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초등학교 교사생활 10년째인 충남 천안의 황인영 교사(31)는 아이들의 일기를 검사할 때면 가끔 놀라곤 한다. 5학년 여자아이가 쓴 같은 반 남자아이에 대한 ‘고백’ 때문이다. “나는 정말 ××가 좋은데 그애는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 좋아한다고 얘기해도 쑥스러운지 모른 채 한다. 뭘 그렇게 빼는지.” 그렇지만 얼마 후 여자아이의 생일파티를 계기로 둘이 사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황교사는 한번 더 놀랐다. 수줍어하던 남학생이 여학생의 공개적인 ‘구애’에 결국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지난해 경기도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 이경숙씨(26). 겨우 낯을 익힌 뒤인 3월 말 아이들과 함께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콘도 강당에서 열린 저녁 장기자랑 시간. “춤이나 노래를 선보이고 싶은 사람은 모두 나오라”는 선생님의 주문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지만 남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반면 여자아이들은 한 반에 두세 팀씩 뛰어 나왔다. 이교사가 놀라는 눈치를 보이자 선배 교사는 “요즘 애들이 원래 그렇다”며 웃음을 지었다.
역시 남녀공학인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김모 교사(31)는 요즘 골치가 아프다. 담당하고 있는 문예반 활동에 남학생들의 참여율이 너무 저조하기 때문. 과제를 내주어도, 작문 발표를 시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 딴전이다. “여학생들은 성적이나 내신에 반영한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어요. 하지만 남자애들은 도통 관심들이 없어요.” 다소 계산적인 측면도 없진 않지만 차근차근 제 앞가림을 하는 꼼꼼한 여학생들에게 남학생들은 ‘게임이 되지 않는다’. 교육 일선 관계자들 사이에선 교실 안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의 위치가 바뀌는 것이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터프한, 그래서 잘 나가는 남학생’과 ‘조신한, 그래서 인기 좋은’ 여학생은 눈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학교 생활영역에서 여학생은 이미 남학생을 능가하였다. 초·중·고등학교를 막론하고 일선 교사들은 이러한 현상이 보편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한다.
먼저 성적 부분. 경기도 신도시 지역의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의 성적 분포를 살펴보자. 남녀 학생이 각각 5학급인 3학년의 경우 남자 문과반의 평균 내신성적은 여자 문과반보다 6.4점이 낮다. 이과의 경우 차이가 더욱 커 12.5점 가량 여학생이 앞선다.
지방에서도 이러한 격차는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대전 지역 김교사의 이야기. “전에는 남학생이 잘하는 과목이 따로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전 과목에 걸쳐 여학생이 앞서죠. 전교 20위 정도의 상위권 가운데도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70% 가량 됩니다.” 경시대회 등 ‘큰 경기’에서는 남학생이 나은 성적을 거두기도 하지만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여학생이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고 김교사는 말한다.
전국 대학 수능성적은 이미 95학년도부터 여학생 평균점수가 더 높아졌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94학년도 1차 수능의 경우 남 49.7점, 여 48.5점, 2차 수능은 남 44.6점, 여 44.3점으로 남학생 평균점수가 여학생보다 높았다. 그러나 95학년도부터 여 49.78점, 남 49.65점으로 역전했고 해가 갈수록 격차는 점점 벌어져 2000학년도 수능의 경우 여학생이 63.2점, 남학생이 61.7점을 기록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연세대가 2000학번 전체 학생 3809명의 성별 학점취득 상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 학교에 입학해 1학년 과정을 마친 여학생의 학점 평균은 3.08점으로 남학생의 학점 평균인 2.72점보다 0.36점이 높았다.
교우관계의 주도권도 여학생에게 넘어갔다. 서울 강남지역의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미림양(17). “쉬는 시간마다 여자애들이 남자애들 보러 가는 바람에 교실에 여자 애들이 남아 있지를 않아요. 친한 애들 우르르 몰고 가서 ‘쟤가 내가 찍은 애’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게 유행이거든요.” 팬클럽을 결성하듯 한 남학생을 좋아하는 여학생끼리 어울리는 경우도 많다고 이양은 말한다.
