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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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도 무릎 꿇렸다” 이란의 이유 있는 일방적 승리 선언

협상 후에도 호르무즈 통제 지속… 트럼프는 공화당 내부 비판 직면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6-05-29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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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5월 23일(이하 현지 시간) X(옛 트위터) 계정에 낙쉐 로스탐과 이란 지도를 합성한 이미지를 게시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X(옛 트위터) 계정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5월 23일(이하 현지 시간) X(옛 트위터) 계정에 낙쉐 로스탐과 이란 지도를 합성한 이미지를 게시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X(옛 트위터) 계정

    이란 남부 파르스주에는 과거 페르시아 황제들의 유적지와 무덤이 있다. 이곳 암벽에는 사산조 페르시아 시절 로마군에 승리를 거둔 페르시아 황제 샤푸르 1세(재위 240∼270)의 전공을 기리는 내용의 부조(浮彫)가 있다. ‘낙쉐 로스탐’(페르시아어로 ‘로스탐의 벽화’라는 뜻)으로 불리는 이 부조에는 말을 탄 샤푸르 1세와 로마의 세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 필리푸스 아라부스, 발레리아누스의 모습이 함께 새겨져 있다. 전사한 고르디아누스 3세는 쓰러져서 말발굽에 깔려 있고, 굴욕적 강화조약을 체결한 필리푸스 아라부스는 무릎을 꿇은 채 있으며, 생포된 발레리아누스는 손목이 붙들려 끌려가고 있다. 

    “오바마와 다를 게 뭐냐” 공화당 반발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5월 23일(이하 현지 시간) X(옛 트위터) 계정에 낙쉐 로스탐과 이란 지도를 합성한 이미지를 게시했다. 이와 함께 “로마인은 로마가 이론의 여지 없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란인은 그 환상을 산산 조각냈다”는 글을 올렸다. 이는 이란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페르시아가 로마를 압도한 것처럼, 이란도 미국에 본때를 보여줬다는 의미다.

    미국과 이란은 휴전을 60일 연장하고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한 후 이 기간에 이란 핵문제와  제재 해제를 논의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 체결을 놓고 협상을 이어오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협상 전제 조건으로 최소 20년 동안 우라늄 농축을 전면 중단할 것을 이란 측에 요구했으나, 이번 MOU에서는 이 내용을 제외했다. 일단 호르무즈해협부터 개방하기 위해 민감한 문제들은 MOU 체결 이후로 미룬 것이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은 “미국 정부가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무조건 항복’ 외에 이란과의 협상은 없다고 공언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라며 “이는 호르무즈해협 개방의 시급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치솟는 유가를 잡고자 호르무즈해협 개방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내용으로 MOU를 체결할 경우 “이럴 거면 전쟁을 왜 일으킨 것이냐”는 상당한 역풍이 미국 내에서 불 수밖에 없다. 호르무즈해협이 완전히 개방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화당 강경파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권리를 전면 박탈하지 못한다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핵 합의와 다른 게 뭐냐”고 비판하고 있다. 로저 위커 상원 군사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종잇조각보다 가치 없는 협상을 추진하라는 잘못된 조언을 받고 있다”며 “우리의 유능한 군대가 이란의 재래식 군사 능력을 완전히 파괴한 뒤 호르무즈해협을 재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이번 합의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테러 능력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셈”이라며 “대체 왜 전쟁을 시작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만약 전쟁 결과가 ‘미국에 죽음을’을 외치는 이란 정권에 우라늄 농축과 핵무기 개발을 허용하고 호르무즈해협까지 실질적으로 장악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재앙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 1기 핵심이던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역시 비판에 가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25일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 내 메모리얼 앰피시어터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25일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 내 메모리얼 앰피시어터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이란 “호르무즈, 전쟁 이전과 이후 다르다”

