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금융전문 MBA 수업 광경.
경영학 이론 실제 상황에 적용 집중 훈련
2005년 11월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는 ‘경영전문대학원 육성계획’이라는 일종의 경영교육 혁신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 머물던 전국 16개 대학의 경영대 특수대학원 또는 일반 대학원의 정원 2800명을 감축하는 대신, 2400명 규모의 경영전문대학원을 설립해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하겠다는 것. 이른바 ‘한국형 MBA’의 서막이다.
MBA는 우리말로 ‘경영학 석사’이지만, 학문만 추구하는 일반 석사와는 조금 다르다. 1~2년간의 다양한 과정을 통해 경영학 이론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는 이른바 ‘경영자 수업’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형 MBA란 ‘한국 기업에 강한 국제적 수준의 경영인’을 양성하겠다는 의미로, 한국 기업의 경영혁신 사례를 적극적으로 연구 개발하게 된다(한 예로 풀타임 MBA의 경우 모든 강의가 영어로 진행된다).
‘두뇌한국21(Brain Korea 21·BK21)’ 사업의 하나로 지난해 본격화된 한국형 MBA 프로젝트는 올해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에서 첫 졸업생 173명을 배출했다. 지난해 9월에 시작된 1년 과정 MBA 스쿨의 첫 수확인 셈이다. 결과는 고무적이다. 단순한 경영학 석사 학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졸업생들이 1년 전보다 평균 50% 이상 높은 연봉을 받고 금융권과 대기업에 채용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러한 1기 졸업생의 성적과 함께 BK21 평가 결과가 공개되면서 한국형 MBA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한국형 MBA를 꿈꾸는 국내 대학들의 경쟁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다. 현재 국내 메이저 5개 대학이 대표 MBA 자리를 놓고 자원을 빠르게 집중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머지 10여 개 대학도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특성화 전략을 통해 상위권 도약을 꾀하고 있다. 인하대처럼 아예 ‘물류전문대학원’으로 특화한 경우도 있다.
2006년 하반기와 2007년 상반기 BK21 사업단 평가에서, 예상을 깨고 고려대 MBA가 1위(2위 서울대, 3위 성균관대)를 차지한 사실은 교육시장에 기대 이상의 파장을 가져왔다. 경쟁 대학들은 “교육부 평가는 ‘BK21 사업 수행 실적’에 대한 평가일 뿐 MBA 과정 자체에 대한 순위는 아니다”라며 애써 차분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고려대 측은 “승기를 잡았다”면서 “이 기회에 국내 대표 MBA 자리를 굳히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다른 교육 분야와 달리 MBA 시장에는 냉혹한 시장질서가 작용하기 때문에 순위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교육부 지원이 BK21 평가에 따라 상위 5개 대학에 차등 지원되기 때문에 향후 경쟁구도에 미칠 영향 또한 매우 크다.
서울대 MBA 도서관
20여 개 대학이 격전 중인 국내 MBA 시장에서 앞서 있는 대학은 가장 먼저 출발한 ‘KAIST- MBA’(1996년)와 세계 초일류 그룹에 합류한 삼성이 후원하는 ‘성균관대 SKK-GSB MBA’(2004년), 그리고 MBA 역사는 짧지만 전통적으로 경영대학이 강세를 띠는 이른바 ‘S(서울대) K(고려대) Y(연세대) MBA’를 꼽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1~2개만이 아시아 천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세계적 MBA 스쿨로 도약할 수 있고, 나머지는 국내 기업 교육과정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이들 5개 대학이 세계 시장의 냉엄한 평가대 위에 오른 셈이다.