인기 있는 남녀학생의 타입 역시 변했다는 것이 황인영 교사의 이야기다. “과묵하고 어른스러운 남자애들은 왕따당하기 십상이죠. 키 크고 멋있는 남학생보다는 오히려 귀엽고 애교 넘치는 아이들이 여자애들에게 인기예요. 여학생의 경우는 반대죠. 발표 잘 하고 똑똑한 친구들이 단연 인기가 높거든요.” 외모에만 신경쓰고 약한 척하는 것을 여성스럽다고 생각하는 ‘공주’들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싸움 실력이 교내의 ‘권력’관계나 서열을 좌우하던 것도 모두 옛날이야기. ‘통’이나 ‘짱’이라고 불리는 남자아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 애들 좋아하는 여자애들은 없어요. 괜히 폼만 잡고 그러잖아요. 최민수보다 유지태가 좋은 거랑 마찬가지예요.” 방학을 맞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최수진양(18,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얘기다.
학교 안에서 의사결정 과정을 주도하는 것도 여학생의 몫이다. 여학생이 없으면 토론이나 학급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향까지 있다는 것. 그룹별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 탁월한 여학생의 열성이나 능력 덕분에 남학생이 공짜로 점수를 얻는 경우도 많아 여학생 의 불만의 소리가 높다. 집단과제의 시작에서 마무리까지 주요 과정은 여학생의 몫이다. 그러다 보니 학급 임원은 물론 전교 학생회장도 여학생이 맡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난해 제가 있던 중학교 학생회장 선거에는 여자 후보만 두 명 입후보했어요. 러닝메이트인 부회장 후보는 모두 남학생이었죠.” 이경숙 교사의 말이다. 한 학년에 여자 반장이 남자 반장보다 많은 경우는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교사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우선 사회적인 여권 신장과 보수적 남성관의 붕괴를 가장 먼저 꼽는다. ‘마초 근성’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학생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언어능력의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대전의 김교사는 “10대 때 글을 읽고 이해하는 감각이나 논리적인 발표력 등은 여성이 남성보다 앞선다. 최근의 교육과정 개편이 그러한 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뤄진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고 말했다. 학교 내에서의 활동이 토론이나 협력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이에 쉽게 적응하는 여학생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제6차 교육과정 개편 이후 고등학교 1학년 공통사회 교과서에는 ‘양성성’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극단적인 남성성이나 여성성 모두가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장점만을 흡수한 양성성이야말로 바람직한 역할모델이라는 개념이다. 교사들은 요즘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학생·여학생의 이미지 붕괴는 이러한 양성성의 강화라는 측면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남자애들이 여성스러워져 큰일이라며 호들갑 떨 일은 아니라고 본다. 요즘 아이들은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고정된 역할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장차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에서도 남녀는 함께 생활하지 않는가.” 기자가 만난 교사들의 한결같은 분석이었다. 이제 학교에서도 ‘수컷들의 시대’는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경기도의 한 남녀공학 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 이경숙씨(26). 겨우 낯을 익힌 뒤인 3월 말 아이들과 함께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콘도 강당에서 열린 저녁 장기자랑 시간. “춤이나 노래를 선보이고 싶은 사람은 모두 나오라”는 선생님의 주문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지만 남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반면 여자아이들은 한 반에 두세 팀씩 뛰어 나왔다. 이교사가 놀라는 눈치를 보이자 선배 교사는 “요즘 애들이 원래 그렇다”며 웃음을 지었다.
역시 남녀공학인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김모 교사(31)는 요즘 골치가 아프다. 담당하고 있는 문예반 활동에 남학생들의 참여율이 너무 저조하기 때문. 과제를 내주어도, 작문 발표를 시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 딴전이다. “여학생들은 성적이나 내신에 반영한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어요. 하지만 남자애들은 도통 관심들이 없어요.” 다소 계산적인 측면도 없진 않지만 차근차근 제 앞가림을 하는 꼼꼼한 여학생들에게 남학생들은 ‘게임이 되지 않는다’. 교육 일선 관계자들 사이에선 교실 안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의 위치가 바뀌는 것이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터프한, 그래서 잘 나가는 남학생’과 ‘조신한, 그래서 인기 좋은’ 여학생은 눈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학교 생활영역에서 여학생은 이미 남학생을 능가하였다. 초·중·고등학교를 막론하고 일선 교사들은 이러한 현상이 보편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한다.
먼저 성적 부분. 경기도 신도시 지역의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의 성적 분포를 살펴보자. 남녀 학생이 각각 5학급인 3학년의 경우 남자 문과반의 평균 내신성적은 여자 문과반보다 6.4점이 낮다. 이과의 경우 차이가 더욱 커 12.5점 가량 여학생이 앞선다.
