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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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탄압 속에서 큰다

  • < 조용중/ 언론인,고려대·석좌교수 >

    입력2005-01-20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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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은 탄압 속에서 큰다
    러시아의 유일한 민간 TV인 NTV의 소유권이 친정부 인사에게 넘어간 것은 NTV의 대주주인 블라디미르 구신스키(Vladimir Gusinsky)의 반정부 성향 때문이었다. 지난 4월 국영회사로 하여금 NTV를 인수하게 한 데는 구신스키의 재산 운영에 관계된 비리가 핑계였으나 그 바닥에는 구신스키가 옐친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정치색이 깔려 있었다. 누가 보아도 푸틴의 정치보복인 것이었다.

    구신스키가 구속되었을 때 그의 변호인들은 5쪽 분량의 구속사유서를 복사하지도 못하고 “겨우 한 시간 정도 펜으로 메모할 수만 있게 할 정도”로 엄격한 통제를 당했다.

    그렇게 언론을 친위세력으로 포진한 푸틴 대통령은 지난 달 서방기자를 포함한 500명이 넘는 기자들과 질문에 제한이 없는 기자회견을 즐겼다. 동시에 핵잠수함 커스크호가 침몰한 채 수장된 해역을 기자들이 취재하도록 허용했다. 그런 한편으로 친정부 방송과는 장시간의 특별회견을 갖고 크렘린궁의 사생활을 소상히 밝히기도 했다. 반정부 언론이 없어진 상황에서 마음놓고 언론을 위해 웃음의 서비스를 한 셈이다.

    먼 러시아에서 벌어진 일을 묵은 파일에서 찾은 것은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이보다 더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사례는 없다고 생각해서다.

    올해 초 김대중 대통령이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한 데서 시작한 일련의 언론 목조르기는 대표적인 신문사주인 동아의 김병관 전 명예회장, 조선의 방상훈 사장 등 2명을 구속하는 것으로 한 고비를 넘겼다(조희준 국민일보 전 회장의 구속에는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전대미문의 정치 공세를 벌이는 과정에서 정부 여당은 ‘조세정의 실현’이라는 판에 박힌 말을 되풀이했지만 권력 내부의 합의와 행동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판을 벌이겠는가 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구속 이전부터 세금포탈이라는 혐의 사실을 흘려 인민재판식 성토를 벌인 끝이라 앞으로의 수사를 통해서는 더욱 부도덕한 범법자로 만드는 작업이 치밀하게 계속될 것은 뻔하다. 특별한 사태가 없는 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법이 정한 실형을 받을 것임은 틀림없다. 개명한 문명국가가 대표적인 신문의 사주를 ‘도주와 증거인멸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구속 수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법적·도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무뢰한쯤으로 단죄하는 짓을 과연 생각해 낼 수 있겠는지. 참으로 권력의 무자비한 횡포에 전율을 금할 수 없다.

    권력의 횡포에 전율… 그래도 자유는 지켜 나갈 터

    언론사라 하더라도 탈세라는 범법혐의에 대한 죄값을 치르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언론개혁이라는 말로 시작한 사주 처벌이 처음부터 미리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적대적인 신문사를 탈세라는 죄로 단죄하기 위한 정치공세였기 때문에 그 정당성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데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통령이 언론개혁을 제안하지 않았다면 신문사의 세금포탈이나 비리는 덮어버릴 수 있었다는 역설이 성립할 수도 있다. 그러면 언론개혁은 신문사주를 처벌하는 것으로 끝장내고 말까. 설마 그렇게 될 리는 없을 테고 무엇인가 개혁이란 구호에 걸맞은 작업이 이어지겠지만 그건 이미 온전한 의미의 개혁이 아니다. 언론, 특히 신문은 권력과 대결하면서 탄압을 받으며 컸고 자유와 독립을 지켜왔다. 1970년대의 ‘동아 광고사태’는 그 귀중한 역사적 경험이다.

    60년대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설리번이라는 지방공무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소송에 걸렸을 때 ‘뉴욕타임스’를 옹호한 재판관은 “만일 기사의 한 부분이 허위라고 해서 신문을 처벌한다면 모든 신문은 공무원을 칭찬하는 데만 바쁘고 올바른 비판을 하지 않는 가공할 사태가 올 것이다”는 역사에 남는 판결을 내렸다. 신문의 비판을 틀어막기 위해 사주 구속이라는 비상수단을 강행한 김대중 정권은 임기 말을 얼마 남기지 않았다. 임기를 채운 뒤, 비판적인 신문도 다스리지 못하고 구속 처벌이라는 강수로 끝냈다는 평가에 어떻게 반론할 것인지를 지금부터 곰곰이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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