄를 대속하는 그리스도의 의미는 아닐 테고, 다른 정치인보다 특별히 더 나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별거 아닌 일에도 연민을 보이는 사람들까지 그 통속적인 변명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저 냉정해지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한 시대가 가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지난 시대에 막강했던 지위와 돈이 초라해지고 남루해지고 마침내 외면당하고 있는 이 현실! 이 현실은 돈에도 품위가 있고 지위에도 도덕이 있다는 국민적 선언이다.



    거물들 연이은 구속 한 시대가 가고 오는 증거

    거물들이 하나하나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오고 있구나, 시대가 가고 시대가 온다는 점에서 이건 혁명이구나, 지위나 명예나 돈을 모으는 방법에 대한 전면적인 국민적 반성이자 변혁이구나!?

    그 물꼬를 튼 것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였다. 대선자금이 본격적인 수사대상이 된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최초의 일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수사는 있었다.

    문제가 불거져 나와 더 이상 덮을 수 없으면 마지못해 부분적으로! 선거자금의 문제는 집권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자유로울 수 없어 서로서로 눈치를 보면서 서로서로 덮었다.

    그리하여 언제나 사상 최대인 검은돈은 소문만 무성했고, 그것은 또 언제나 사상 최대인 검은돈을 낳았다. 특히 집권세력은 검찰권을 틀어쥐었고 검찰은 권력을 지키는 충견이 되었다. 그렇게 수구적인 검찰이 변해 개혁의 한 주체가 된 것이다.

    대선자금이 본격적으로 수사의 대상이 되니까 그와 함께 떠오르는 다른 짝이 바로 ‘깨끗한 정치, 돈 안 드는 선거’다. 선거가 돈 잡아먹는 하마고, 정치의 필요조건이 검은돈을 마련하는 기술이라면 부패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돈 잡아먹는 선거, 돈으로 하는 정치를 끝장내지 않으면 당선이 되어도 오래갈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선거철이고, 선거꾼들은 여전하다는데 흥청망청하는 분위기가 아닌 것은 선거풍토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그 점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을 평가하고 싶다. 경제는 어렵고, 사회 환경은 위태로우며, 외교는 아직도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검찰과 국가정보원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는 달콤한 유혹을 포기한 대통령, 언론도 움켜잡지 않은 대통령, 그럼으로써 제왕적이기를 그만둔 대한민국의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써준 원고대로 근엄한 말, 지당한 말만 하고, 뒤로는 국가정보원과 검찰을 조정하고 언론에 어두운 힘을 행사하는 그런 대통령보다는 간혹 말실수를 해도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리더십이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드는 민주적 리더십이므로.

    그 노대통령이 기억할 것이 있다. 시대의 조류를 읽은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했다. 그렇지만 그 개혁, 개방의 물결이 고르바초프도 삼켜버렸다. 지금 검찰도 국가정보원도 언론도 포기하고, 아무런 기득권 없이 민주적 대통령을 해보겠다는 노대통령이 자기 이해관계를 검토하기 시작하면 이 변혁의 물결이 그까지 삼켜버리지 않겠는가. 누가 변혁의 물꼬를 텄느냐와 관계없이 이미 시작된 이 변화와 변혁의 물꼬는 아무도 막지 못한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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