지방에서도 이러한 격차는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대전 지역 김교사의 이야기. “전에는 남학생이 잘하는 과목이 따로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전 과목에 걸쳐 여학생이 앞서죠. 전교 20위 정도의 상위권 가운데도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70% 가량 됩니다.” 경시대회 등 ‘큰 경기’에서는 남학생이 나은 성적을 거두기도 하지만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여학생이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고 김교사는 말한다.
전국 대학 수능성적은 이미 95학년도부터 여학생 평균점수가 더 높아졌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94학년도 1차 수능의 경우 남 49.7점, 여 48.5점, 2차 수능은 남 44.6점, 여 44.3점으로 남학생 평균점수가 여학생보다 높았다. 그러나 95학년도부터 여 49.78점, 남 49.65점으로 역전했고 해가 갈수록 격차는 점점 벌어져 2000학년도 수능의 경우 여학생이 63.2점, 남학생이 61.7점을 기록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연세대가 2000학번 전체 학생 3809명의 성별 학점취득 상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 학교에 입학해 1학년 과정을 마친 여학생의 학점 평균은 3.08점으로 남학생의 학점 평균인 2.72점보다 0.36점이 높았다.
교우관계의 주도권도 여학생에게 넘어갔다. 서울 강남지역의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미림양(17). “쉬는 시간마다 여자애들이 남자애들 보러 가는 바람에 교실에 여자 애들이 남아 있지를 않아요. 친한 애들 우르르 몰고 가서 ‘쟤가 내가 찍은 애’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게 유행이거든요.” 팬클럽을 결성하듯 한 남학생을 좋아하는 여학생끼리 어울리는 경우도 많다고 이양은 말한다.
인기 있는 남녀학생의 타입 역시 변했다는 것이 황인영 교사의 이야기다. “과묵하고 어른스러운 남자애들은 왕따당하기 십상이죠. 키 크고 멋있는 남학생보다는 오히려 귀엽고 애교 넘치는 아이들이 여자애들에게 인기예요. 여학생의 경우는 반대죠. 발표 잘 하고 똑똑한 친구들이 단연 인기가 높거든요.” 외모에만 신경쓰고 약한 척하는 것을 여성스럽다고 생각하는 ‘공주’들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싸움 실력이 교내의 ‘권력’관계나 서열을 좌우하던 것도 모두 옛날이야기. ‘통’이나 ‘짱’이라고 불리는 남자아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 애들 좋아하는 여자애들은 없어요. 괜히 폼만 잡고 그러잖아요. 최민수보다 유지태가 좋은 거랑 마찬가지예요.” 방학을 맞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최수진양(18,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얘기다.
학교 안에서 의사결정 과정을 주도하는 것도 여학생의 몫이다. 여학생이 없으면 토론이나 학급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향까지 있다는 것. 그룹별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 탁월한 여학생의 열성이나 능력 덕분에 남학생이 공짜로 점수를 얻는 경우도 많아 여학생 의 불만의 소리가 높다. 집단과제의 시작에서 마무리까지 주요 과정은 여학생의 몫이다. 그러다 보니 학급 임원은 물론 전교 학생회장도 여학생이 맡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난해 제가 있던 중학교 학생회장 선거에는 여자 후보만 두 명 입후보했어요. 러닝메이트인 부회장 후보는 모두 남학생이었죠.” 이경숙 교사의 말이다. 한 학년에 여자 반장이 남자 반장보다 많은 경우는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교사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우선 사회적인 여권 신장과 보수적 남성관의 붕괴를 가장 먼저 꼽는다. ‘마초 근성’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학생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언어능력의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대전의 김교사는 “10대 때 글을 읽고 이해하는 감각이나 논리적인 발표력 등은 여성이 남성보다 앞선다. 최근의 교육과정 개편이 그러한 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뤄진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고 말했다. 학교 내에서의 활동이 토론이나 협력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이에 쉽게 적응하는 여학생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제6차 교육과정 개편 이후 고등학교 1학년 공통사회 교과서에는 ‘양성성’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극단적인 남성성이나 여성성 모두가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장점만을 흡수한 양성성이야말로 바람직한 역할모델이라는 개념이다. 교사들은 요즘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학생·여학생의 이미지 붕괴는 이러한 양성성의 강화라는 측면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남자애들이 여성스러워져 큰일이라며 호들갑 떨 일은 아니라고 본다. 요즘 아이들은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고정된 역할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장차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에서도 남녀는 함께 생활하지 않는가.” 기자가 만난 교사들의 한결같은 분석이었다. 이제 학교에서도 ‘수컷들의 시대’는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