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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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협상 전 해외 동결 자산 120억 달러 해제” vs “고농축우라늄 선제적 포기”

돈부터 달라는 이란과 핵 포기하라는 美… NYT “합의 도출까지 멀어”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6-06-03 1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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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 미국과 이란은 고농축우라늄과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 문제 해결을 두고 막판 종전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 미국과 이란은 고농축우라늄과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 문제 해결을 두고 막판 종전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뉴시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에서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이 주요 변수로 지목받고 있다. 미국은 고농축우라늄을 선제적으로 포기하면 자산 동결을 풀어준다는 입장이지만, 실물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이란은 핵 협상 전 동결 자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은 대부분 석유·천연가스 수출 대금이다.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체결 이후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제재 완화 조치로 동결 자산 일부가 이란으로 이전됐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인 2018년 이 협정을 파기하면서 이란의 해외 자산을 다시 동결했다. 이란 언론에 따르면 해외 동결 자산 규모는 총 1000억~1230억 달러(약 152조5000억~187조5700억 원)로 추산된다. 1000억 달러는 2024년 기준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이자 연간 석유·천연가스 수출 수익의 3~4배에 달하는 규모다.

    위기에 봉착한 이란 ‘저항 경제’

    이란이 미국과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놓고 협상을 벌이면서 핵심 목표로 내세운 것은 해외에 동결된 자산 가운데 일부를 되찾고 국제 원유 시장에 복귀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란은 4월 11~12일(이하 현지 시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국과의 사상 첫 대면 협상 때 해외 동결 자산 해제를 가장 먼저 요구했다.

    그 이유는 이란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치솟는 물가와 생활고는 이란 국민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이란 정부가 5월 26일 미국과의 전쟁을 이유로 차단했던 인터넷 접속을 88일 만에 재개하자 이란 국민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통스러운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란에선 그동안 식용유 가격이 전년 대비 308% 급등했으며, 닭고기가 190%, 쌀은 170%나 상승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란 국민은 소셜미디어에 “모든 것이 너무 비싸다” “이제는 재앙 수준이다” “더는 견딜 수 없다” “살아갈 인내심조차 남아 있지 않다” 등 생활고를 호소하는 글들을 올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 물가상승률이 68.9%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198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한 상인이 5월 26일 이란 테헤란에 있는 노점을 지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의 물가상승률이 68.9%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뉴시스

    한 상인이 5월 26일 이란 테헤란에 있는 노점을 지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의 물가상승률이 68.9%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뉴시스

    이란 정권은 반체제 여론이 확산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원유 수출이 중단되면서 이란의 핵심 수입원이 막혔고 원유 저장 시설도 포화 상태다. 심지어 공무원들도 두 달 넘게 월급을 받지 못했다. 하미드 호세이니 이란 상공회의소 에너지위원회 위원은 “현재의 교착 상태가 깨지지 않으면 이란의 석유·천연가스 수출과 정유 시설의 운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란 특유의 ‘저항 경제(Resistance Economy)’조차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이 이끄는 이란 협상 대표단은 5월 25일 해외 동결 자산 중 일부라도 회수하고자 카타르 수도 도하를 전격 방문했다. 당시 대표단에는 압돌나세르 헤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도 동행했다. 이란 대표단은 카타르 정부 고위 관리들과 회담에서 카타르에 묶인 동결 자산의 절반인 120억 달러(약 18조 원)를 전액 현금으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으로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카타르 정부는 이란에 직접 송금하거나 현금 형태로 넘기길 거부했다. 카타르 정부는 해당 자금을 이란이 필수 재화와 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데만 사용할 수 있는 ‘신용’ 형태로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영국에 본부를 둔 이란 반체제 언론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미국이 카타르에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며 “이란에 막대한 현금이 직접 유입되면 이란 정권이 밀린 공무원 급여를 지급하고, 군사장비 등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등 경제적으로 숨통이 틔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결국 이란은 카타르와의 회담에서 현금 유동성 확보에 실패했다.

    트럼프 “자금 통제 풀어줄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해외 자산 동결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 시절인 2015년 이란과의 핵합의 이후 미국이 이란에 17억 달러(약 2조5900억 원) 현금을 지급했다며 이를 강력하게 비판해왔다. 하지만 이는 1979년 팔레비 왕조가 군 장비를 사려고 미국에 4억 달러(약 6100억 원)를 지불했다가 이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동결된 자금과 함께 미국이 이를 돌려주지 않으면서 발생한 이자 13억 달러(약 1조9800억 원)를 합친 것으로, 이란의 해외 동결 자금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 강경파들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 자금을 해제한 것과 관련해 상당한 반감을 가져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30일 이란과 잠정 합의한 MOU를 승인하지 않고 고농축우라늄 및 호르무즈해협 개방에 대한 요구 조건을 강화한 수정안을 이란 측에 보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팀은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하고 휴전을 60일간 연장하는 1단계, 휴전 기간 중 이란의 고농축우라늄 보유분 처리 방안과 우라늄 농축 금지 기간 등을 논의하는 2단계의 종전 협상 MOU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 조치를 완화하고 이란의 동결 자산 중 최대 120억 달러를 해제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하지만 양국 지도자의 최종 승인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5월 29일 백악관 상황실 회의에서 MOU 체결을 거부하고 이란에 핵무장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과 고농축우라늄을 미국이 확보하는 방법·시기, 호르무즈해협 재개방 등의 구체화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액시오스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MOU에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 해제 조항이 포함된 것을 문제 삼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후 통보가 있을 때까지 어떠한 금전 거래는 없을 것”이라면서 이란의 자산 동결 해제에 선을 그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이란에 대한 고농축우라늄 폐기와 이란의 미국에 대한 자국   해외 동결 자산 해제 요구가 앞으로 접점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란이 고농축우라늄을 선제적으로 포기한 뒤 해외 동결 자산을 단계적으로 해제한다는 입장이다. ‘완전한 핵 포기’를 1단계에서 확약하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압박하고자 해외 동결 자산을 지렛대로 삼으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7일 백악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우리는 그들이 자기 돈이라고 주장하는 자금을 통제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통제할 것”이라며 “그들이 제대로 행동하고 올바른 일을 하면 돌려줄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에어버스 디펜스 앤드 스페이스 위성이 지난해 5월 촬영한 이란 이스파한에 있는 핵기술센터. 뉴시스

    에어버스 디펜스 앤드 스페이스 위성이 지난해 5월 촬영한 이란 이스파한에 있는 핵기술센터. 뉴시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반면 이란은 미국이 동결 자산 일부 해제를 선행해야 2단계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란은 고농축우라늄 문제는 60일간 협상에서 다룰 사안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이란은 고농축우라늄을 지렛대 삼아 미국의 동결 자산 해제와 제재 완화 등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특히 이란은 동결 자산 120억 달러를 MOU 체결 즉시 조건 없이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5월 31일 국영방송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이 이란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한 어떠한 합의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은 그동안 미국과의 모든 합의에서 보장돼야 할 핵심 권리 중 하나로 해외 자산 동결 해제와 제재 완화 등을 꼽아왔다. 

    영국 BBC는 갈리바프 의장의 연설이 이란은 실질적 핵 협상을 진행하기 전 동결 자산을 먼저 해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입장을 대변해온 타스님 통신은 “이란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노딜)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을 둘러싼 입장 차이를 볼 때 워싱턴과 테헤란이 합의를 도출하기에는 아직까지 거리가 멀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미국과 이란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chicken and egg game)’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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