“중국과 역사·문화적으로 가까운 우리가 유리”
전 세계 MBA 시장의 판도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MBA 자체가 미국에서 탄생했고, 미국식 기업경영과 맞물려 발전한 만큼 미국 대학들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FT 조사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영대학원 와튼 스쿨이 7년 연속 1위를 지킨 것을 비롯해, 톱10 가운데 5위 런던비즈니스 스쿨, 7위 인시아드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미국 학교가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 MBA 스쿨의 급격한 순위 상승이 두드러진다. 중국-유럽공상학원(CEIBS) 외에 홍콩과학기술대학, 싱가포르의 난양비즈니스 스쿨과 싱가포르국립대학, 호주의 호주경영대학원 등이 상위권에 포진하면서 전 세계 인재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 하지만 한국과 일본 대학들은 절대적인 열세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21세기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면서 국내 MBA 스쿨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 경영학 자체의 발전이 늦은 중국, 영어 활용이 떨어지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시아와 서구를 연결하는 교육 허브로 거듭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인지 한국형 MBA의 목표는 대개 아시아 시장이다. 지난해 국내 MBA 스쿨에 입학한 외국인 학생은 고려대 18명, 성균관대 18명, 서울대 12명, 연세대 11명 등 총 61명인데 이들의 출신 국가는 중국이 22명으로 가장 많고 미국 17명, 베트남 9명, 인도 9명, 러시아 7명 등으로 아시아권이 3분의 2에 달한다. 성균관대는 ‘아시아 MBA’ 코스라는 이름을 붙였고, 고려대는 ‘아시아 3대 MBA’를 내세웠으며, 서울대는 아예 ‘아시아 탑 MBA’를 구체적 목표로 제시했다. 또한 국내 기업들의 세계적인 성공을 발판삼아 한국형 혁신 사례를 집중 개발하고, 이 콘텐츠를 기반으로 초일류 MBA 스쿨로 거듭나겠다는 복안도 세워두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적잖은 해외 MBA 유학생이 생기는 동안 국내 대학들은 왜 MBA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던 것일까. 이동기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그 이유를 독특한 한국형 인사시스템에서 찾는다.
“사실 아직도 국내 MBA에 대한 수요는 확실치 않다. MBA는 빠르게 전문가를 영입하고 교체할 수 있는 미국식 인사제도와 맞물려 발전한 제도다. 임원 교육마저 자체 해결하는 국내 기업 풍토 때문에 MBA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았다.”
한국형 MBA 수업은 100% 영어로 진행된다.
게다가 국내 MBA에 대한 20, 30대 직장인들의 관심이 최근 매우 높아졌다. MBA가 자신의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라지만, 해외 MBA는 불확실할 뿐 아니라 교육비용도 터무니없이 비싸다(1억~2억원). 반면 국내 MBA의 경우 빠른 기간 안에 경제적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더욱이 국내에서 과정을 마치기 때문에 졸업 후 재취업이 쉽고, 연봉 상승까지 기대할 수 있다.
대학 역시 로스쿨보다 MBA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학 처지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MBA를 확보할 경우 세계 최고 인재를 끌어모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초일류 기업과의 연결고리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 높은 관심 … 대학 국제화 촉진도
이러한 MBA의 도입과 경쟁은 국내 대학의 국제화를 촉진하는 부수적 효과도 갖는다. 얼마 전 국내 경영대학 사이에서 벌어진, 유럽경영대학협의회(EFMD)의 경영교육 인증 ‘EQUIS’와 미국 경영대학장협의회의 인증 ‘AACSB’ 같은 해외 경영교육 인증 확보 전쟁도 이 같은 국제화의 한 맥락이다. 이를 계기로 교수진과 학생, 연구실적, 커리큘럼 등이 급속히 국제화됐다는 평가다.
결국 문제는 ‘국내 MBA가 해외 MBA와 직접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까?’에 모아진다. 아직도 토종 인재들은 미국 중국 등으로 MBA 유학을 떠나는 실정이고, 그들은 자연스레 외국 기업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아직 한국형 MBA 졸업생에 대한 실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KAIST- MBA의 김현주 교수가 내놓은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다.
“해외에서 MBA 과정을 마친 국내 인재 가운데 국내 기업에 정착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인재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벌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형 MBA에 중국이나 인도, 동남아권 인재들이 몰려와 한국 기업을 위해 일하고, 외국에서 초빙된 교수들이 한국 기업의 사례를 적극 발굴해 세계화한다면 한국 기업과 대학이 동시에 윈-윈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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