    이란은 이번 전쟁으로 심각한 군사적·경제적 피해를 입었지만 승리했다고 주장할 만한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바로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이다. 이란은 자국 경제에도 부담이 되는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감행했고, 미국 동맹국부터 파트너인 걸프 국가, 각국 유조선까지 드론과 미사일, 기뢰, 소형 고속정 등으로 공격하며 해협 통행을 차단했다. 중동 지역은 물론, 세계 경제 질서를 뒤흔드는 영향력을 과시한 셈이다. 유럽외교협회(ECFR)의 이란 핵 전문가인 엘리 게란마예 연구원은 “이란은 약자지만 두 핵보유국(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설 수 있는 국가로 인식되게 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특히 호르무즈해협 통제력을 고려하면 이란의 지정학적 영향력은 전쟁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이란 언론은 해협 통제권이 자국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미국 디지털 뉴스 미디어 액시오스는 MOU 초안에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통행료 없이 개방하고 해협에 설치한 기뢰를 제거해 선박의 항행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반면 이란 혁명수비대를 대변하는 파르스 통신은 “호르무즈해협 통행 ‘상황’이 바뀌는 게 아니라 MOU 합의 뒤 30일 이내에 ‘통행량’만 전쟁 전으로 회복하게 된다”며 “이는 전쟁 이전처럼 자유 통행을 뜻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호르무즈해협의 항로 결정, 통행 시간과 방법, 통행 허가증 발급 등은 여전히 이란 통제하에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바가이 대변인은 5월 25일 정례브리핑에서 “선박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할 때 징수하는 ‘아바레즈’(통행세 또는 통행료)는 틀린 말”이라면서 “(이란은) 선박이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이에 드는 ‘하지네(비용)’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MOU를 맺는다고 해도 무료로 해협을 통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의 알리 바게리 카니 사무차장 역시 “호르무즈해협 통행의 절차와 조건은 전쟁 이전과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테헤란 시내 광장에 있는 호르무즈해협과 트럼프 대통령의 입술을 꿰맨 광고판 아래에서 한 남성이 이란 국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

    이란 테헤란 시내 광장에 있는 호르무즈해협과 트럼프 대통령의 입술을 꿰맨 광고판 아래에서 한 남성이 이란 국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

    “호르무즈해협은 원자폭탄만큼 소중한 기회”

    더욱 중요한 점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전략 무기’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H.A.헬리어 선임연구원은 “이란은 이전에는 없던 호르무즈해협이라는 지렛대를 쥐고 전후 체제를 좌지우지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가장 큰 위협은 이란이 더욱 대담해지고, 이에 따라 중동 지역 질서와 세계경제에 더욱 골칫거리가 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위스 제네바 국제개발대학원의 이란·중동 안보 분석가인 파르잔 사베트 연구원은 “이란 지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드론이나 미사일 공격 위협을 통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이들은 미국·이스라엘에 대한 억지력은 물론, 지정학적 영향력까지 새롭게 확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5월 26일 이슬람 최대 연례행사인 ‘하지(성지순례)’를 기념하는 서면 연설에서 “걸프 지역과 세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중동 지역 국가들은 더는 미군 기지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영향력이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MOU 체결을 위해 이란의 고농축우라늄을 이란 내부 또는 제3국에서 폐기하는 방안도 수용하기로 했지만, 이후 60일간 협상에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의 파괴력을 맛본 이란은 미국에 제시한 것보다 훨씬 짧은 우라늄 농축 중단 기간과 평화적인 우라늄 농축 권리를 추가로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이란은 미국에 자산 동결과 각종 제재 해제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후속 협상이 실패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든 이란에 대한 공격을 재개할 수 있지만 이란의 강경한 입장은 쉽게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해협은 원자폭탄만큼 소중한 기회이고 이번 전쟁을 통해 얻은 수 있는 부분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모하마드 모크베르 이란 최고지도자 경제 고문의 말처럼 이란은 또 호르무즈해협 카드로 맞설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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